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LAURENT paris
지금은 많이 잊혀진 이야기지만, 패션계의 제왕 칼 라거펠트와 명성과 사랑에서 라이벌을 이루던 디자이너, 그가 바로 입 생 로랑이었다. 칼 라거펠트가 뒷심이 강한 대기만성형 디자이너라면, 입 생 로랑은 젊은 천재형 디자이너였다.
오히려 젊은 시절의 칼 라거펠트는 입 생 로랑에 비하면 보잘것 없었다. 20대 초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크리스찬 디올’의 죽음으로 가장 잘 나가던 브랜드를 이끌어야 했던 입 생 로랑은 오뜨 쿠튀르의 황태자로 추앙 받았다.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오뜨 쿠튀르에서 프레타 포르테로 시대가 변화할 것을 감지하고는 ‘디올’에서 나와 자신만의 브랜드 ‘입 생 로랑 리브 고쉬’를 설립하고 귀족과 부유층의 파티를 위한 드레스가 아닌, 젊은이들의 패셔너블한 일상을 위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성을 위한 바지 수트인 ‘르 스모킹’과 활동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사파리 룩’으로 입 생 로랑이 각광받았던 것은 젊은 세대의 등장 때문이었다. 이후 다양한 문화와 예술 등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던 입 생 로랑은 1998년 알버 앨바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하게 된다. 이후 톰 포...more
지금은 많이 잊혀진 이야기지만, 패션계의 제왕 칼 라거펠트와 명성과 사랑에서 라이벌을 이루던 디자이너, 그가 바로 입 생 로랑이었다. 칼 라거펠트가 뒷심이 강한 대기만성형 디자이너라면, 입 생 로랑은 젊은 천재형 디자이너였다.
오히려 젊은 시절의 칼 라거펠트는 입 생 로랑에 비하면 보잘것 없었다. 20대 초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크리스찬 디올’의 죽음으로 가장 잘 나가던 브랜드를 이끌어야 했던 입 생 로랑은 오뜨 쿠튀르의 황태자로 추앙 받았다.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오뜨 쿠튀르에서 프레타 포르테로 시대가 변화할 것을 감지하고는 ‘디올’에서 나와 자신만의 브랜드 ‘입 생 로랑 리브 고쉬’를 설립하고 귀족과 부유층의 파티를 위한 드레스가 아닌, 젊은이들의 패셔너블한 일상을 위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성을 위한 바지 수트인 ‘르 스모킹’과 활동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사파리 룩’으로 입 생 로랑이 각광받았던 것은 젊은 세대의 등장 때문이었다. 이후 다양한 문화와 예술 등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던 입 생 로랑은 1998년 알버 앨바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하게 된다. 이후 톰 포드, 스테파노 필라티를 거쳐 현재 에디 슬리먼이 브랜드 이름까지 바꾸며 ‘생 로랑 파리’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패션 하우스로써 입 생 로랑의 성격을 하나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그 중 2012 S/S 컬렉션부터 에디 슬리먼이 잡고 있는 키워드는 ‘젊은이’인 듯 하다. ‘생 로랑’에서 에디 슬리먼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패션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홍대나 인터넷 쇼핑몰에 수도 없이 보이는 젊은이들의 패션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2014 F/W 컬렉션에서는 체크무늬 미니스커트, 피코트나 더플코트, 시퀸과 메탈릭 소재, 호피무늬, 부츠 또는 메리제인 슈즈, 가죽 라이더 재킷 등으로 1970년대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던 가디건이나 코트는 모피로 만들어져 마치 그런지 룩을 떠올리게 했다. 1993년 마크 제이콥스가 ‘페리 엘리스’에서 선보인 컬렉션으로 실크로 만든 플란넬 셔츠처럼 일부러 값비싼 소재로 평범해 보이는 옷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이다.f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