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식물 기반 패션’ 시대가 온다

2025-09-15 김원 대표 nyxnox1@naver.com

김 원의 Beyond Textile 11

기후 위기 속 ‘식물 패션’의 등장이 주는 지혜


식물은 더 이상 창가에 놓는 인테리어 소품이 아닙니다. 요즘은 식물이 패션, 디자인, 심지어 삶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옷을 만들고 입는 방식에도 식물이 점점 깊숙이 들어오고 있죠. 단순히 예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식물에 주목해야 하는 데에는 꽤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Image
피에로 단젤로의 프로젝트는 옷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식물은 지구를 살리는 ‘진짜 일꾼’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매년 더워지는 여름, 사라지는 계절감, 반복되는 이상기후 속에서 ‘지속가능한 삶’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식물이 있습니다.


식물은 탄소를 흡수하고, 도시의 열기를 낮추며, 생물 다양성도 지켜줍니다. 예전엔 조경용 나무나 꽃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식물이 없는 도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었죠. 그리고 이 인식은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드는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그로인한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식물 기반 패션’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은 옷감 자체를 식물에서 뽑아내기도 하고, 염색을 식물성 물질로 바꾸는 시도도 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과 자연 친화적인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패션 브랜드들도 진지하게 이 흐름에 뛰어들고 있죠.


코로나 이후 식물이 주는 ‘정서적인 힘’


코로나19 팬데믹은 식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깥 활동이 어려운 시기, 작은 화분 하나가 삶의 중심이 되었고, 잎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안정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플랜테리어(Plant+Interior)’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식물과 함께하는 삶이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감각을 사용하게 만듭니다. 손으로 만지고, 물을 주고, 잎의 상태를 살피는 일은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일종의 ‘돌봄’에 가깝습니다. 이런 감각적인 경험은 자기 치유, 자기 돌봄(self-care)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죠.


이런 감각은 자연스럽게 패션과 연결됩니다.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을 돌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기르는’ 경험이 패션에 반영되기 시작한 겁니다.


정말로 ‘키우는 옷’이 있다면?


이탈리아 디자이너 ‘피에로 단젤로’는 실제로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의 프로젝트 ‘Grow Your Own Couture’는 말 그대로 ‘옷을 직접 키운다’는 개념입니다. 사용자가 옷에 붙은 지의류(lichen)를 직접 키우면서 완성하는 방식이죠.


이 옷은 단지 독특한 개념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의류는 공기 중 오염 물질을 흡수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 옷은 자연스럽게 공기를 정화하는 역할도 합니다. 다시 말해
옷은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살아 있는 패션’이 되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는 옷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키운다’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줍니다. 옷을 돌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것이죠.


Image
식물은 가브부아의 작업에서 생명을 품은 주체로 등장한다.

식물과 소비재의 낯선 조합, 예술이 되다


몬트리올의 비주얼 아티스트 ‘가브 부아’는 식물과 일상 소비재를 결합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스마트폰 위에 진짜 잎사귀를 덧대거나, 운동화 끈에 식물을 얹어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처음엔 장난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왜 식물을 장식용으로만 대할까? 자연은 소비의 대상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그녀의 작업은 식물을 배경이나 소품이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자연과 인간, 생명과 소비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이 시도는 패션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또 다른 힌트를 줍니다.


Image
스팁러닝 그룹은 '수제 손염색'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한 벌 한 벌, 모두가 다른 ‘식물 같은 옷’


미국의 스팁러닝 그룹은 염색을 기계 대신 손으로 직접 하는 ‘수제 손염색(hand-bleached)’ 방식을 사용합니다. 표백액을 직접 뿌리거나 문질러서 무늬를 내는 이 방식은 기계적 반복이 불가능합니다. 덕분에 모든 옷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패턴을 가지게 됩니다.


이 무늬들은 마치 나뭇잎의 잎맥이나, 나무껍질의 결, 혹은 이끼가 자라난 듯한 질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디자인적으로도 유니크 하지만, 그 감각은 매우 자연스럽고 유기적입니다. 기계가 찍어낸 대량 생산품과는 전혀 다른 감성, 그리고 ‘입는 생명’이라는 감각이 이 옷들에 녹아 있습니다.


Image
GB텍스타일은 식물에서 추출한 수용성 천연염료를 사용하고, 설탕 기반의 친환경 환원제를 도입해 염색 공정의 물 사용량과 화학물질 배출량을 50% 이상 줄였다.



염색도 식물로, 환경 부담은 줄이고


패션 산업에서 염색 공정은 큰 환경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많은 물을 쓰고 다양한 화학 약품이 사용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GB텍스타일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식물에서 추출한 수용성 천연염료를 사용하고, 설탕 기반의 친환경 환원제를 도입해 염색 공정의 물 사용량과 화학물질 배출량을 50% 이상 줄였습니다.


이 회사는 자카드 원단처럼 섬세한 직물을 사용하는 브랜드입니다. 그만큼 섬유 본연의 질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기술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습니다. 단순히 ‘친환경 콘셉트’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의 공정을 바꾸려는 진지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식물이 패션에 알려주는 것


우리가 식물에 다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단지 환경을 생각해서만은 아닙니다. 식물은 말없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식물은 우리에게 느림의 미덕, 존재의 리듬, 공존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제 패션은 멋을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철학을 담는 그릇이 되고 있습니다. ‘식물 기반 패션’은 환경에 대한 실천일 뿐 아니라 감정과 감각을 회복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화분을 키우듯 옷도 함께 자라난다면 우리는 더 오래, 더 정성스럽게 입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커버
검색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