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K뷰티 스몰 브랜드의 성장 비결은?

2026-10-19 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히어로 제품으로 시장 진입…SNS 확산·플랫폼 유통·글로벌 진출로 성장 가속

Image
'올리브영 패서디나점' 개점 첫날 현장



지난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패서디나. 올리브영 미국 1호점 앞에는 오픈 전부터 긴 대기줄이 늘어섰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패서디나점과 센추리시티점 개점 이후 관련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는 2,300건 이상, 누적 조회수는 940만회를 넘어섰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것은 올리브영이라는 플랫폼의 힘만이 아니다. 매장 구성의 상당수를 채운 것은 이름조차 낯선 중소·인디 브랜드였다. 대기업 하나가 아니라, ‘작은 거인’ 수백 곳이 함께 만든 흥행이었다.


K뷰티 시장의 성장축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기업 중심의 브랜드가 시장을 이끌었다면, 최근에는 특정 제품과 뚜렷한 콘셉트를 앞세운 스몰 브랜드들이 국내외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며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아도 제품 하나로 관심을 끌고, SNS로 입소문을 만든 뒤 유통망을 넓히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대규모 매장이나 막대한 광고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관심은 올리브영 같은 오프라인 유통으로, 국내에서 검증된 제품은 일본·미국·동남아 등 글로벌 시장으로 이어진다.


다만 모든 스몰 브랜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 수가 급증하면서 ‘K뷰티’라는 이름이나 SNS 화제성만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제품 경쟁력과 브랜드 정체성, 유통 전략, 재구매를 만들어내는 힘이 지속 성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Image
아이돌 메이크업 전문가가 프로듀싱한 브랜드 ‘원정요’는 일본에서 메탈 샤워 펜슬, 톤업 베이스등으로 인지도를 쌓고 있다.



제품 자체가 콘텐츠


스몰 브랜드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히어로 제품’ 전략이다. 대형 화장품 기업이 스킨케어부터 메이크업, 헤어·바디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면, 스몰 브랜드는 한정된 자원으로 시작하는 만큼 모든 제품을 동시에 키우기 어렵다. 대신 소비자가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바로 연상할 수 있는 대표 제품에 집중한다.


아이돌 메이크업 전문가가 프로듀싱한 브랜드 ‘원정요’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K뷰티 아이돌 메이크업 브랜드로 인지도를 쌓은 원정요는 메탈 샤워 펜슬, 톤업 베이스 등 메이크업 제품을 앞세워 성장했고, 올해 3월 올리브영에 공식 입점하며 국내 유통망을 확대했다. 트와이스 모모가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이돌 메이크업 노하우를 일반 소비자가 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제품을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Image


조선미녀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통 원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제품을 앞세워 해외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켰고, 이후 미국 등 주요 시장으로 유통망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제품의 차별점을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성분 설명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어떤 피부 고민에 적합한지’, ‘사용했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짧은 영상이나 이미지 몇 장으로 보여줘야 한다. 결국 제품 자체가 콘텐츠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Image
‘조선미녀’는 전통 원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제품을 앞세워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SNS는 광고 아닌 성장 엔진


브랜드 성장에서 SNS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과거 신생 화장품 브랜드가 인지도를 확보하려면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망 입점, TV·잡지 광고 등 대규모 마케팅 투자가 필요했다. 반면 지금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을 통해 제품의 발림성, 질감, 발색, 사용 전후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유명 모델 대신 뷰티 크리에이터와 일반 소비자의 리뷰를 통해 제품을 확산시키는 방식은 대기업 수준의 광고비를 투입하기 어려운 스몰 브랜드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한다.


Image
티르티르



유통 채널 다변화도 기회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관심이 오프라인 유통으로 이어지면서 K뷰티 스몰 브랜드의 판매 접점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올리브영뿐 아니라 다이소와 무신사,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약국까지 새로운 판매 채널로 부상하며 스몰 브랜드의 선택지도 다양해지고 있다.


올리브영은 지난 6월 앱에 신상품 전용 페이지 ‘올영신상’을 신설해 신생·인디 브랜드의 노출 기회를 확대했다. 사전 운영 기간 소개된 신상품의 매출은 전달 같은 기간보다 35% 높게 나타났다. 다이소와 무신사도 각각 뷰티 전문 매장과 신생 브랜드 중심의 뷰티 전문관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명동·강남 일대 약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약국 쇼핑’ 콘텐츠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유통 채널의 확대는 스몰 브랜드에 기회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판매 접점이 늘어난 만큼 어떤 채널에서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Image
아누아는 어성초와 나이아신아마이드 등 주요 성분을 내세운 세럼 제품군으로 피부 고민별 스킨케어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 겨냥


K뷰티 스몰 브랜드의 또 다른 특징은 해외 진출 시점이 빨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국내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해외 백화점이나 전문 유통망에 진출했다면, 지금은 SNS와 글로벌 이커머스의 발달로 국내 론칭 초기부터 해외 소비자와 만날 수 있다.


특히 구다이글로벌이 전개하는 스킨1004·조선미녀·티르티르·라운드랩은 모두 연매출 2,000억원 이상 규모로 성장했으며, 이들 브랜드의 해외 매출 비중이 80%를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누아 역시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북미를 비롯한 해외 유통망을 빠르게 확대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 스몰 브랜드가 해외 시장을 시험하기 좋은 곳으로 꼽히고, 미국은 틱톡·인스타그램을 통해 제품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회로 부상했다. 동남아 시장에서도 K뷰티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가마다 피부 특성과 기후, 가격대, 선호 제형이 다른 만큼 현지 소비자 특성을 반영하는 일이 중요하다.


K팝·K드라마·K푸드 등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Korea’가 첫 구매의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재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제품력과 가격, 사용 경험이다. 스몰 브랜드의 글로벌 전략도 ‘한국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단계를 넘어, 각 시장의 소비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제품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Image
스킨1004의 대표 라인 ‘마다가스카르 센텔라’는 마다가스카르산 병풀 추출물을 활용해 피부 진정과 보습에 초점을 맞췄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바꾼다


스몰 브랜드의 또 다른 경쟁력은 의사결정 속도다. 대기업이 안정적인 생산과 품질 관리, 여러 조직의 검토를 거쳐 제품을 출시한다면, 스몰 브랜드는 SNS 댓글과 리뷰, 온라인 판매 데이터로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확인하고 다음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 특정 성분이나 제형이 갑자기 유행했다가 빠르게 다른 트렌드로 넘어가는 시장에서, 이런 속도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빠른 대응이 무분별한 제품 출시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제품군을 지나치게 확장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 초기에 하나의 대표 제품으로 관심을 끌었다면, 성장 단계에서는 대표 제품과 신규 제품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이 브랜드가 왜 이 제품을 만들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브랜드 전체의 경쟁력이 유지된다.


Image
라운드랩



콘텐츠, 다시 제품으로


K뷰티 스몰 브랜드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SNS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브랜드와 제품이 등장하고, 비슷한 성분과 콘셉트를 가진 제품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때 높은 조회수와 판매량을 기록했던 브랜드가 새로운 트렌드 앞에서 소비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첫 구매를 만들어내는 것이 ‘콘텐츠의 힘’이라면, 재구매를 만들어내는 것은 ‘제품의 힘’이다. 여기에 유통망 확대와 가격 경쟁력, 고객 데이터 확보, 해외 시장별 전략이 더해져야 안정적인 사업 구조가 만들 수 있다. 특히 해외 시장에서는 국내에서 통했던 마케팅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국가별 소비자 특성과 유통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가격대와 용량, 패키지, 콘텐츠 언어까지 현지 시장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K뷰티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질수록 스몰 브랜드의 기회도 커지고 있다.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는 브랜드가 많아질수록 소비자의 선택 기준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다음 성장은 짧은 유행을 넘어 소비자가 다시 찾을 이유를 얼마나 분명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커버
검색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