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9 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SNS 바이럴부터 립스틱 효과까지...2026 소비 심리를 해부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대한민국을 강타한 트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두쫀쿠’.
오픈런과 품절 대란은 물론 두쫀쿠 맵까지 등장했다. 각종 이벤트에서 두쫀쿠 기프티콘을 내걸자 참여율이 수배 이상 치솟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이 열풍 속에는 2026년 소비 트렌드의 핵심 코드 ‘미코노미(Me-conomy)’와 ‘스몰 럭셔리’, 그리고 ‘SNS 바이럴 마케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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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의 이어온 김해의 명장 베이커리 ‘김덕규 과자점’의 두쫀쿠 |
작은 사치의 경제학, 립스틱 효과의 재발견
불경기 속에서 두쫀쿠는 가장 확실한 위로이자 고단한 하루의 보상으로 기능했다. 이른바 ‘립스틱 효과’. 명품 가방은 못 사도 트렌디한 디저트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소비 패턴은 패션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전문가들은 적은 비용으로 일상에서 큰 만족감을 찾으려는 작은 사치 심리가 두쫀쿠 열풍의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과거 대공황 시절 의류, 주얼리 등 고급 사치품 소비가 급감한 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립스틱 판매량이 늘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개당 5천~1만 원대의 두쫀쿠가 연일 품절된 것은 불경기와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시 경제가 불안할수록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소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패션연구소가 발표한 2026년 전망에 따르면, 미코노미와 필코노미(감정과 분위기를 중시하는 소비)의 확산으로 소비의 중심축은 ‘나’로 이동하고 있으며, 내게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명품 가방 대신 트렌디한 액세서리, 한정판 양말, 작은 럭셔리 아이템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패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만 원 이하의 가격대에서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아이템 개발, ‘나를 위한 선물’ 콘셉트의 마케팅, 일상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지만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제품 라인업이 효과적일 수 있다. 실제로 개성 있는 스몰 브랜드들이 주목받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자신만의 취향과 가치관·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브랜드를 선택하는 소비 경향도 함께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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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유튜버 ‘여수언니’가 운영하는 디저트 브랜드 ‘봄날엔’ |
패션 플랫폼이 디저트를?
흥미로운 것은 패션 플랫폼들이 직접 두쫀쿠 판매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에이블리는 지난 2월 패션 플랫폼 최초로 두쫀쿠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고, 방송 당일 참여사 거래액은 전주 일평균 대비 5.5배 급증했다. 29CM도 두쫀쿠를 판매하며 일부 상품은 2분 만에 완판됐다. W컨셉, 지그재그 등 주요 패션 플랫폼들도 잇따라 디저트 시장에 진출했다.
이는 매출 다각화를 넘어서는 전략적 선택이다. 디저트가 기존에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던 고객이나 비활성 고객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며, 옷과 디저트를 함께 사는 동반구매 빈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패션업계는 카테고리 경계를 해체하고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브랜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패션 플랫폼에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과 취향을 반영한 통합적인 큐레이션이다. 패션 브랜드가 자신의 세계관을 의류 너머로 확장할 때, 고객과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희소성 마케팅, 양날의 검
두쫀쿠 현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바로 ‘희소성’. 하지만 이는 의도된 마케팅만은 아니었다. 피스타치오 생산량 감소와 카다이프 수급 문제가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희소성이 오히려 더 큰 화제를 만들어냈다.
패션업계는 이 사례에서 희소성 마케팅의 양면을 배울 수 있다. 한정판과 드롭 문화는 강력한 마케팅 도구지만 공급망 관리에 실패하면 브랜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패션 브랜드들도 한정판 스니커즈, 협업 컬렉션 등에서 비슷한 패턴을 경험한다. 물량이 너무 적으면 구매 기회를 놓친 소비자의 실망이 커지고 너무 많으면 희소성이 떨어진다.
두쫀쿠 사례는 적정 물량 예측, 재구매 가능성 확보, 대체 옵션 제공 등 다층적인 공급 전략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품질을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수요를 충족시키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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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진주의 ‘페퍼그라인더’는 진주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
지역 디저트의 재발견
사실 두쫀쿠 이전에도 많은 디저트들이 사랑을 받아왔다. 그 중에서도 지역을 대표하는 디저트들은 두쫀쿠처럼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대신, 지역의 특산물과 이야기를 담아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제주 감귤을 활용한 디저트와 음료를 선보이는 ‘귤메달’이 인기다. 제주 감귤이라는 명확한 지역 정체성과 건강한 재료로 만든 디저트는 단순한 간식을 넘어 제주라는 브랜드를 함께 소비하게 만든다.
여수에서는 인기 유튜버 ‘여수언니’가 운영하는 디저트 브랜드 ‘봄날엔’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구름크림떡, 초코초꾸떡, 요거꿀떡 등 독창적인 메뉴와 온라인 판매 오픈 시 전량 완판되는 약과로 유명하다. 인플루언서의 영향력과 제품력이 결합된 사례로, 패션 브랜드들이 주목해야 할 개인 브랜딩의 좋은 본보기다.
전북 부안의 ‘슬지제빵소’는 소금찐빵으로 유명하다. 1999년 시작된 이 제빵소는 2대째 운영되며 100% 우리 밀과 국산 팥을 사용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곰소염전이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이곳은 국산 재료만을 사용하는 가치 소비와 지역 관광이 결합된 사례다.
강원도에서는 ‘정남미명과’의 구황작물빵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1986년 엄마의 방앗간에서 시작해 국내산 감자, 고구마, 옥수수, 밤, 단호박 등을 찹쌀과 섞어 만드는 이 빵은 밀가루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 일본을 비롯해 미국, 홍콩, 필리핀, 베트남까지 5개국에 수출하며 K-디저트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경남 진주의 ‘페퍼그라인더’는 버터 튀김 소금빵으로 진주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100% 캄보디아 프리미엄 후추를 사용한 시그니처 후추소금빵은 SBS 생활의 달인에 소개되며 더욱 유명세를 탔다. 대부분 오전에 품절되는 이곳은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희소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사례다.
충남 천안을 대표하는 ‘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87년 전통의 원조 호두과자 브랜드다. 1934년 조귀금, 심복순 부부가 천안의 특산물인 호두를 이용해 처음 만들어낸 이 과자는 4대째 가업으로 이어지며, 매일 새벽 가마솥 전통 방식으로 팥앙금을 직접 끓여 만든다. 방부제, 색소, 향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순도가 높아 쉽게 상하지 않는 이 호두과자는 전통과 품질을 지키며 세대를 이어온 장인정신의 결정체다.
이들 지역 디저트의 공통점은 명확한 지역 정체성과 고유한 스토리를 지닌다는 점이다. 패션업계에서도 로컬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역 특색을 살린 로컬 브랜드, 지역 장인과의 협업, 로컬 소재를 활용한 제품 개발이 각광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트렌드를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로컬 고유의 가치를 발견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차별화된 브랜드 정체성을 만드는 핵심 ?晥ダ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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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남미명과’의 구황작물빵은 K디저트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두쫀쿠 열풍이 남긴 것
두쫀쿠 열풍은 단순한 미식 열풍이 아니라 소비 심리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흥행 공식에 들어맞는 요소들이 결합된 결과다. SNS에서 바이럴되는데 최적화된 비주얼, 단순한 미식 이상의 의미인 ‘나를 위한 선물’, 다양한 화제로 전환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바로 메가 히트의 요소들이다.
패션 브랜드들도 옷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옷을 입는 순간의 경험, 브랜드가 담은 가치,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특히 패션 소비자들은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미학과 가치관에 기반한 스타일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큰 금액을 한 번에 쓰기보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아이템을 여러 번 구매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가는 소비 패턴이 확산되고 있다.
두쫀쿠 열풍은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소비하며,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패션업계가 이 현상을 단순한 디저트 유행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마케팅 인사이트의 보고로 삼는다면, 내수 침체와 경쟁 심화 속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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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천안을 대표하는 ‘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87년 전통의 원조 호두과자 브랜드로 장인정신의 결정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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