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0 이정준 대표 brpc@brepeace.com
이정준의 제3세대 유통트렌드 22
스포츠·캐주얼·아웃도어 경계 사라지며 ‘똘똘한 한 벌’이 중요
예전에는 옷의 용도가 비교적 분명했다. 정장은 회사에서 입는 옷이었고, 청바지는 주말에 입는 옷이었다. 운동복은 운동할 때 입었고, 등산복은 산에 갈 때만 꺼내 입었다.
지금은 다르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친 사람도 레깅스를 입고 있고, 아이를 등교시키는 부모도 요가복 위에 셔츠나 재킷을 가볍게 걸친다. 출근할 때 입은 옷으로 산책하고, 운동을 마친 뒤에도 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카페와 마트에 들르는 모습도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 운동복을 입고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운동복은 더 이상 운동만을 위한 옷이 아니다. 오래 편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옷이 됐다.
이 변화야말로 애슬레저가 남긴 가장 큰 흔적이 아닐까. 애슬레저는 운동을 뜻하는 애슬레틱(Athletic)과 여가를 뜻하는 레저(Leisure)가 결합한 말이다. 처음에는 운동복을 일상에서 입는 새로운 스타일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레깅스에 셔츠를 걸치고, 러닝화를 일상복과 함께 신는 모습이 하나의 유행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단계에 들어섰다. 애슬레저는 더 이상 특정한 스타일이나 제품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운동과 일상, 출근과 여가의 경계가 흐려진 생활방식에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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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슬레저를 넘어 스포츠·패션·아웃도어의 경계를 허물고 소비자의 하루 전체를 공략하는 ‘라이프웨어’ 시대가 온다. (사진: 브리피스) |
레깅스에서 라이프스타일로
대표적인 사례가 젝시믹스다. 처음 젝시믹스를 기억하는 소비자들은 이 브랜드를 레깅스 브랜드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의 젝시믹스는 레깅스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티셔츠와 바람막이, 팬츠를 비롯해 골프웨어와 남성·키즈 제품까지 영역을 넓히며 스포츠와 일상을 아우르는 브랜드로 확장하고 있다.
안다르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요가와 필라테스 중심의 애슬레저 브랜드에서 시작했지만, 출근할 때 입을 수 있는 팬츠와 재킷, 여행과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품군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룰루레몬은 요가웨어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러닝, 트레이닝, 테니스, 골프는 물론 일상과 출퇴근을 위한 제품까지 폭넓게 선보이고 있다. 소비자 역시 룰루레몬을 단순한 운동복 브랜드가 아니라 건강하고 활동적인 생활방식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전통적인 스포츠 브랜드도 더 이상 기능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기력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디자인과 협업, 문화와 라이프스타일까지 제안한다. 운동장에서 신던 신발이 패션 아이템이 되고, 트레이닝 재킷이 일상적인 외출복이 되는 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똘똘한 한 벌’로 하루 종일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있다. 패션 브랜드 역시 스포츠웨어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스트레치 소재, 가벼운 무게, 흡습속건, 구김이 적은 원단, 편안한 허리 밴드와 같은 요소들은 더 이상 스포츠 브랜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장 팬츠에도 신축성이 들어가고, 출근복에도 운동복처럼 편안한 소재가 사용된다. 기능성은 스포츠의 영역에서 일상복의 기본 조건으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패션은 스포츠의 기능을 배우고, 스포츠는 패션의 감성과 디자인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브랜드들이 소비자의 일상이라는 가운데 지점으로 모이고 있다.
달라진 생활이 달라진 옷을 만든다. 아침에는 미팅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이동하며 업무를 보고, 퇴근 후에는 운동하거나 친구를 만난다. 주말에는 여행이나 야외 활동으로 이어진다. 하루의 일정이 계속 바뀌는 만큼 소비자는 상황마다 옷을 갈아입기보다 하나의 옷으로 여러 장면을 소화하기를 원한다.
카테고리보다 ‘활용도’가 먼저
이 때문에 옷을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움직이기 좋은가’, ‘너무 운동복처럼 보이지 않는가’, ‘출근과 여행에서 모두 입을 수 있는가’, ‘세탁과 관리가 편한가’와 같은 현실적인 질문이 브랜드가 설정한 카테고리보다 앞선다.
브랜드는 여전히 스포츠, 캐주얼, 컨템포러리, 아웃도어와 같이 시장을 구분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미 그 경계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필자가 운영하는 요가웨어 브랜드 ‘브리피스’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자주 느낀다. 브리피스는 운동할 때만 입는 요가복보다 수련을 마친 뒤 카페에 가고, 여행을 하고, 일상에서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지향한다. 지나치게 강한 기능성이나 몸에 밀착되는 실루엣보다 면 소재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운 루즈핏을 중심으로 제품을 전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고객 반응에서도 운동할 때보다 평소에 더 자주 입거나 여행 갈 때 꼭 챙긴다는 이야기를 접한다. 집 앞에 나갈 때 가장 먼저 손이 간다는 표현도 있다.
브랜드는 요가웨어로 제품을 소개하지만, 소비자는 자신의 생활방식에 맞게 그 용도를 다시 정한다. 제품의 카테고리는 브랜드가 정하지만 제품의 쓰임은 소비자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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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확장은 ‘카테고리’가 아니라 ‘시간’
소비자는 카테고리 안에서만 옷을 입지 않는다. 운동복을 출근복으로 입고, 아웃도어 재킷을 일상복으로 입으며, 스니커즈를 정장과 함께 신는다. 때로는 브랜드보다 소비자가 먼저 카테고리의 경계를 넘어선다.
젝시믹스가 레깅스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패션 카테고리로 확장하는 것도, 룰루레몬이 요가를 넘어 러닝과 골프, 출퇴근 시장으로 넓어지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운동복으로는 고객의 운동 시간만 점유할 수 있지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면 고객의 하루 전체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스포츠 브랜드가 패션 브랜드로 확장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군을 늘리는 것과 브랜드가 진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레깅스를 잘 만들던 브랜드가 갑자기 데님과 셔츠를 출시한다고 해서 곧바로 캐주얼 브랜드로 영역이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고객이 왜 그 브랜드를 좋아했는지, 새로운 제품에도 기존 브랜드의 강점이 이어지는지, 확장이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소비자의 공감이 뒷받침돼야 한다.
브랜드의 확장은 카테고리를 넓히는 일이 아니라 고객과 관계를 맺는 시간을 넓히는 일에 가깝다.
운동할 때 만났던 고객을 출근과 여행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반대로 매출을 늘리기 위해 무관한 제품을 추가한다면 브랜드의 정체성만 흐려질 수 있다.
애슬레저 다음은 ‘라이프웨어’
앞으로는 애슬레저라는 단어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애슬레저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옷 속에 애슬레저의 특징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편안함과 활동성, 기능성과 디자인의 결합은 더 이상 특정 카테고리만의 특징이 아니다. 일상복 자체가 운동복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패션 브랜드의 경쟁 상대도 달라질 수 있다. 요가웨어 브랜드의 경쟁 상대가 다른 요가웨어 브랜드만은 아니다. 편안한 팬츠를 만드는 캐주얼 브랜드, 여행복을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기능성 소재를 사용하는 컨템포러리 브랜드가 모두 같은 소비자의 선택지 안에 들어온다.
스포츠 브랜드 역시 같은 스포츠 브랜드뿐 아니라 디자이너 브랜드와 SPA 브랜드, 아웃도어 브랜드와도 같은 소비자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결국 소비자의 하루를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의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는 운동복이 아닌 자신의 하루, 일주일을 함께할 옷을 선택하게 ??것이다. 그리고 변화한 소비자의 생활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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