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기록을 남긴다...도레이 ‘손수건’의 힘

2025-08-28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오서희의 K패션, 세계를 입히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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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이 손수건에 새긴 기록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글의 운명


2023년 나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글은 대부분 종이에 남지만, 종이는 구겨지고 쉽게 버려진다. 설명서나 안내문처럼 잠깐 스쳐 가는 글의 운명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내가 남기고 싶은 글이 오래 간직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떠올린 해답은 종이가 아니라 일상에서 늘 쓰이는 ‘도레이 손수건’이었다. 누구나 손에 쥐고 쓰는 이 작은 천 위에 글을 남기면, 그것은 종이가 아닌 삶 속의 기록이 될 수 있었다.


이 발상은 단순히 글의 수명을 연장하는 차원을 넘어, 텍스트와 패브릭의 새로운 관계를 탐구하는 실험이었다.


글자를 새기는 기술, 감성을 만드는 공간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준 곳이 서울 장안동의 IDF(아이디에프)였다. 나는 A4 용지 위에 편지를 썼고, IDF는 그 글자를 한 획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도레이 손수건에 프린트했다.


결과물은 놀라웠다. 마치 직접 천에 글씨를 새긴 듯 생생했고, 손수건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기념품이자 작은 작품으로 태어났다.


주변 반응도 뜨거웠다. “편지를 이렇게 남길 수도 있구나”라는 놀라움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 기록의 힘을 직접 느꼈다. 글이 실용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오브제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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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F는 그 글자를 한 획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도레이 손수건에 프린트했다.



과정이 만든 결과, 장인의 태도


IDF는 단순한 인쇄소가 아니다. 겉으로는 잉크와 원단을 매개로 이미지를 찍어내지만, 실제로는 생각을 형태로 바꾸고 감성을 물질화하는 공간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과정이었다.


빠른 결과만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IDF는 과정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원단의 결을 살피고, 잉크의 농도를 조절하며, 작은 오차조차 허투루 넘기지 않는 태도는 장인의 자세였다.


이들의 작업 방식은 대량생산의 속도와는 정반대의 가치를 보여주며, 결과물에 깊이를 더한다.


사라지는 기업과 남는 기업의 차이


지난 10여 년간 IDF를 지켜보며 깨달은 것은, 기업의 지속성은 기술이나 자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회사가 화려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IDF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존중하는 철학때문이다.


인쇄는 단순히 ‘이미지를 찍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고객과의 신뢰와 관계를 쌓는 행위였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온 결과물은 단순한 출력물이 아니라, 과정과 태도가 응축된 기록이었다.


패션이 옷 이상의 의미를 지니듯, 인쇄 역시 결과물이 아닌 스토리와 맥락 속에서 존재할 때 비로소 오래 살아남는다.


생활용품을 넘어 예술이 되는 순간


나는 지금도 그 도레이 손수건을 꺼내 본다. 그것은 단순히 글씨가 인쇄된 천이 아니다. 그 위에는 나의 생각과 한 기업의 철학이 함께 담겨 있다. 기술은 수단에 불과했지만, 태도가 그 수단을 가치로 바꾸었다.


오늘 다시 찾은 IDF에서 나는 확신한다. 이곳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과정을 존중하는 태도로 감성을 현실로 만드는 공간이다. 세상은 결과만 중시하지만, 오래 살아남는 것은 과정이 담긴 결과다.


결국 우리가 손에 쥔 작은 손수건은 생활용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버려지지 않는 기억이며 등불처럼 꺼지지 않고 별빛처럼 더 멀리 번져 나가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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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희(Sylvia Oh)는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브랜드 레오나드(LEONARD PARIS) 바잉팀장을 거쳐 2001년 몬테밀라노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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