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살려야 패션이 산다

2026-08-20 김원 대표 nyxnox1@naver.com

김 원의 Beyond Textile 22

생분해 소재부터 재생 농업·토양 탄소까지…옷의 모든 걸 바꾸는 지속가능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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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린 옷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 몇 번 입고 버린 폴리에스터 셔츠, 계절이 지나 더 이상 찾지 않는 패스트패션 제품에 옷장 정리를 하며 수거함에 넣은 옷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오랫동안 옷의 마지막 여정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와 보도는 옷의 마지막이 매립지, 하수처리장, 농경지의 흙, 그리고 다시 우리의 식탁과 연결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는 폴리에스터 의류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섬유가 세탁수를 따라 하수처리장으로 이동하고, 일부는 농경지에 뿌려질 수 있다는 연구를 소개했다. 의류에서 떨어져 나온 아주 작은 섬유 조각이 바다뿐 아니라 토양에도 남을 수 있다는 점은 패션산업의 환경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UNEP(유엔환경계획) 역시 패션과 텍스타일 폐기물이 세계적으로 심각한 폐기물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매년 막대한 양의 섬유 폐기물이 발생하고, 합성섬유 의류는 세탁과 착용 과정에서 미세섬유를 방출한다. 패션 제품은 생산할 때만 환경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입는 동안에도, 버려진 이후에도 생태계에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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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트라 파이버스는 폴리에스터 소재가 가진 강도와 성능은 유지하되, 옥수수와 밀에서 얻은 바이오 기반 원료를 활용하고, 사용 후 산업적 퇴비화 환경에서 자연 분해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마지막’ 단계까지 철처히


첫 번째 변화는 소재의 ‘마지막’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킨트라 파이버스(Kintra Fibers)는 기존 폴리에스터를 대체하기 위한 바이오 기반 생분해성 섬유를 개발하는 소재 과학 기업이다. 폴리에스터는 저렴하고 튼튼하며 구김이 적고 관리가 쉬워 스포츠웨어, 캐주얼, 안감, 패스트패션 등 다양한 영역에 사용되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편리함이 석유 기반 원료, 미세플라스틱, 낮은 생분해성, 폐기물 축적이라는 환경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킨트라 파이버스는 폴리에스터가 가진 기능적 장점을 유지하면서 원료와 생애 종료 방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옥수수와 밀에서 유래한 바이오 기반 원료를 활용하고, 사용 후 산업적 퇴비화 환경에서 분해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즉 소재의 시작을 석유 기반 원료에서 바이오 기반 원료로 바꾸고, 소재의 마지막 역시 장기간 남는 폐기물에서 분해 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지금까지 패션산업은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제품이 버려진 이후의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그러나 생분해성 소재는 폐기 이후를 소재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하게 한다. 물론 생분해성이 만능 해답은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 분해되는지, 염색과 가공 이후에도 그 특성이 유지되는지, 실제 산업적 퇴비화 인프라가 존재하는지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생분해 소재는 자연에 함부로 버려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품의 끝까지 고려하는 새로운 설계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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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셰드의 클라이밋 베네피셜의 목표는 토양의 생명력을 높이고 탄소를 땅속에 저장하며 농업 생태계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친환경 원료’에서 ‘회복시키는 원료’로


두 번째 변화는 소재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에서부터 자연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파이버셰드(Fibershed)의 재생농업 기반 섬유 프로그램 ‘클라이밋 베네피셜(Climate Beneficial™)’은 토양 건강을 회복하고 탄소를 저장하는 섬유 모델이다. 일반적으로 패션산업에서 원료 생산은 옷을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이해되어 왔다. 면화를 재배하고, 양모를 얻고, 섬유를 수확하는 과정은 공급망의 맨 앞에 있지만, 브랜드와 소비자의 시야에서는 자주 사라졌다.


그러나 재생 농업 기반 섬유는 이 관점을 바꾼다. 원료 생산은 단순한 채취나 재배가 아니라, 토양을 회복하고 탄소를 저장하며 생태계를 되살리는 과정이 된다. 같은 면화라도 어떤 농법으로 재배되었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많은 물과 화학 투입재에 의존하고 토양을 고갈시키는 방식이라면 천연섬유라는 이름만으로 지속가능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반대로 간작, 퇴비 활용, 토양 유기물 증가, 생물 다양성 회복을 고려한 농업 시스템 안에서 생산된다면 섬유 원료는 기후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소가 아니라 기후 회복에 참여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클라이밋 베네피셜은 환경 부담을 줄이는 것을 넘어 토양과 생태계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 물과 화학물질 사용을 줄이는 수준에서 나아가 토양의 생명력을 높이고 탄소를 땅속에 저장함으로써 농업 생태계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브랜드가 원료를 바라보는 기준도 변화시킨다. 옷의 지속가능성을 완제품의 라벨이나 인증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섬유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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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 애그의 ‘카본’은 재생 농업을 통해 토양에 탄소를 격리하고 검증된 탄소 크레딧으로 전환해 경제적 가치로 연결하고자 한다.



토양 회복을 기후 가치로 전환


세 번째 변화는 토양 회복을 측정 가능한 기후 가치로 전환하는 것이다.


인디고 애그(Indigo Ag)의 토양 탄소 프로그램 ‘카본(CARBON™)’은 재생 농업을 통해 토양에 탄소를 저장하고, 이를 검증된 탄소 크레딧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농업이 단순히 원료를 생산하는 활동에 머물지 않고, 토양 속에 탄소를 저장하고 이를 경제적 가치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패션산업에서 탄소 감축은 주로 공장, 물류, 에너지 사용, 제품 폐기 단계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섬유의 출발점인 농업 단계 역시 중요한 탄소 관리 영역이다. 면화, 울, 리넨, 헴프 등 자연섬유는 모두 토양과 연결되어 있으며, 농법에 따라 토양을 고갈시키기도 하고 회복시키기도 한다. 기존의 산업형 농업이 과도한 경작, 화학비료, 단일 작물 재배를 통해 토양 유기물을 감소시켰다면, 재생 농업은 반대로 토양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탄소를 땅속에 저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카본’ 프로그램은 이러한 재생 농업의 효과를 시장 시스템과 연결한다. 농가가 토양 관리 방식을 개선하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감축·제거 효과를 측정하고 검증해 탄소 크레딧으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농가는 작물을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토양 회복과 탄소 격리라는 기후 기여에 대해서도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브랜드가 원료를 구매할 때 고려해야 할 기준은 품질, 가격, 납기만이 아니다. 그 원료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토양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탄소가 얼마나 저장되었는지, 그 효과가 어떻게 검증되었는지가 새로운 가치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탄소 크레딧 시스템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토양 탄소는 지역의 기후, 토양 조건, 작물, 농법, 측정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레딧 구매가 기업의 실질 감축 노력을 대신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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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시작과 끝, 다시 흙으로


킨트라 파이버스는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재를, 파이버셰드의 ‘클라이밋 베네피셜’은 흙을 살리는 원료 생산을, 인디고 애그의 ‘카본’은 토양의 회복을 기후 가치로 전환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제 옷의 생애는 옷장이나 중고시장, 수거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국 매립지의 토양으로, 농경지로, 때로는 다른 나라의 습지와 해변으로 이어진다. 패션이 남긴 흔적이 제품이 버려지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토양과 생태계에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소비자도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패션 마케팅에 새로운 친환경 키워드가 하나 더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소재의 원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생산 과정에서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사용 후에는 어디로 가는지까지 제품의 전과정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생분해성 섬유, 재생 농업 기반 소재, 토양 탄소 포집 시스템은 제품의 환경 부담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소재의 시작과 끝을 다시 설계하는 움직임이다.


결국 패션의 지속가능성은 옷을 덜 해롭게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으로 만들고,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돌아가게 할 것인가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흙을 살리는 패션이 결국 다음 세대의 패션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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