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넘어 한·일을 잇는 시니어의 힘

2025-08-16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오서희의 K패션, 세계를 입히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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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일 교류는 시니어 모델을 매개로 더 넓어질 수 있다.



한일 관계를 떠올리면 정치나 외교가 먼저 생각나지만, 지금 가장 조용하고도 강하게 양국을 연결하는 흐름은 시니어 세대다. 두 나라는 모두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고 비슷한 인구 구조를 갖추고 있으나, 시니어들의 경제적 기반과 소비 방식은 닮은 듯 다르다.


일본 시니어들이 지금처럼 안정된 부와 여유를 가진 세대로 자리 잡은 것은 1980년대 산업화와 1990년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부동산 소유와 자녀 교육을 중심으로 자산을 형성했고,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맞물리며 탄탄한 소비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두 나라 시니어의 공통점은 자기만족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패션, 여행, 건강 관리, 취미 활동에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본 시니어는 ‘경험을 마땅으로 여기는’ 소비 성향이 강하다. 품질과 지속성뿐 아니라, 그 제품이나 서비스가 주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 번 선택한 브랜드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한다.


반면 한국 시니어는 ‘새로운 시도’를 즐기고,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며, 브랜드 충성도보다는 시즌마다 신상품을 경험하는 데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소비 성향의 차이는 유통과 마케팅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에서는 시니어 고객이 만족했던 경험을 재구매로 이어가도록 하는 장기적 관계가 중요하고, 한국에서는 빠른 기획과 다양한 변화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시니어 모델 문화 역시 양국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일본은 2000년대 초부터 잡지와 광고에 시니어 모델을 기용하며 품격 있는 노년 이미지를 사회 전반에 심었고, 이는 노년층이 자신을 표현하는 당당함을 키웠다. 한국은 2018년 강남구와 한 패션 브랜드가 함께한 강남페스티벌 시니어 모델 패션쇼를 계기로 대중적 관심이 폭발했다. 무대 위를 활기차게 걸어 나오는 시니어들의 모습이 세대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전국 대학 평생교육원과 문화센터마다 시니어 모델반이 생겨났다.


이 흐름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시니어들의 자존감과 사회적 존재감을 회복시키고,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산업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앞으로 한일 시니어 교류는 시니어 모델을 매개로 더 넓어질 수 있다. 일본의 절제된 연출과 한국의 역동적인 무대가 만나면 서로의 문화를 경험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에 여행과 문화 교류, 공동 기획 상품이 더해진다면 경제적 시너지도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존중하며, 시니어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일본의 깊이 있는 경험 중심 소비와 한국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열정이 만나면, 두 나라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를 넘어 감성과 신뢰를 주고받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정치와 외교가 때로 흔들리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힘은 굳건하다. 시니어 세대는 그 힘을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증거다. 그들의 걸음은 세월에 굴하지 않고 더 깊은 빛을 내며, 한 걸음 한 걸음이 두 나라의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된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눈빛에서 배워야 한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차이를 이해하며 마음을 열어 다가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일 관계를 진정으로 단단하게 만드는 길이다. 나이 듦을 제약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시니어들의 당당한 걸음이 두 나라를 더 가깝게 만들고, 다음 세대에게 평화와 우정의 길을 물려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함께 웃으며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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