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9 김원 대표 nyxnox1@naver.com
김 원의 Beyond Textile 24
스마트폰 화면이 담지 못하는 옷의 진짜 디자인을 찾아서
요즘은 옷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본다. 화면을 확대하면 자카드(여러 색실로 무늬를 짜는 방식) 무늬도, 비치는 소재의 질감도, 메쉬의 작은 구멍도 보인다.
하지만 화면은 원단의 두께나 촉감, 빛이 통과하는 정도, 몸을 움직일 때 바뀌는 형태까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패션이 화면 중심이 될수록, 디자이너들은 화면으로 복제할 수 없는 것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평평한 프린트 무늬보다 손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질감, 빛에 따라 달라지는 겹침, 몸 주변에 입체적인 공간을 만드는 표면이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왜 디지털 시대의 옷은 오히려 건축물처럼 변하고 있을까.
장식과 구조의 경계가 사라지다
예전에는 옷의 구조와 장식이 따로 만들어졌다. 먼저 패턴을 그리고 원단을 재단해 봉제한 뒤, 그 위에 프린트나 자수, 비즈 같은 장식을 더했다. 구조는 옷의 형태를 잡는 역할을, 장식은 옷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디지털 자카드, 레이저 커팅, 본딩(열이나 접착제로 원단을 이어 붙이는 방식), 3D 프린팅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실의 밀도와 방향을 조절해 입체적인 표면을 만들고, 소재를 잘라낸 빈 공간으로 실루엣을 만들고, 얇은 막을 여러 겹 이어 붙여 옷의 부피를 만든다. 이제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이 됐다.
자카드가 좋은 예다. 예전에는 복잡한 꽃무늬나 문양을 짜 넣는 고급 장식 기법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조직의 높낮이와 밀도, 실이 교차하는 방향이 옷의 깊이와 리듬을 만든다. 무늬보다 표면의 굴곡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장식이 구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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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반 헤르펜의 드레스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조각 작품 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식물의 뿌리나 건물의 골조처럼 보인다. |
구조를 3D 프린팅으로 출력
네덜란드 디자이너 ‘아이리스 반 헤르펜’의 작업은 이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건축가 ‘줄리아 쾨르너’와 함께 투명한 드레스 구조를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다. ‘하이브리드 홀리즘’ 컬렉션에 속한 이 드레스는, 액체 상태의 폴리머(합성수지)를 레이저로 굳혀가며 아래부터 위로 층층이 쌓아 올려 완성했다.
이 드레스에는 따로 붙인 장식이 없다. 층층이 쌓인 선과 반복되는 구조가 몸 주변에 부피를 만들고, 동시에 빛을 통과시켜 무늬가 된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조각 작품 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식물의 뿌리나 건물의 골조처럼 보인다.
사진으로 봐도 멋있지만, 진짜 가치는 화면 밖에 있다. 몸과 구조 사이에 생기는 그림자, 걸을 때 흔들리는 선,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투명도가 계속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디지털 기술로 만들었지만 결과물은 매우 물질적이다.
핵심은 3D 프린팅이라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디자이너가 옷의 실루엣만 그리지 않고 소재가 어디에서 단단해지고 어디에서 휘어질지, 어느 부분을 비우고 어느 부분을 연결할지까지 미리 설계한다는 점이다. 표면은 마지막에 더하는 장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산된 구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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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뮤얼 로스의 어콜드월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순된 마음을 메쉬와 레이어로 표현한다. |
도시의 질감을 옷으로 옮기다
새뮤얼 로스의 브랜드 ‘어콜드월’은 다른 방향에서 구조적인 표면에 접근한다. 메쉬와 그리드, 기능성 소재, 겹쳐진 패널은 콘크리트 건물의 외벽이나 공사장의 안전망, 도시의 기반시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도시의 모습을 원단에 그대로 프린트한 것은 아니다. 도시를 이루는 질서와 긴장감을 옷의 구조로 옮겨온 것이다.
메쉬는 몸을 덮으면서도 공기와 빛을 통과시킨다. 여러 겹의 패널은 몸을 보호하면서도 움직임에 따라 열리고 닫힌다. 이 옷은 완전히 막힌 갑옷도,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얇은 막도 아니다. 몸과 도시 사이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막을지 스스로 조절하는 옷이다.
이런 모습은 요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비슷하다. 보호받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고, 드러내고 싶지만 전부를 보여주긴 싫다. 어콜드월은 이 모순을 메쉬와 레이어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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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크리스는 미래의 가능성이 지금 입는 옷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
투명한 구조를 일상으로
‘아크리스’의 디자이너 알베르트 크림러는 구조와 투명성을 좀 더 절제된 방식으로 적용한다. 기능성 원단과 필름 레이어, 반투명한 오간자를 겹쳐 몸과 옷 사이에 얇은 공간을 만든다. 투명한 표면 너머로 안쪽의 조직과 연결, 겹쳐진 순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투명함은 살을 많이 드러내는 시스루와는 다르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흐리게 할지 조절하는 방식에 가깝다. 겉감과 안감, 구조와 장식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는데도 전체 실루엣은 깔끔하다. 아이리스 반 헤르펜이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아크리스는 그 가능성이 지금 입는 옷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생산 과정과 원료, 수선과 재활용 정보까지 공개하라는 요구가 커지는 시대, 구조를 감추지 않는 디자인은 의미가 더욱 크다. 공급망이 투명해진 것과 투명한 소재가 유행하는 것에 연결 요소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 두 흐름은 같은 시대의 감각에서 나왔다.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섬유 분야의 디지털 제품 여권(DPP)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앞으로 옷은 섬유의 구성뿐 아니라 원산지, 수선과 재사용, 재활용에 필요한 정보까지 설명해야 한다. 옷의 가치는 더 이상 완성된 겉모습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던 생산과 사용 이후의 과정도 제품의 일부가 된다.
보기 위한 표면에서, 작동하는 표면으로
구조적인 표면은 아름다움만 만들지 않는다. 조직의 밀도와 구멍의 크기는 통기성과 무게를 바꾸고, 레이어의 위치는 보호성과 신체 노출 정도를 조절한다. 재단과 연결 방식은 소재 사용량과 생산 공정에도 영향을 준다. 표면이 옷의 인상뿐 아니라 성능과 생산 방식까지 관여하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물론 구조적으로 보인다고 모든 옷이 기능적이거나 지속가능한 것은 아니다. 복합소재와 본딩은 분리와 재활용을 어렵게 만들 수 있고, 3D 프린팅 구조가 대량생산되고 편하게 입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아직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 보이는 구조와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다시 스마트폰 속 옷을 들여다보자. 이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무늬가 아니다. 이 구멍은 왜 필요한지, 겹쳐진 막은 무엇을 조절하는지, 반복된 조직은 옷의 형태와 움직임을 어떻게 바꾸는지 봐야 한다.
아이리스 반 헤르펜은 기술로 구조를 장식으로 만들고, 새뮤얼 로스는 도시의 외피를 옷으로 옮기고, 알베르트 크림러는 투명한 구조를 일상의 옷으로 정리한다. 세 디자이너의 방법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장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식은 빛과 공기, 몸과 공간을 움직이는 구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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