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9 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패션 앱을 켜는 이유, 20대는 재미·40대는 신뢰
SNS처럼 매일 들어와 구경하다가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져
현재 국내 패션 앱 사용자는 약 1,757만 명에 달한다. 이는 2025년 9월 기준, 주요 패션 앱 상위 10개의 월간 사용자 수로 전 국민 3명 중 1명꼴로 패션 전문 앱을 쓰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쇼핑하는 건 아니다. 에이블리에서 매달 열다섯 번 장을 보는 10대 여성이 있는가 하면, 크림에서 18만 원짜리 스니커즈를 1년에 아홉 번 구매한 20대 남성도 있다.
앱마다 사용자층이 다르고 쇼핑 방식이 다르며 추구하는 가치 또한 서로 다르다. 국내 패션 앱들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면서도 각자의 영역과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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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쓰나: 패션 앱 사용자 구조 해부
2025년 9월 와이즈앱·리테일 집계 기준, 국내 패션 앱 상위 10개의 설치자는 3,433만 명, 사용자는 1,757만 명이다. 설치는 했지만 실제로 쓰지 않는 비율이 절반에 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인당 평균 사용 앱 수는 1.8개. 20대가 평균 2개로 가장 많이 쓰고 3040대는 각 1.9개다.
성별로는 여성 이용자가 압도적이다. 특히 여성 20대와 40대가 패션 앱 사용의 양대 축이다. 남성에서는 20대 사용자가 182만 명으로 가장 많다. 패션 앱이 젊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이 있지만 실제로는 40대 여성이 20대 못지않게 패션 앱을 활발히 쓰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선호하는 앱도 확연히 갈린다. 20대는 에이블리·지그재그·크림을, 40대 이상은 나이키(44.1%)·퀸잇(40.5%)·유니클로(35.1%)를 주로 이용한다. 앱 이용방식에 있어 젊은 세대는 ‘재미’와 ‘발견'에 방점을 찍고 중장년 세대는 '신뢰'와 '브랜드'에 무게를 둔다.

어떻게 다른가: 앱마다 다른 소비 DNA
같은 패션 앱이라도 플랫폼마다 소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에이블리와 지그재그는 일상 소비형 앱이다. 에이블리 이용자의 1회 평균 구매액은 5만 5,200원, 연평균 구매 횟수는 15.2회다. 지그재그는 각각 6만 7,200원에 14.0회다. 1~2주에 한 번꼴로 장을 보는 셈이다. 구매하는 상품도 소형 쇼핑몰·개인 판매자의 데일리룩이 중심이다. 에이블리는 가격과 빠른 배송·적립금 혜택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크림은 특별 소비형 앱이다. 1회 평균 구매액 18만 8,300원에 연평균 구매 횟수는 8.8회. 두 달에 한 번 정도, 적지 않은 금액을 쓴다. 구매 상품의 84%가 신발이며 클래식 명품 브랜드부터 스포츠 리미티드 라인까지 고가의 한정판이 주를 이룬다. 이용자들이 크림에 가장 만족하는 요소는 꼼꼼한 상품 검수와 고품질이다. 제품에 대한 신뢰가 플랫폼 충성도의 핵심이다.
29CM와 퀸잇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취향 플랫폼을 구현한다. 29CM 이용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품이 많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37.5%). 컨템포러리 브랜드·국내 디자이너 상품 위주의 구성이 20~30대 감성 소비자를 붙잡는다. 퀸잇은 40~50대 여성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단독 사용률 56.7%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다른 앱을 거의 쓰지 않고 퀸잇만 이용하는 이용자가 절반을 넘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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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넘어: 뷰티·리빙·남성으로 카테고리 확장
패션 앱들은 최근 몇 년간 일제히 카테고리 확장에 나섰다. 뷰티·리빙·푸드 등을 추가하며 종합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지향한다. 하지만 소비자 데이터는 냉정하다. 현재 어떤 패션 앱에서도 패션 외 카테고리 구매 비중이 20%를 넘지 못한다.
예외가 있다면 에이블리다. 2024년 기준 에이블리에서 화장품·향수·뷰티 소품을 구매한 비중이 전년 23.0%에서 38.5%로 급증했다. 패션 앱 중 가장 빠른 뷰티 침투율 상승이다. 반면 크림과 무신사에서는 패션 외 카테고리 구매 비중이 여전히 10% 안팎에 머물러 있다.
이는 각 앱의 사용자 특성과 직결된다. 에이블리·지그재그의 주력인 10~30대 여성은 뷰티·패션을 함께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크림의 20대 남성 사용자는 스니커즈·스트리트웨어에 집중 소비하며, 앱을 벗어나 뷰티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다.
남성 패션 시장도 빠르게 재편 중이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 2024년 3월 출시한 남성 전용 앱 4910은 7개월 만에 MAU 115만 명을 기록했다. 에이블리가 같은 수치에 도달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린 것의 약 2.6배 빠른 속도다. 2025년 1월 온보딩 화면 개편 후 첫 구매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9배, 신규 회원은 6배 늘었다. 2025년 12월에는 뷰티 카테고리까지 론칭하며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알고리즘이 옷을 고른다: AI 추천이 바꾼 쇼핑 방식
패션 앱의 경쟁이 상품 수나 가격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용자가 직접 검색하기 전에 앱이 먼저 취향에 맞는 상품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 흐름을 가장 앞서 이끄는 앱은 에이블리다.
에이블리의 AI 추천 엔진은 하루 평균 4억 건의 고객 행동 데이터를 처리한다. 클릭·구매뿐 아니라 클릭하지 않은 상품, 장바구니에서 이탈한 상품, 긴 시간 머물렀지만 구매하지 않은 상품까지 모두 취향 신호로 분석한다. 2025년 한 해에만 1,500억 건이 누적됐다. 이 데이터는 패션에서 뷰티, 뷰티에서 푸드로 이어지는 카테고리 간 교차 추천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활용된다.
2025년 7월에는 생성형 AI 기반 ‘AI 스타일’ 서비스를 선보였다. ‘아이돌 무대의상’, ‘웨딩드레스’, ‘빈티지룩’ 등 원하는 콘셉트를 선택해 가상 시착하거나 반려동물 사진을 활용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2025년 11~12월 이용자 수는 출시 두 달 대비 약 30배(2,995%), 서비스 매출은 5배(418%) 이상 성장했다.
지그재그의 경우 AI 개인화 추천과 직진배송 서비스의 결합이 신규 구매자 전환에 효과적이었다. 2024년 신규 구매자 수가 전년 대비 40% 급증한 배경이다. 반면 크림은 알고리즘 추천보다 검수 신뢰가 핵심 경쟁력이다. 이용자가 앱에서 상품을 발견하기보다 원하는 상품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추천 알고리즘보다 검수 시스템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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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전문앱과 업계 지각변동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2024년 3월~2025년 2월 전국 16세 이상 3,500명을 조사한 결과, 패션 구매 선호 채널에서 온라인(51.6%)이 오프라인(48.4%)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온라인 내에서는 오픈마켓(33.1%), 패션 전문 쇼핑몰(26.6%), 종합쇼핑몰(15%) 순이었다. 패션 전문 버티컬 앱들이 성장한 배경과 일치한다.
패션 정보를 얻는 채널도 바뀌었다. SNS(26.8%)가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정보 매체 1위를 차지했고, 연령대가 낮을수록 SNS 의존도가 높다. 패션 앱들이 단순 쇼핑몰을 넘어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가 SNS에서 트렌드를 발견하고, 앱에서 구매로 전환하는 흐름이 정착된 것이다.
연령대별 패션 소비 구조도 바뀌고 있다. 통상 MZ세대가 패션 시장의 중심이라 여기지만, 실제 패션 소비 금액 기준으로는 50대(23.6%)와 40대(22.8%)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20대는 15.8%로 오히려 가장 낮다. 패션 앱은 젊은 층의 시장이라는 인식과 달리, 가장 큰 돈을 쓰는 주체는 40~50대다. 퀸잇이 이 시장을 선점한 이유가 여기 있다.
품목별로는 캐주얼복이 전체 패션 소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S/S 시즌에는 스포츠복이, F/W 시즌에는 아우터·겨울 액세서리 수요가 급증한다. 패션 앱들이 계절별 프로모션과 라이브커머스에 총력을 기울이는 배경이다.

온라인 앱의 오프라인 출점: 경험을 파는 공간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패션 앱들이 가장 공격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고 있다. 알고리즘으로 취향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입어보고 만져보고 경험하는 공간이 다시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29CM는 성수동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이구홈’은 2025년 1호점(6월)과 2호점(1월, 169평)을 연달아 열었고, 프래그런스 브랜드 ‘이구어퍼스트로피’도 9월 성수동에 단독 매장을 냈다.
퀸잇의 운영사 라포랩스는 T커머스 채널 SK스토아 인수를 추진 중이다. 40~50대 여성이라는 핵심 고객층이 겹치는 TV 쇼핑 채널을 확보해 온라인 앱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전략이다. 라포랩스의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48.7% 급증한 711억 원이며, 2025년은 1,000억 원 돌파가 전망된다.
에이블리도 오프라인을 새로운 전선으로 가져가고 있다. 2026년 2월에는 이커머스 최초로 e스포츠 팀 T1과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하고 공식 유니폼을 판매했다. 이렇듯 온라인에서 출발한 패션 앱들이 오프라인의 경험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확장하고 있다.

‘발견’ or ‘신뢰’…앱이 제안하는 쇼핑 경험의 차이
국내 패션 앱 시장의 경쟁은 더 이상 누가 더 많은 상품을 보유하느냐의 싸움이 아니다. 에이블리와 지그재그는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이용자를 붙잡는다. 크림은 ‘내가 원하는 걸 가장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승부한다. 29CM는 ‘내 취향이 존중받는 공간’을 설계한다. 퀸잇은 ‘나만의 쇼핑 세계’를 만들었다.
비슷해 보이는 패션 앱이지만 이용자가 다르고 소비 방식이 다르고 경쟁하는 가치가 모두 다르다. 소비자가 SNS에서 스타일을 발견하고 앱에서 구매하는 흐름이 정착된 지금, 패션 앱의 본질 경쟁력은 결국 ‘어떤 경험을 파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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