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의 재발견, 1+1이 3이 되는 순간

2025-12-20 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완판 신화부터 세계관 공유까지, 두 브랜드 DNA가 만드는 새로운 가치

글로벌 디자이너·기능성 브랜드·감성 장인까지 경계를 뛰어넘다




패션 업계에서 협업은 더 이상 낯선 전략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협업 트렌드는 과거의 단순한 브랜드 결합을 넘어서고 있다. 서로 다른 철학과 기술력을 가진 브랜드들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그 과정에서 패션 산업 전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협업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전략으로 진화하면서, 브랜드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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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가 글로벌 디자이너 ‘프란체스코 푸치와 협업한 두 번째 캡슐 컬렉션을 내놓았다.



글로벌 무대에서 증명하는 K-패션의 저력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대등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 있는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구호는 프란체스코 푸치와의 두 번째 협업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더 로우 헤드 디자이너 출신이자 파페치,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캘빈클라인 등 럭셔리 브랜드를 거쳐온 푸치는 구호의 브랜드 정체성을 깊이 이해하며 호흡을 맞춘 결과, 지난 1월 첫 협업에서 선보인 트렌치 코트, 블라우스, 원피스가 판매율 90%를 넘어서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소비자들이 협업의 진정성을 알아봤다는 의미로 남성적 테일러링과 여성적 곡선의 조화라는 첫 컬렉션의 콘셉트가 시장에서 공감을 얻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가을·겨울 컬렉션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과감한 볼륨감과 세련된 레이어링, 고급스러우면서도 캐주얼한 소재를 바탕으로 캐시미어, 울, 실크 등 소재 특유의 낭만적인 질감에 건축적인 선을 적용해 구조미와 감성을 동시에 담아냈다.


특히 풍성한 볼륨과 넓은 숄칼라가 특징인 ‘블랭킷 코트’는 외투를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됐다. 퀼팅 디자인의 블랭킷 코트를 간결한 슈트에 조합해 실루엣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스타일링 제안은 협업이 만들어낸 창의적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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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복 브랜드 커스텀멜로우와 헤드 메이너의 협업 역시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해 브랜드 론칭 15주년을 맞아 시작된 첫 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올해 가을·겨울 시즌 두 번째 협업으로 이어졌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LVMH 프라이즈 칼 라거펠트상을 수상한 헤드 메이너는 여유 있는 실루엣과 구조적인 디자인으로 현대 남성복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디자이너로 이번 컬렉션은 그의 시그니처인 오버사이즈 디자인을 커스텀멜로우의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코트, 점퍼, 재킷 등 아우터 8종, 팬츠 4종, 스웨트셔츠와 니트 등 상의 3종, 베스트 1종까지 총 14종으로 구성된 컬렉션은 이탈리아 원단사의 울, 리넨 혼방, 나일론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다. 무채색과 저채도 중심의 뮤트톤 색상은 겨울 시즌에 어울리는 차분한 착장을 완성한다. 풍성한 볼륨과 실루엣 조절이 가능한 벨트 등 상세한 디테일이 각 제품에 반영되며, 특유의 오버사이즈 디자인을 일상복 형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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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텀멜로우 X 헤드 메이너’ 25FW 협업 컬렉션



기능성과 예술성, 경계를 허물다


스포츠와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협업은 기능성이라는 실용적 가치와 디자인이라는 미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과거 기능성 제품은 디자인을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이제는 두 가치가 상호 보완적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데상트와 미니멀 컨템포러리 브랜드 유스의 협업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브랜드가 선보인 캠페인 ‘POISE’는 제품 출시를 넘어 하나의 철학을 제시한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태도’를 주제로 육지와 바다, 산이 공존하는 아이슬란드의 장엄한 자연 속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공개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순간들을 ‘시프트 트레일’ 스니커즈와 함께 그려낸 이 캠페인은 데상트의 퍼포먼스 기술력 안에 유스의 절제된 미니멀리즘을 더해 완성됐다.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림 없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균형을 유지하는 태도를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유스 랩 스토어에서 진행된 선발매는 오픈 직후 즉시 품절됐고, 데상트와 유스 공식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공개된 정식 발매분 역시 판매 시작과 동시에 전량 판매됐다. 두 브랜드의 정체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결과, 소비자들은 단순한 스니커즈가 아닌 하나의 철학을 구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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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캠페인 ‘POISE’를 통해 아이슬란드의 장엄한 자연 속 여정을 담은 ‘시프트 트레일’ 스니커즈 화보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는 세계적인 한국인 디자이너 김지용과의 협업을 통해 아웃도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번 협업은 네팔 산악 지역 셰르파들이 전통 복장과 기능성 의류를 함께 믹스매치한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됐다. 문화적 맥락과 기능적 필요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독특한 스타일링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김지용 특유의 독창적인 패턴워크와 미학이 반영된 디자인에 코오롱스포츠의 기능성 소재가 결합되면서 일상복처럼 가볍게 입으면서도 아웃도어 환경에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제품이 탄생했다. 다운재킷, 고어텍스 재킷, 플리스 재킷, 패딩 팬츠, 3D 팬츠, 후드 티셔츠 등 의류와 가방, 모자, 바라클라바 같은 액세서리까지 총 17종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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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스포츠가 디자이너 브랜드 ‘지용킴’과 협업한 컬렉션을 내놓고 오는 20일까지 신세계 강남점에서 팝업을 진행한다.



감성과 스토리텔링, 소비자와의 새로운 연결고리


협업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제품 자체를 넘어 소비자와의 정서적 연결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스토리텔링을 통해 브랜드의 철학과 감성을 전달하는 협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핸드백 브랜드 쿠론과 핸드메이드 니트 브랜드 미수아바흐브의 협업은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평범함 속에서 머무는 독특함을 표현하는 미수아바흐브는 니트, 패브릭, 모자,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을 전개하며 독창적인 니트 디자인과 감각적인 색채 조합으로 MZ세대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두 브랜드는 핸드크래프트의 감성과 섬세한 색채 감각이라는 공통된 미학에서 출발해 협업을 시작했다. 쿠론이 지향하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미수아바흐?遠?실험적인 니트 표현력이 결합해,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라는 정서적 여유를 디자인 언어로 풀어냈다.


‘쿠로니 앳 홈’이라는 테마로 설정된 이번 협업은 할머니, 소녀,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는 집을 콘셉트로 한다. 어느 날 소녀 쿠로니가 찾아오며 서로의 취향에 스며들고, 감성적으로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공간을 쿠론이 생각하는 집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스토리 속에는 소녀 쿠로니와 소울메이트 쿠쿠, 그리고 상상 속의 친구들인 고양이 미누, 강아지 뚜뚜, 곰 누누가 등장한다.


이 스토리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총 18개 스타일의 협업 컬렉션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소녀 쿠로니와 친구들을 형상화한 니트 키링 인형을 비롯해 가방, 액세서리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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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론이 핸드메이드 니트 브랜드 '미수아바흐브'와 협업해 니트 키링인형, 가방, 액세서리 등을 출시했다.



협업이 그리는 패션 산업의 미래


패션 업계의 협업 전략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초기의 단순한 브랜드 결합이나 일회성 화제성에서 벗어나, 각 브랜드의 철학과 기술력이 진정으로 융합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구호의 두 번째 푸치 협업, 커스텀멜로우의 헤드 메이너와의 지속적 파트너십은 협업이 장기적 전략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협업의 방향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 전략, 기능성과 디자인을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시도, 스토리텔링을 통해 소비자와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접근까지 각 브랜드는 자신만의 협업 철학을 구축하고 있다.


데상트와 유스의 완판 사례는 협업의 성공이 단순히 유명세에 기댄 것이 아니라, 두 브랜드의 정체성이 얼마나 조화롭게 융합되는지에 달려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협업은 국내 패션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패션 업계 전문가들은 앞으로 협업이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가치관과 철학을 공유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협업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속 가능성, 장인정신, 문화적 다양성 등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가치들이 협업을 통해 구현될 때, 진정한 의미의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다.


협업은 이제 패션 업계의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협업을 위해서는 브랜드 간의 진정성 있는 소통, 상호 존중, 그리고 공통의 가치를 향한 여정이 필요하다. 최근의 협업 사례들은 이러한 요소들이 갖춰질 때 협업이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패션 산업 전체의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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