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0 김근재 대표 viim@viceversa.ai
패션 AI 시대 고수로 사는 법 02
‘잠들지 않는 AI’ 판매 시스템이 中 라이브커머스를 뒤집다
![]() |
|---|
| 바이두의 AI 라이브커머스 진행화면 |
7시간에 105억, 진행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해 6월 중국 라이브커머스 업계에서 한 방송이 화제가 됐다. 바이두의 커머스 생방송 플랫폼 ‘유쉬안’에서 약 7시간 동안 진행된 이 방송은 누적 시청자 1,300만 명, 총 거래액 5,500만 위안(약 105억 원)을 기록했다. 성과도 성과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바로 화면 속 진행자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바로 중국의 대표 쇼호스트 뤄융하오와 공동 진행자 샤오무의 외형을 본뜬 대화형 AI 아바타였다.
두 아바타는 실제 사람처럼 농담을 주고받았고, 시청자들이 좋아하던 이른바 ‘뤄융하오식 농담’도 상황에 맞춰 구사했다. 채팅창에 올라오는 질문에도 적절한 답을 내놨다. 바이두가 AI라는 사실을 미리 고지했음에도, 일부 시청자는 사람이 디지털 휴먼을 흉내내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람 진행자는 채팅이 몰리면 질문을 놓치기 마련이지만 AI는 놓치지 않았다. 응대 만족도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방송을 위해 바이두는 1만 3,000개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9만 7,000단어 분량의 제품 설명을 생성하고, 세션 중 8,300개 이상의 아바타 동작을 조율했다고 밝혔다. 정작 놀란 쪽은 뤄융하오 본인이었다. 자신이 직접 진행한 방송보다 높은 성과가 나오자 그는 웨이보에 놀랐다고 전했다. 바이두에 따르면 현재 쇼핑·교육·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10만 명이 넘는 디지털 휴먼이 활동 중이며, 도입 기업들은 운영 비용을 80% 이상 줄이면서 거래액은 평균 62% 끌어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디지털 휴먼’은 ‘가상 모델’이 아니다
디지털 휴먼이라는 말에 아직도 3D 캐릭터나 가상 모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 중국 기업들이 쓰는 AI 디지털 휴먼은 그 개념과 거리가 있다. 생성형 AI, 음성합성(TTS), 음성인식(STT), 대규모 언어모델(LLM), 표정 생성, 립싱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이면서 AI는 사람과 유사한 방식으로 제품을 설명하고 고객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
핵심은 ‘대본을 읽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최신 디지털 휴먼은 제품 데이터와 FAQ를 기반으로 소비자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답변을 생성하며, 여러 언어로 실시간 소통한다. 이는 AI를 콘텐츠 제작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판매 인력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AI가 열어젖힌 시장은 ‘한밤중’
중국 기업이 AI 판매원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운영 효율이다. 기존 라이브커머스는 진행자 섭외, 촬영 스태프, 방송 장비, 운영 인력까지 상당한 고정비가 들어간다. 반면 디지털 휴먼은 초기 구축 이후 장시간 안정적으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동일한 품질의 방송을 이어간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다. AI가 ‘심야’라는 새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사람이 방송하기 어려운 새벽에도 AI는 제품을 소개하고 문의에 답한다.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던 시간대가 매출 구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AI 라이브커머스를 비용 절감 기술이 아니라 매출 확대 전략으로 규정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배경이다.
실제 사례도 나온다. 일본 전자기업 브라더는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AI 가상 호스트 방송을 운영해 일반 방송보다 높은 판매 성과를 냈고, 여러 온라인 스토어에 적용하면서 운영비를 줄이는 동시에 심야 시간대까지 판매를 확장했다. 이는 AI가 사람을 대체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라임 타임은 전문 쇼호스트가, 심야와 새벽은 AI가 맡는 하이브리드 운영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 |
|---|
| 심야에 AI만으로 운영되는 중국 라이브커머스 |
경쟁력은 얼굴이 아니라 ‘AI 브레인’에 있다
많은 기업이 디지털 휴먼의 외형에 관심을 쏟지만, 실제 성과를 가르는 것은 화면 속 얼굴이 아니라 그 뒤의 ‘AI 브레인’이다. 중국에서는 바이두, 딥시크, 텐센트의 훈위안 등 LLM을 기반으로 제품 정보를 학습시키고 고객 질문에 대응하는 시스템이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여기에 텐센트 클라우드 같은 사업자는 CDN과 스트리밍 인프라를 제공해 장시간 방송의 품질을 뒷받침한다. 결국 경쟁력은 디지털 휴먼 그 자체가 아니라 AI 모델과 데이터, 스트리밍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 시스템에서 나온다.
중국 기업이 밟는 구축 절차는 다섯 단계로 요약된다. 첫째, 판매 목표를 명확히 한다. 심야 운영인지, 다국어 글로벌 판매인지, 신제품 출시 대응인지에 따라 시스템 구성이 달라진다. 둘째, LLM·렌더링·TTS·STT·스트리밍을 안정적으로 통합할 기술 인프라를 고른다. 셋째, 상품 지식베이스를 구축한다. AI는 학습된 범위 안에서만 정확히 답하므로 제품 카탈로그, 가격 정책, 프로모션, FAQ, 응대 매뉴얼을 정리해 검색증강생성(RAG) 기반 지식베이스에 연결해야 한다. 넷째, 파일럿을 돌려 전환율과 상담 정확도를 분석하고 스크립트를 개선한다. 다섯째, 사람과 AI가 협업하는 운영 체계를 설계한다.
주목할 것은 ROI가 어디서 나오는가다. 중국 기업들이 보는 핵심 가치는 인건비 절감이 아니라 판매 가능한 시간의 확대다. 여기에 확장성이 더해진다. 사람 진행자는 하나의 방송만 맡지만 AI는 동일한 콘텐츠를 여러 채널과 국가에 동시 송출할 수 있고, 다국어 음성합성과 자동 번역을 결합하면 국가별 맞춤 운영까지 가능해진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패션은 시즌마다 상품이 통째로 바뀌고 SKU 회전이 빠르다. 따라서 고객 상담은 소재감과 핏, 사이즈 편차, 세탁 방법, 코디 제안처럼 반복적이면서도 정확도가 요구되는 문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바꿔 말하면 지식베이스를 잘 만들어둔 브랜드일수록 AI 판매 시스템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패션 기업이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디지털 휴먼 제작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상품 데이터와 브랜드 정보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일이다.
첫째, 상품 데이터의 구조화다. 소재 혼용률과 실측 사이즈, 착용 컷의 조건, 반품 사유 데이터까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정리돼 있어야 한다. 둘째, 브랜드 언어의 규칙화다. 어떤 어휘를 쓰고 어떤 표현을 피할지,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은 약속하지 않을지가 문서화돼야 AI가 브랜드를 훼손하지 않는다. 셋째, 사람과 AI의 역할 분담이다. 브랜드 철학과 감성을 전달하는 영역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고, 반복 설명과 기본 상담, 심야 방송, 다국어 응대는 AI가 강점을 갖는다. 넷째, 데이터 중심의 운영 문화다. 방송 횟수가 아니라 체류 시간과 전환율, 질문 유형을 분석해 응답과 콘텐츠를 계속 다듬는 조직이 결국 앞선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붙는다. 중국은 올해 2월부터 라이브커머스 감독관리법을 시행하며 AI로 생성한 인물이 방송을 진행할 경우 이를 소비자에게 분명히 알리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AI 활용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면서도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판매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다.
중국 시장은 이미 라이브커머스의 경쟁력을 ‘누가 더 유명한 진행자를 확보했는가’에서 ‘누가 AI와 사람의 장점을 결합한 판매 시스템을 구축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AI 디지털 휴먼은 더 이상 기술 시연용 콘텐츠가 아니라 실제 매출과 운영 효율을 만드는 비즈니스 인프라다. 앞으로 중국에서,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패션 브랜드가 마주할 상대는 같은 업종의 경쟁사만이 아니다.
사람이 쉬는 시간에도 작동하고, 데이터를 학습하며, 고객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24시간 판매 시스템’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