Louis Vuitton
Review 드디어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루이 뷔통’ 시대가 열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16년 동안 마크 제이콥스에 의해 좌우되며 더 없는 전성기를 누렸던 ‘루이 뷔통’은, 비슷한 시기 ‘발렌시아가’의 제 2의 전성기를 일궈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에게 제 2대 ‘루이뷔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물려줬다.
패션계에는 종종 10대 중반쯤 되는 아주 이른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알고, 일을, 경험을 시작했다는 전설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을 우리는 흔히 천재라고 부른다.
멀리는 17, 18세의 나이에 의상 콘테스트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입 생 로랑, 칼 라거펠트가 그러했고, 마크 제이콥스는 중학생 정도의 나이부터 ‘샤리바리’라는 편집숍의 옷 정리 점원으로 시작했으며, 알렉산더 왕은 10대에 가족들 앞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이고, 20대 초에 자신의 브랜드로 큰 명성을 얻었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도 이런 천재형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는 14살의 나이에 수당대신 옷을 받는 조건으로 ‘아네스 베’에서 패션계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장 폴 고티에’, ‘콜한’ 등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는 25살...more
Review 드디어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루이 뷔통’ 시대가 열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16년 동안 마크 제이콥스에 의해 좌우되며 더 없는 전성기를 누렸던 ‘루이 뷔통’은, 비슷한 시기 ‘발렌시아가’의 제 2의 전성기를 일궈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에게 제 2대 ‘루이뷔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물려줬다.
패션계에는 종종 10대 중반쯤 되는 아주 이른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알고, 일을, 경험을 시작했다는 전설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을 우리는 흔히 천재라고 부른다.
멀리는 17, 18세의 나이에 의상 콘테스트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입 생 로랑, 칼 라거펠트가 그러했고, 마크 제이콥스는 중학생 정도의 나이부터 ‘샤리바리’라는 편집숍의 옷 정리 점원으로 시작했으며, 알렉산더 왕은 10대에 가족들 앞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이고, 20대 초에 자신의 브랜드로 큰 명성을 얻었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도 이런 천재형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는 14살의 나이에 수당대신 옷을 받는 조건으로 ‘아네스 베’에서 패션계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장 폴 고티에’, ‘콜한’ 등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는 25살이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다.
당시 ‘발렌시아가’는 전설적인 이름만 남아있는 유명무실한 브랜드였다. 그리고 칼 라거펠트가 ‘샤넬’을 살려냈듯이, 게스키에르도 ‘발렌시아가’를 기사회생시켰다. 희대의 ‘모터백’이라는 가방을 탄생시켰으며, ‘발렌시아가’의 유산인 구조적인 실루엣들을 부활시켰다. 그의 진가를 알아보려면 2년 전 그의 컬렉션을 찾아 보는 것이 확실하다.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는 그의 패션은 이후에 길거리에서 유행하는 패션의 진원지가 된다.
사실 ‘루이 뷔통’에서의 첫 컬렉션이 아주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니콜라스는 ‘루이 뷔통’의 유산 중 무엇을 취하고, 어떤 면을 마크 제이콥스와 차별화를 두며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 중일 것이다.
그러나 뒷심이 강한 그이기에 이후 컬렉션들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f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