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5 정인기 기자 ingi@fi.co.kr
“감성에 IT와 자본이 결합되면 글로벌 브랜드 가능하다”
캐주얼 시장에 90년대 화려한 '감성'이 다시 부활했다. 90년대말 외환위기 직후 '이지 캐주얼'로 촉발된 'Mass Value Market'은 어덜트와 아동복으로 확대되고, '유니클로' 'ZARA'와 같은 글로벌 SPA 브랜드까지 가세하면서 국내 패션은 코모디티(Commodity) 마켓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마켓을 중심으로 감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온라인 마켓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나만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감성 패션을 부활시키고 있다.
경계가 사라진 디지털 마켓도 감성패션 부활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샤오홍슈 등은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감성을 갖춘 브랜드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고, 마켓 사이즈 한계를 아쉬워 했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겐 새로운 비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패션인사이트>는 2019년 새해를 맞아 밀레니얼 소비자들과 호흡하고 있는 '감성깡패'들의 진솔된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는 90년대 최고의 감성깡패였고 여전히 중국에서 현역으로 활동중인 60대(감깡A)와 지금은 이커머스 플랫폼 사업에 몰입중인 50대(감깡B), 그리고 최근 국내외 시장에서 밀레니얼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40대(감깡C)와 30대(감깡D) 디렉터이자 오너 경영자를 한 자리에 모았다. 참석자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익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 주)

◇ 사회(정인기 편집국장): 감성 캐주얼의 부활, 어떻게 생각하나.
감깡A> 요즘 서울을 오는 재미가 생겼다. 홍대 '아더에러'와 같은 매장에서 한국 패션의 새로운 성장 에너지를 발견한다. 90년대도 그랬지만, 남들이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광고 비주얼 한 장과 파격적인 VMD에 소비자들이 인정해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무신사의 가파른 성장세도 '앤더슨벨' '디네' 같은 브랜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감깡C> 올해로 5년째다.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느낀 것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면서 할 수 있는 브랜드로 평가받고 싶었지만, 초기엔 감성을 고집해서는 일단 국내시장에선 유통할 데가 한정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온라인 마켓이 열리면서 바꿨다. 우리가 바꾼게 아니고 그런 감성을 팔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겨났다. 반면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볼륨화'에 대한 고민이 새롭게 생겨났다. Mass가 싫어서 디자이너 브랜드로 시작했는데, 플랫폼이 매스화되면서 다시 고민되기 시작했다.
감깡D> 사실 국내시장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해외시장에 공을 들였다. 어차피 맨땅이라면, 같은 에너지를 쏟더라도 해외시장에 쏟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어가 달라도 감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이미지에 투자했다.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무조건 해외 사진작가와 모델과 찍었다.
감깡A> 9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감도를 다르게 보여야는데, 결국 비주얼이었다.
감깡B> 요즘 국내 시장은 블랙, 그레이 일색의 Mass가 판을 치고 있다. 해외시장을 두들기는 이유도 다양한 감성을 수용하는 글로벌 감성에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깡C> 우리도 지난해부터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시장에선 무신사와 같은 플랫폼 덕에 많이 성장했지만, 장기적으론 해외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니스뉴욕이나 오프닝세러모니 등을 접촉했을 때도 이미 우리를 알고 있었다. 미팅 과정에서 감깡D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BTS가 있어서 한류가 인정받듯 패션시장에서도 BTS와 같은 선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월 파리패션위크 기간 쇼룸에 참가해 10여개 바이어들로부터 의미있는 상담을 하기도 했다.
감깡A> 요즘 20년 전 스트리트 캐주얼 감성이 확실히 돌아왔음을 느낀다. 15년전 입었던 '마젤란' 바지를 즐겨입고 있는데, 요즘 감성과도 잘 어울리고 여전히 패셔너블하다.
◇ 사회> 감성 브랜드로서 매스화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또 어떻게 발란스를 지키느냐도 중요할 것 같은데.
감깡 A> 90년대 당시 한 브랜드로 연간 1400억을 팔았다. 영업의 요구를 늘 수용하는 과정에서 볼륨화가 됐다. 기획자 입장에선 마니아들의 감성을 유지하는 것과 경영자의 볼륨화 요구는 늘 상충될 수 밖에 없다. 브랜드별 포트폴리오에 따른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볼륨화도 나쁘지는 않다.
감깡D> 우리는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싶냐고 늘 자문한다. 결론은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브랜드'였다. 지금은 패션 카테고리로 소통하지만, 패션이 입혀진 문화 영역을 보여주고 싶고, 옷은 하나의 매개체다. 그게 끝도 아니고, 진화하는 과정이다.
감깡C> 초기에는 내가 모두 도맡아했지만, 어느 순간 분리했다. 우리 브랜드의 디렉터는 감성에 충실하고, 오너인 나는 현실을 본다. 좋은 디자인은 감동을 주지만, 현실적 만족도 수반돼야 한다.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도 만족시켜야 한다. 결국 감성도 경영이 뒷받침돼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에 볼륨화를 배제해선 안된다. 대신 볼륨화의 목적이 좋은 소재를 쓰고, 고객과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여준다는 것으로 연결돼야 브랜드의 생명력을 높여줄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감성 브랜드도 연간 300~500억원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 또 우리는 아직까지 100% 국내 생산을 고집하는데, 20~30명 일하는 공장을 연간으로 파트너십을 맺기 위해서라도 적정 규모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고기집도 줄서서 팔아야 한다는 것이 감성의 볼륨화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감깡A> 디렉터로서 품질과 감도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명품으로 가기위해선 디자인 외에도 소재와 품질에 더 투자해야 한다.
감깡D> 지금까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것 같다. 올해부터 소재에 대해 R&D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고 명예가 뒤따를려면, 그에 따른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
감깡A> 그런 명예와 자존심은 결국 소통이다. 나의 감성이 젊은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자극하는 에너지이고, 60대가 되도록 이 일에 열정을 쏟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사회> 성장할 수록 사람 관리가 관건일텐데. 잠은 잘 자는지?
감깡A> 선잠 잘 때 가장 아이디어 많다.
감깡C> 우리 CD는 "정신과 가지 않으면 CD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나는 자금 문제로 잠을 못 잔다. 초기엔 같이 했는데, 내가 개입하니 사람들은 그걸 방향으로 알고 다른 의견을 주장하지 않더라. 그리곤 계속 제시해주길 바라더라. 이후 1년간 빠져보니 더 잘되더라. 그래서 빠졌다. 그랬더니 연봉협상 때 어려워졌다. "옛날 저 아닌거 알죠?" 그러면, "그런 너를 누가 만들었나"며 웃고 지낸다.
감깡D> 난 디렉터를 겸하는데, 직원이 나간다고 하면 그냥 가라고 한다. 평생 같이 할 것도 아닌데…. 대신 돌아오고 싶으면 받아들인다. 나와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지만 하려는 열정이 있다. 그들은 대기업 가면 소멸되는 느낌 받아서 되돌아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잠을 잘 안자는 편이다. 새벽 시간에 혼자 깨어 인터넷으로 많은 자료를 찾아본다. 회사를 나가서 끝날 때까지는 직원들과 회의하고 컨펌한다. 퇴근 후는 이미지 연구, 다시 새벽에 탐구, 이를 매일 반복한다.
◇ 사회> 온라인 사업은 어떤가.
감깡C> 우린 40만원대 코트가 주종인데, 온라인서 50만원대 올렸더니 주춤했다. 우리 브랜드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사는데, 새로운 고객은 부담을 가지는 듯 했다.
감깡D> 우린 온·오프 차이보다 오프와 오프 차이가 확연하다. 온·오프는 하나이므로 서로 연결해야 되고, 오프라인의 느낌을 온라인으로 전달해야 한다.
감깡B> 오프라인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감깡D> 매장 직원들에게 많이 팔려고 하지 말고 얘기를 많이 하라고 한다. 오래 얘기하는 직원에게 KPI를 높게 평가한다. 우린 국내보다 해외 온라인이 더 많다. 쇼핑몰은 아직 카페24로 운영하지만, 3월에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해 오픈할 계획이다.
감깡C> 카페24가 호의적이지 않다. 지나치게 대형화, 메뉴얼화 된 탓에 브랜드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실행하기 어렵다. 워드프로세스 기반은 보안이 걱정이다.
감깡D> 처음엔 아마존 기반으로 시작했다가, 자체 개발로, 다시 카페24로…. 돈과 시간 낭비가 심하다. 속도와 커스터마이징에 대한 요구 때문에 계속 바꾸고 있는데, 사실 스트레스가 많다. 온라인이 중심인 브랜드인데, 오프라인에 투자했던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최근엔 온라인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IT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개발자를 핸드링 하기도 어렵다.
감깡C> 프로그램 개발에 5년간 투자했는데 아직이다. 사실 국내 온라인 유통만 15년인데, 크게 진화된 게 없다. 거래 플랫폼에 개별로 등록하다보니, 헛수가 많다. 이미 솔드아웃 된 것도 버젓히 올라가 있다. 기본 상식만 있는 사람이라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개발해야 한다는게 지론이다.
감깡D> 최근 국내 온라인 플랫폼 판매가를 30% 올렸다. 우리 사이트를 해외서 직구로 들어와도 70% 비싸다. 해외 로컬몰에서는 2배이다. 무조건 한국 와서, 오프라인이나 자체 사이트로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온라인이라고 싸다는 인식은 아예 없앴다.
감깡B> 어쩔수 없다. 해외 B2B로만도 매스화 되면 국내는 자존심 지키며 할 수 있다. 아직은 그게 안되니 B2C와 발란스가 중요하다. 온라인과 해외 홀세일 마켓서 한국 브랜드의 경쟁력이 중저가서 중고가로 올라가고 있다. 국내 감성 브랜드가 자기 색깔과 품질을 지키면 미래가 밝을 것 같다.
◇ 사회> 투자 문의도 많을 것 같다. 어떤가.
감깡C> 사실 투자는 늘 필요하다. 그러나 밸류가 중요하다. 내가 투자금을 정하면, 감성 캐주얼에 대한 시장 기준이 잡혀질 것이다. 잘못하다간 내가 허들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니, 그런건 하지 말자는 생각이고 그래서 조심스럽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도 찾아왔지만, 다음엔 의사결정권자 동행하지 않으면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나의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쉽게보지 마라란 메시지이기도 했다.
감깡D> 투자 관련해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안 만났다. 지금은 돈이 필요하지 않아서다. 그러나 최근에는 돈이 필요한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감성을 온라인에서 전세계 소비자와 공감하려면 고도의 테크니컬이 필요하고, 그때는 자본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기술을 가진 회사를 찾아서 그들을 인수하던지 협업해야 글로벌 마켓으로 갈 수 있고, 볼륨을 키울 수 있겠구나 생각됐다. 돈이 필요하다면 그런 용도 때문에, 기술에 대한 갈증이 확 와 닿아서 필요할 것 같다.
감깡C> '아크네스튜디오'가 홀세일을 위해 투모루쇼룸을 통째로 전세내고, 1000억원 이상을 수주받는 것을 보고 소고기집도 대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아크네스튜디오 홈페이지 보니 3D로 뉴컬렉션을 멋지게 발표했는데, 그건 부러웠다. 이건 감성이 아닌 자본이 뒷받침된 행동이었다. 글로벌에서 싸움은 '팀전'인데, 우리는 10명이니 이 정도면 되고, 아크네는 1000명이니 이게 가능하네…. 이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는 어차피 동일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감깡D> 지난 12월 파리에 프리젠테이션 하러 갔는데, 거기서 미국 자본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장소는 파리였는데, 앞에 앉은 심사역은 모두 미국 사람이고, 더욱이 그들은 버질 아일랜드-헤론 프레스톤-슈프림 등과 모두 연결돼 있었다. 나이키, 애플 등 세계를 움직이듯 미국 자본이 투입돼서 브랜드가 성장하면, 결과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다. 미국이란 국가의 자본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감깡C> 정부와 자본시장은 물론 플랫폼들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무신사와 더블유컨셉 등이 최근 각종 프로모션을 통해 외형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래의 매출'을 현재에 가져다 쓰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10년에 빼먹느냐, 단기간에 빼먹느냐? 그 차이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마켓에서도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
감깡B> 과거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됐을 때 해당 기업뿐 아니라 경쟁사들도 너무 쉽게 따라했기 때문에 시장이나 브랜드를 키우지 못했다. 최근 아웃도어스포츠나 골프웨어 마찬가지다.
감깡C> 지난 10년간 회사를 키우면서 월급 주는 하루만 행복했다. 성장과 함께 어려움도 많았지만 '스타일난다'를 바라보며 달려왔다. 선발 기업이 옳은 길을 갔을 때 잘 돼야 후배들도 잘 받아들이더라. 앞선 기업이 땡 원단을 잘 써서 성공했다고 하면, 후배들도 땡 원단만 찾아다닐 것 아니냐? 이래서는 안된다.
정부에서도 잘 될 수 있는 '스타 브랜드'를 만들어야 기업도 커지고, 고용 창출도 되고,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무엇보다 후발 기업들이 그 기업을 보고 꿈을 키울 수 있다. 우리도 '꼼데가르숑' 같은 브랜드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먹고 살만 하니 너 혼자 커봐라'가 아니라 '오히려 100억대 되면 그때 키워줄께'와 같은 정책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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