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자원의 재발견…지속가능 패션, 소재 경쟁 본격화

2026-10-19 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폐기물 업사이클링부터 재생원단·신소재까지…특허·수출로 경쟁력 입증

런던예술대학교(UAL) 센트럴 세인트 마틴 동문 네트워크가 올해 2월 시작한 글로벌 에세이 시리즈 ‘Sustainable Voices Without Borders’의 첫 기고자로 한국의 소재 스타트업 업모스트(UPMOST) 창업자 황보미 대표가 선정됐다. 세계 각지의 지속가능 디자인 사례를 조명하는 프로젝트에서 국내 브랜드가 첫 사례로 소개된 것이다. 이는 폐자원을 새로운 소재로 활용하는 국내 지속가능 패션 기업들의 활동이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폐간판과 자동차 안전벨트, 폐어망, 폐플라스틱처럼 패션과 거리가 멀었던 자원들이 새로운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제로퍼센트, 오버랩, 큐클리프, 업모스트, 포지티브미, 시온드는 각기 다른 소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지속가능 패션을 전개하는 브랜드다. 이들의 사례를 업사이클링, 재생소재, 기능성 신소재로 나눠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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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퍼센트는 폐간판 소재 파나플렉스와 자동차 안전벨트, 코르크 등을 활용해 가방과 지갑을 만든다.



도시 폐자원에 새 쓰임을…업사이클링 확장


제로퍼센트는 도심의 산업 폐자원인 폐간판 소재 파나플렉스와 자동차 안전벨트, 코르크 등을 활용해 가방과 지갑을 만든다. 인사동 쌈지길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이탈리아 업체와 ‘URBAG’ 시리즈 수출 계약을 맺고 유럽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의왕점에서 업사이클링 팝업스토어를 열었고,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K-핸드메이드페어에 참가해 소비자와 만났다. 같은 달 인도네시아의 한 청년 환경운동가가 제로퍼센트의 업사이클링 가방을 착용하고 기후행동 현장에 참여한 사례도 브랜드 채널을 통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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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랩은 수명을 다한 레저스포츠 장비를 가방과 의류로 재탄생시켰다.



오버랩은 수명을 다한 레저스포츠 장비를 가방과 의류로 재탄생시키는 브랜드다. 2021년 첫 컬렉션을 선보인 이후 패러글라이더의 캐노피와 산줄을 주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2~5년인 패러글라이딩 장비는 안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폐기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용인·단양·고창·제주 등지에서 활동하는 파일럿 37명과 진글라이더코리아 등 관련 기관으로부터 소재를 기부받아, 사용 흔적과 색을 살린 제품을 제작한다.


브랜드는 스스로를 ‘수명을 다한 제품의 다음 쓰임을 고민하는 디자인 연구실(lab)’로 소개한다. 초기 가방 중심이던 제품군도 아우터와 상의, 원피스, 하의 등으로 넓혔다. 소재 공급자와 제작자,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통해 폐자원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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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클리프는 현수막과 텐트, 유니폼 등 도시에서 발생하는 섬유 폐기물을 활용해 소재 범위를 넓혔다.



큐클리프는 2016년 폐우산 업사이클링으로 시작해 현수막과 텐트, 유니폼 등 도시에서 발생하는 섬유 폐기물로 소재 범위를 확장해 왔다. 서울새활용플라자에 입주해 있으며, 서울환경영화제(SEFF) 펀딩 굿즈 제작 등 환경 관련 기관과의 협업도 이어왔다.


2023년 12월부터 개발한 재생섬유 ‘써클립(CIRCLYP)’은 업사이클링 현수막 30%와 재생 페트(PET) 70%를 배합한 원단이다. 관련 특허를 출원했으며, 지난해 9월에는 프랑스 파리 메종&오브제 박람회에 참가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브랜드 ‘서울메이드’와 협업 제품을 선보였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는 공연 후 폐기 예정인 악보를 활용해 카드지갑을 제작했다.


2022년에는 ABC마트와 함께 매장에 폐우산 기부함을 설치하고, 참여 고객에게 매장 현수막으로 만든 키링을 제공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올해 6월에는 더현대 서울의 큐레이션 공간 ‘피어(PEER)’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전주국제영화제와는 상영 후 남은 현수막을 새 굿즈로 제작하는 협업을 5년째 이어가고 있다. DDP 새활용전에서는 폐우산 약 300개를 활용해 비상 생존 배낭과 침낭, 우의를 제작해 선보였다.


세 브랜드는 폐자원에 새로운 용도를 부여해 제품으로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큐클리프는 폐기물을 원단으로 재가공하는 소재 개발에도 나서면서 완제품 업사이클링을 넘어 재생소재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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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모스트는 폐플라스틱을 새로운 소재로 가공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확장했다.



폐플라스틱·폐어망, 재생소재로 재탄생


업사이클링이 버려진 제품이나 자원에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는 방식이라면, 재활용은 폐자원을 다시 가공해 소재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둔다. 소재를 재가공하면 제품의 형태와 용도를 넘어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업모스트는 폐플라스틱을 새로운 소재로 가공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확장한 사례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 텍스타일 디자이너 황보미 대표가 설립한 소재 스타트업으로, 고품질 PE 계열 폐플라스틱을 접착제 없이 열압착해 자체 소재를 개발했다.


황 대표는 2018년 울마크 컴퍼니 지속가능성상(The Woolmark Company Sustainability Prize)과 밀스 지속가능성상(The Mills Sustainability Prize)을 수상했다. 이후 국내에서 폐플라스틱 소재 사업을 시작했으며, 자체 소재 ‘REPE 시트’를 통해 100여 가지 패턴과 질감을 구현했다. 소재 관련 특허와 디자인 등록도 진행했다. 제품은 접착제와 봉제 사용을 최소화한 구조로 설계해 금속 부자재를 분리하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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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티브미는 지속가능 소재를 활용한 프리미엄 액티브웨어를 전개하고 있다.



김하나 대표가 이끄는 포지티브미는 2022년부터 지속가능 소재를 활용한 프리미엄 액티브웨어를 전개하고 있다. 폐어망과 플라스틱을 재생한 나일론에 식물성 텐셀·모달 섬유를 더해 초경량성과 흡한속건, 자외선 차단 기능을 갖춘 운동복을 선보인다. 2021년 말에는 친환경 원단으로 제작한 스포츠브라 4종을 크라우드펀딩으로 출시해 목표 금액의 1024%를 달성했다.


두 브랜드는 재생 플라스틱 등 지속가능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사업 방향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업모스트가 패션 소품에서 조명과 가구 등으로 소재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반면, 포지티브미는 액티브웨어의 기능성과 착용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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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니스 라이프웨어 ‘시온느’



재활용 넘어 기능성 신소재 개발로


지속가능 패션의 소재 범위가 폐기물 재활용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환경 부담을 줄이는 소재 활용과 함께 기능성을 차별화한 신소재를 개발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시온드는 이가우 대표가 설립한 웰니스 라이프웨어 브랜드다. 초기에는 소재 개발사 필라겐글로벌이 특허 출원한 콜라겐 섬유 ‘필라겐(FILAGEN)’을 공급받아 투마일 콘셉트의 홈웨어를 선보였다. 이후 밀크피시 비늘에서 추출한 콜라겐 펩타이드를 비스코스 원단에 결합한 자체 소재 ‘웨어러블 콜라겐’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브랜드 측은 해당 소재가 UPF50+의 자외선 차단 성능을 갖췄으며, 자체 시험에서 면 대비 최대 13배의 보습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한다. 콜라겐 섬유의 다공성 구조를 바탕으로 통기성이 뛰어나고, 반복 세탁 후에도 콜라겐 성분이 섬유 안에 남아 기능이 유지된다는 것이 브랜드 측 설명이다.


폐자원을 재활용하는 앞선 브랜드들과 달리 시온드는 기능성 소재를 차별화 요소로 내세운다. 지속가능 패션의 범위를 재활용 소재뿐 아니라 기능성 섬유를 활용한 라이프웨어까지 넓힌 사례다. 다만 소재의 기능성과 지속가능성은 별개의 평가 항목인 만큼, 환경적 효과를 주장하려면 원료 조달과 생산 과정 등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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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랩



소재 기술, 사업 성과로 연결


지속가능 패션은 소재의 친환경성을 알리는 단계를 넘어 기술 개발과 협업, 해외 진출 등 구체적인 사업 성과를 모색하고 있다. 제로퍼센트의 유럽 수출 계약, 큐클리프의 파리 박람회 참가, 업모스트의 UAL 글로벌 에세이 시리즈 선정은 각 브랜드가 제품과 소재의 활용 범위를 넓혀가는 사례다. 다만 해외 행사 참가나 사례 선정이 곧바로 매출 성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기술과 소재 경쟁력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시장 환경도 변하고 있다. 유럽환경청(EEA)은 유럽 시장에 출시된 섬유 제품 가운데 약 4~9%가 사용되기도 전에 폐기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에 따라 2026년 7월 19일부터 대기업의 미판매 의류·의류 액세서리·신발 폐기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중견기업에는 2030년 7월 19일부터 같은 규정이 적용된다.


이 규제는 미판매 제품을 무조건 폐기하는 대신 판매와 기부, 재사용 등 다른 처리 방안을 우선하도록 유도한다. 이에 따라 재고 관리와 재판매, 수선·재제조 등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도 커질 수 있다. 다만 규제가 곧바로 재활용 소재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재고 처리 방식과 재사용·재활용 인프라, 소재별 경제성 등이 함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정부와 섬유·의류업체, 재활용업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의류환경협의체’가 폐의류 자동 선별 체계와 한국형 에코디자인 기준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EU의 미판매 의류 폐기 금지와 같은 제도가 국내에 동일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폐의류의 수거·선별·재활용 체계와 관련 기준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재 기술을 앞세운 브랜드들이 실제 사업 성과를 얼마나 만들어낼지가 향후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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