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백팩 인기, 왜?

2026-08-20 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Y2K·고프코어·실용성 트렌드와 함께 헤리티지 백팩 재조명

잔스포츠·이스트팩·칸켄 등 스테디셀러 전성기



Image
클래식한 실루엣과 높은 활용도를 앞세운 백팩의 대명사, 잔스포츠 ‘슈퍼브레이크’



한때 백팩은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새 학기를 앞두고 가장 먼저 준비하는 필수품이었고, 브랜드 백팩 하나로 또래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미니백 중심의 패션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백팩의 존재감은 한동안 약해졌다. 작고 가벼운 가방이 스타일의 중심이 되고, 실용성보다 디자인이 우선시되면서 백팩은 다소 뒤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패션 시장에서 백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의 ‘국민 책가방’은 이제 뉴트로 아이템이 됐고, 아웃도어 백팩은 고프코어 패션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노트북과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 휴대가 일상화되면서 수납공간과 착용감,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백팩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새로운 브랜드보다 수십 년간 사랑받아 온 스테디셀러들이 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는 것. 20~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백팩들은 그저 오래된 제품이 아닌 클래식한 아이템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Image
백팩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이스트팩 ‘패디드 패커’



‘국민 책가방’에서 뉴트로 아이템으로


백팩 부활의 중심에는 ‘잔스포츠’와 ‘이스트팩’이 있다. 1967년 탄생한 잔스포츠(JanSport)는 미국을 대표하는 백팩 브랜드로 성장하며 전 세계 학생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특히 ‘슈퍼브레이크(SuperBreak)’은 심플한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 다양한 컬러 구성으로 수십 년간 꾸준한 판매를 이어온 대표 모델이다. 잔스포츠 역시 슈퍼브레이크를 자사의 대표적인 클래식 스타일로 소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재생 소재를 적용한 제품까지 선보이며 시대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백팩은 오랫동안 학생들의 책가방으로 인식돼 왔지만, 최근에는 일상과 패션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빈티지 패션과 Y2K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심플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이 오히려 새로운 스타일 코드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트팩(Eastpak)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1950년대 미국 군용 가방 제조에서 출발한 이스트팩은 내구성과 실용성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대표 모델인 ‘패디드 파커(Padded Pak'r)’는 단순한 형태와 견고한 소재를 앞세워 시대 변화에도 살아남았다. 최근에는 다양한 컬러와 협업 제품을 선보이며 젊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들 브랜드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오랜 시간 검증된 디자인과 품질, 그리고 브랜드가 가진 스토리가 새로운 소비 가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Image
고프코어 트렌드와 함께 주목받은 도시형 기능성 백팩, 아크테릭스 ‘맨티스’



아웃도어 기술력이 일상으로


백팩 시장의 또 다른 변화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영향력 확대다. 과거 아웃도어 백팩은 등산과 여행 등 특정 목적을 위한 제품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능성을 갖춘 디자인이 오히려 패션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방수 소재, 인체공학적 설계, 가벼운 무게, 뛰어난 내구성은 일상에서도 중요한 구매 기준이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크테릭스(Arc'teryx)다. 1989년 캐나다에서 등반가들이 설립한 ‘락 솔리드(Rock Solid)’를 전신으로 하는 이 브랜드는 199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미니멀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패션 시장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확보했다. 특히 ‘아로(Arro)’, ‘맨티스(Mantis)’, ‘헬리아드(Heliad)’ 등 백팩 라인은 도시 생활자를 위한 데일리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으며 고프코어 트렌드를 대표하는 제품군으로 자리 잡았다.


1977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설립된 그레고리(GREGORY) 역시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아웃도어 백팩 브랜드다. 창업자 웨인 그레고리는 등판과 하네스 설계에 집중해 신체에 맞는 착용감을 구현했고, 이를 바탕으로 ‘발토로(Baltoro)’, ‘데바(Deva)’ 등 브랜드를 대표하는 백팩 라인을 선보이며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등산용 백팩의 기술력을 살리면서도 일상과 여행에 활용 가능한 캐주얼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백팩 시장에서는 아웃도어와 데일리라는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는 소비자가 하나의 가방으로 출근, 출장, 여행까지 해결하려는 멀티 유즈(Multi-use) 소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Image
아웃도어 백팩의 기능성과 뛰어난 착용감을 일상으로 가져온 그레고리 ‘데이팩’



기본에 충실


트렌드 변화가 빠르고 소비자의 취향이 끊임없이 변하는 패션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제품은 흔치 않다. 그럼에도 클래식 백팩이 꾸준히 선택받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는 변하지 않는 디자인이다. 유행을 강하게 반영하지 않은 심플한 형태는 시간이 지나도 활용도가 높다. 두 번째는 내구성이다. 한 번 구매하면 수년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현재 소비자와 맞닿아 있다. 세 번째는 브랜드가 가진 헤리티지다.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역사와 이야기를 함께 소비한다.


피엘라벤(Fjallraven)의 ‘칸켄(Kanken)’은 1978년 창업자 아케 노르딘(Ake Nordin)이 스웨덴 학생들의 등·허리 통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제품으로 사각형 실루엣과 넓은 어깨끈으로 무게 부담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출시 이후 지금까지 오리지널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30여 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컬러와 브랜드 스토리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전 세계에서 짧은 시간마다 하나씩 팔리는 밀리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포터(PORTER)의 ‘탱커(Tanker)’ 시리즈 역시 오랜 시간 사랑받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장인정신과 높은 완성도를 기반으로 프리미엄 가방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포터는 1983년 탱커 시리즈를 발표하며 지금의 정체성을 완성했다. 미국 공군의 플라이트 재킷 'MA-1'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된 탱커는 광택감 있는 나일론 능직과 발수성이 뛰어난 나일론 타프타 사이에 폴리에스터 안감을 덧댄 독자적인 3중 구조 원단을 사용해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내용물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성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이 같은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도 100% 식물 유래 나일론을 적용한 ‘올 뉴 탱커(All New Tanker)’를 선보이며 지속가능성까지 더하고 있다.


Image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피엘라벤 ‘칸켄’



예쁘고 오래 쓰는 가방


백팩의 인기는 최근 소비자들의 달라진 구매 기준과도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새로운 디자인과 빠른 트렌드 반영이 중요했다면, 현재 소비자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한 시즌 쓰고 버리는 제품보다 활용도가 높고 품질이 검증된 제품에 투자하는 것이다.


특히 MZ세대는 브랜드의 역사와 제품 탄생 배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래된 브랜드를 낡은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증명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 확산, 여행 증가, 디지털 기기 사용 확대도 백팩 시장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노트북과 태블릿, 각종 액세서리를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는 기능성 백팩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EDC(Everyday Carry)’ 백팩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일상적으로 휴대하는 전자기기와 소지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들이 직장인과 크리에이터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Image
포터의 시그니처 시리즈 ‘탱커’





커버
검색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