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어 본 고객이 다시 찾는다…‘가상피팅’ 고객 재방문율 44%

2026-10-19 김근재 대표 viim@viceversa.ai

패션 AI 시대 고수로 사는 법 03

단순 전환율 넘어 콘텐츠도 만들고 현장 체험까지…패션 커머스 판을 바꾸다



‘이 옷, 나한테 어울릴까?’


쇼핑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한다. 매장이라면 피팅룸에서 입어 보면 그만이지만, 온라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모델이 입은 사진을 보며 내 몸에 걸쳤을 때를 상상할 수밖에 없고, 그 상상이 빗나가면 결국 반품 상자를 꾸리게 된다. 온라인 의류 반품률이 30~40%에 이른다는 건, 업계가 그동안 이 ‘상상의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질문에 기술이 답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숫자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전 세계 쇼핑객 120만 명의 행동을 분석해 보니, 가상피팅으로 옷을 입어 본 고객은 그렇지 않은 고객보다 장바구니에 3배 더 많이 담았고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도 50% 높았다. 둘러보는 상품 수는 무려 7배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재방문이다. 한 달 뒤 다시 찾아온 고객이 가상피팅 사용자는 44%였지만, 사용하지 않은 고객은 1%에 그쳤다. 한 번 입어 본 고객은 더 많이 살 뿐 아니라,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다.


단순히 기능 하나가 좋아졌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커머스의 평균 구매 전환율은 1~2%대에 머문다. 100명이 들어와도 98명은 그냥 나가는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고객의 망설임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광고비를 더 쓰는 것보다 확실한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다.


시장도 이 흐름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글로벌 가상 피팅룸 시장은 올해 약 83억 달러에서 2034년 3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해마다 17% 넘게 커지는 셈이다. 월마트와 갭은 일찌감치 관련 스타트업을 사들였고, H&M과 휴고보스, 구찌도 저마다의 가상 착용 서비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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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 메쉬키(MESHKI) 온라인몰에 적용된 애니웨어 실시간 가상피팅. 상품 페이지에서 카메라를 켜면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영상으로 바로 나타난다. (출처: 애니웨어 화면 갈무리)



사진에서 영상으로…‘입어 보기’는 기본값


이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실감하게 해 주는 서비스가 ‘애니웨어(Anywear)’다. 실시간 영상 AI 기업 ‘디카르트’가 만든 이 서비스는 크롬 브라우저에서 바로 쓸 수 있다. 카메라를 켜고 아무 쇼핑몰에서나 마음에 드는 옷 사진을 화면으로 끌어다 놓으면, 1.5초쯤 뒤 그 옷이 내 몸 위에 입혀진다. 사진 한 장을 합성하던 예전 방식과 달리 영상의 매 장면을 새로 그려 내기 때문에, 몸을 돌리면 옷도 자연스럽게 따라 움직인다.


쇼핑몰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다. 코드 한 줄만 넣으면 상품 이미지를 알아서 인식해 피팅 버튼을 달아 준다. 사용자들은 한 번 들어오면 평균 8.7개 상품을 입어 보고 7.8분을 머문다고 한다. 최근에는 글로벌 AI 기업이 디카르트를 조 단위에 인수하려 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실시간 영상 AI가 ‘보면서 사는’ 쇼핑의 기반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아직 완벽하진 않다. 없던 액세서리를 그려 넣기도 하고, 옆모습이나 뒷모습은 어색하게 나오기도 한다. 사이즈가 맞는지도 여전히 알려 주지 못한다. 그래도 흐름만큼은 분명하다. 입어 보는 경험이 매장 피팅룸을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가능해지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애니웨어가 특정 브랜드나 쇼핑몰에 묶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객은 어느 몰의 어떤 옷이든 자기 몸에 걸쳐 볼 수 있다. 입어 보는 주도권이 브랜드에서 고객에게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 옷이 고객의 화면에서 어떻게 보일지를 이제 브랜드 혼자 정할 수 없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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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쇼룸에서 선보인 빔스튜디오 AI 패션 체험(출처: 바이스벌사)



가상 피팅의 진짜 가치는 ‘콘텐츠’


사실 전환율만 놓고 보면 가상피팅의 절반만 본 것이다. 현장에서 지켜본 더 큰 변화는 콘텐츠에서 일어난다. 가상피팅으로 만든 결과물은 고객이 직접 남기고 나누는 콘텐츠가 된다. 고객 한 명의 체험이 콘텐츠 한 편이 되고, 그 콘텐츠가 또 다른 고객을 불러온다.


신상품 하나를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 보면 더 와닿는다. 모델을 섭외하고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보정과 편집을 거쳐 상세페이지와 SNS 이미지를 만들기까지 몇 주가 훌쩍 지나간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콘텐츠도 결국 한 가지 체형, 한 가지 분위기에 머문다. 가상피팅은 여기에 고객 수만큼의 다양함을 더해 준다. 따로 촬영하지 않아도 여러 체형과 스타일의 콘텐츠가 쌓이니, 제작비 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


바이스벌사가 패션 AI 플랫폼 ‘빔스튜디오’로 오프라인 현장에서 직접 시험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구조다. 지난 9월, W컨셉이 패션위크에 맞춰 연 뉴욕 팝업(9월 10~23일, 90여 개 브랜드)과 파리 팝업(9월 30일~10월 12일, 75개 브랜드)에서 ‘AI 룩북 챌린지’를 선보였다.


이 경험은 이제 서울로 이어진다. 바이스벌사는 12월 28일까지 DDP 디자인랩 1층 DDP 쇼룸에서 시민 참여형 룩북 챌린지를 진행한다. 시민이 직접 모델이 된 룩북을 만들면 완성된 영상이 쇼룸 화면에 걸리고, 그걸 본 다음 방문객이 또 참여하는 식이다. 공간을 채우는 주인공이 브랜드가 아니라 고객이 되는 것이다.


K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해외 고객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도 결국 ‘이게 나한테 어울릴까’라는 질문이다. 같은 옷이라도 참여자마다 전혀 다른 룩북이 나오다 보니, 낯설던 브랜드가 어느새 ‘나만의 스타일’로 다가온다. 구경만 하던 고객이 룩북 모델이 되는 순간, 브랜드와 고객 사이의 거리도 한결 가까워진다.



지금 당장 가상 피팅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이제 가상 피팅은 상세페이지 한쪽에 붙은 부가 기능이 아니다. 고객의 경험과 콘텐츠, 구매를 하나로 이어주는 장치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왜 지금 시작해야 할까.


우선 시작이 생각보다 쉬워졌다. 별도의 앱을 만들거나 3D 모델링을 하지 않아도, 상품 사진만 있으면 된다. 한때 대기업만 쓸 수 있던 기술을 이제는 신진 브랜드도 한 시즌 안에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다.


고객이 입어 본 기록이 쌓인다는 점도 크다. 어떤 옷을 몇 번이나 입어 봤는지, 무엇과 함께 매치했는지, 입어 본 뒤 결국 무엇을 샀는지. 지금까지 어떤 피팅룸도 남겨 주지 못한 정보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다음 시즌 기획도 감이 아니라 고객의 선택에서 출발할 수 있다.


오프라인 행사의 성과가 눈에 보이게 남는다는 것도 반가운 변화다. 몇 명이 참여했고 몇 편의 룩북이 SNS로 퍼져 나갔는지가 숫자로 남으니, 한 번 하고 끝나던 팝업이 다음 팝업을 설계하는 밑거름이 된다.


국내 브랜드라면 이 효과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많은 브랜드가 플랫폼이라는 같은 화면 안에서 비슷비슷한 상품 사진으로 경쟁하고 있다. 할인 말고는 차별화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고객이 직접 입어 보고 그 경험을 브랜드와 함께 남기는 구조는 브랜드만의 목소리를 지키는 좋은 방법이 된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K-브랜드에게는 낯선 고객과의 첫 만남을 앞당기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옷을 ‘보고 사던’ 시대에서 ‘입어 보고 사는’ 시대로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이 변화의 승자는 기술을 가장 먼저 들여온 브랜드가 아니라, 고객의 체험을 브랜드의 자산으로 바꾸는 구조를 먼저 만든 브랜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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