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9 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기능성 전문화부터 고프코어·러닝 크루까지, 브랜드 전략 다변화
기능·스타일·커뮤니티 앞세워 세분화된 러닝 수요 공략
가을이 깊어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러닝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서울과 주요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마다 참가 신청이 조기 마감되고, 주말이면 도심과 하천, 공원 곳곳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한때 일부 마니아의 운동으로 여겨졌던 러닝이 이제는 연령과 성별을 넘어 대중적인 운동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러닝 인구는 업계에서 약 1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만 13세 이상 소비자의 조깅·달리기 연간 경험률은 2021년 23%에서 2023년 32%로 높아졌으며, 2025년에도 31%를 기록했다.
러닝의 대중화는 패션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닝웨어와 러닝화를 일상복과 함께 연출하는 ‘러닝코어’가 패션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러닝웨어 시장에서도 기능성뿐 아니라 디자인과 실루엣, 브랜드 정체성, 일상 활용도가 중요한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러닝웨어 브랜드의 경쟁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주도해온 시장에 국내 브랜드들이 각자의 강점을 앞세워 진입하면서 경쟁 구도도 다양해지고 있다. 실제 러닝에 필요한 기능성을 앞세우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기존 애슬레저 사업을 기반으로 러닝 카테고리를 키우는 브랜드도 등장했다. 아웃도어와 고프코어를 접목하거나 러닝 크루와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 등 차별화 전략도 다변화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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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렉은 무신사를 통해 제품을 선보이며 전문 러닝웨어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
기능성의 세분화…로드·트레일·입문자별 맞춤 전략
첫 번째 변화는 기능성의 세분화다. 러닝 목적과 숙련도에 따라 제품 선택 기준이 다양해지면서 땀 배출과 경량성, 통기성, 신축성 등 실제 운동 성능을 앞세우는 퍼포먼스형 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다. 러너의 숙련도와 운동 환경에 따라 소재와 패턴이 세분화되는 흐름은 러닝화 시장에서 먼저 나타난 전문화가 러닝웨어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칼렉은 러닝 베스트와 싱글렛, 양말 등 실전 러닝 아이템을 중심으로 로드 러너와 러닝 입문자를 공략한다. 최근에는 무신사를 통해 제품을 선보이며 전문 러닝웨어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베스트와 싱글렛 등 레이스와 훈련에 필요한 제품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일상복보다는 운동 성능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로 볼 수 있다.
트레일러닝 크루에서 출발한 풀라르는 아웃도어와 퍼포먼스웨어를 아우르며 트레일 러너와 아웃도어 소비자를 겨냥한다. 산길과 험지를 달리는 트레일러닝은 로드 러닝과 달리 방수성과 내구성 등 환경에 따른 기능이 중요하다. 풀라르는 아웃도어 분야의 노하우를 러닝웨어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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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슬레저 기반 브랜드들도 러닝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젝시믹스는 기존 애슬레저 사업을 바탕으로 러닝 카테고리를 별도의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RX’ 컬렉션은 2025년 약 2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2026년에도 기능성과 디자인을 강화한 러닝 라인으로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안다르는 가벼운 착용감과 세련된 디자인을 앞세워 러닝웨어의 일상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요가·필라테스웨어를 통해 축적한 소재 기술과 핏 노하우를 러닝 카테고리로 확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전문성과 대중성을 연결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결국 기능성 중심 브랜드의 경쟁력은 제품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문성을 얼마나 넓은 소비자층으로 확장하느냐가 관건이다. 로드 러닝 입문자부터 트레일 러닝 마니아까지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이를 일관된 브랜드 정체성으로 연결하는 것이 이들 브랜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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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젝시믹스, 겨울 러닝을 위한 ‘RX 에어라이트 패딩점퍼’ |
러닝의 패션화…‘운동복’에서 ‘일상복’으로
두 번째 변화는 패션성의 강화다. 러닝웨어를 운동할 때만 입는 옷이 아니라 카페나 출퇴근, 여행 등 일상에서도 활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운동복과 일상복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러닝웨어의 활용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러닝이 운동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이자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옷차림 역시 그 연장선에서 소비되는 것이다.
러닝 전문 브랜드는 아니지만, 아웃도어와 고프코어를 기반으로 러닝 시장까지 영역을 넓히는 브랜드도 등장하고 있다. 산산기어는 고프코어와 아웃도어 감성을 바탕으로 패션과 기능성을 함께 추구하는 소비자를 겨냥한다. 특히 러닝 중심 액티브웨어 브랜드 ‘토지(TOJI)’를 선보이며 기존의 디자인 감도를 러닝 퍼포먼스 영역으로 확장했다. 토지의 첫 컬렉션 ‘라딕스(RADIX)’는 가벼운 조깅부터 중거리 러닝까지 고려한 기능성과 일상에서의 활용성을 함께 추구한다. 아웃도어 특유의 투박함을 덜어낸 도시적인 실루엣에 기능성을 더해 러닝웨어를 일상 패션으로 즐기려는 소비자까지 겨냥한 것이다.
이들 브랜드는 러닝화와 레깅스, 반바지 등 전통적인 운동복에서 나아가 재킷과 바람막이, 셋업처럼 일상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제품군을 넓히는 경향을 보인다. 러닝웨어와 스트리트 캐주얼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도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있다. 운동 기능만큼이나 일상에서의 활용도와 스타일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러닝웨어의 경쟁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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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산기어는 ‘토지(TOJI)’를 선보이며 기존의 디자인 감도를 러닝 퍼포먼스 영역으로 확장했다. |
커뮤니티의 브랜드화…크루에서 브랜드로
세 번째 경쟁 축은 커뮤니티다.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러닝 크루와 오프라인 모임, 지역 커뮤니티 등을 통해 소비자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러닝 크루와 오프라인 이벤트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애착을 형성하는 주요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함께 달리는 경험이 브랜드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중심 브랜드는 제품과 광고를 넘어 소비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주력한다.
풀라르는 2016년 트레일러닝 크루에서 출발해 2018년 퍼포먼스웨어를 선보인 브랜드다. 크루에서 시작해 제품으로 영역을 넓힌 성장 과정은 커뮤니티가 브랜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IFE 러닝라이프는 제품 판매를 넘어 러닝대회와 크루, 앱 등을 운영하며 러닝 문화를 브랜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컨텐트먼트는 서울 삼청동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러닝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심 러너와 로컬 문화 소비자를 겨냥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로컬리티는 대형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다. 특정 지역의 문화와 소비자 특성을 반영하고 러너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규모는 작더라도 충성도 높은 팬층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브랜드에게 러닝 크루는 브랜드의 가치와 정체성을 소비자와 공유하는 소통 창구다. 함께 달리는 경험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제품 구매로 연결하는 것이 커뮤니티 중심 브랜드의 성장 전략이다. 가을 대회 시즌처럼 러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기는 브랜드 경험을 확산하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강화할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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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FE 러닝라이프는 러닝대회와 크루, 앱 등을 운영하며 러닝 문화를 확장하고 있다. |
세분화된 시장, 이제는 확장이 관건
국내 러닝웨어 시장은 브랜드마다 출발점과 지향점에 따라 경쟁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전문 러닝웨어를 중심으로 기능성을 강화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패션과 일상복으로 영역을 넓히거나 러닝 크루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소비자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브랜드도 있다. 서로 다른 강점을 앞세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경쟁 구도도 다변화하고 있다.
다만 시장이 커질수록 하나의 강점만으로 차별화하기는 어려워진다. 퍼포먼스형 브랜드는 일상 활용도를, 패션형 브랜드는 기능성을, 커뮤니티형 브랜드는 제품군과 유통 채널의 확장을 각각 과제로 안고 있다. 전문성만으로는 소비자층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고, 패션성만으로는 러너들의 신뢰를 얻기 어려우며, 커뮤니티만으로는 매출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각자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기능과 스타일, 소비자 경험을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하느냐가 다음 단계의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러닝대회 특수와 러닝코어 열풍이 맞물리는 시기는 국내 브랜드들이 기존 포지션을 넘어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할 기회이기도 하다.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와 대형 스포츠 브랜드까지 경쟁에 가세하는 상황에서, 가을 성수기에 확보한 소비자 관심을 다음 시즌의 구매와 브랜드 충성도로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국내 러닝웨어 브랜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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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러너와 로컬 문화 소비자를 겨냥한 컨텐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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