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삶의 비용 ‘꼴값’

2025-06-05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오서희의 K패션, 세계를 입히다 13

겉모습에 목매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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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는 ‘꼴값’에서 벗어나 나답게 사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 옷 입고 나가면 창피하지 않아?” “아니, 난 불편하지 않아.” “그래도 남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해야지.”


이런 대화, 누구나 한 번쯤 나눠봤을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 말들 속엔, 우리가 지금 얼마나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고 있는지, 그만큼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 일상 속 말투와 판단이 ‘보이기 위해 사는 삶’의 단면이자, 우리 사회가 은밀하게 요구하는 무형의 비용이다. 나는 이 비용을 ‘꼴값’이라 부른다.


꼴값은 단순히 웃자고 만든 말이 아니다. 타인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무언가 되어 보이기 위해 우리가 지불하는 심리적·사회적·경제적 에너지의 총합이다. 값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얼마인지 모른 채 내고 있다. 문제는, 그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패션은 마음의 거울


나는 25년 동안 패션 브랜드를 운영해왔다. 처음엔 ‘옷’이 주인공인 줄 알았다. 예쁜 옷, 잘 팔리는 옷, 좋은 소재와 디자인을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옷이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시장은 누군가의 정체성, 열망, 자존감, 심지어 상처까지 담겨 있는 ‘심리의 전시장’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옷을 기능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추워서 패딩을 사고, 필요해서 바지를 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옷이 곧 메시지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 이 정도는 돼”, “괜찮아 보이지?”, 이런 말들을 옷이 대신 해주기를 바란다. 옷은 신분증이고, 무기이자 방패고, 때로는 위장이다.


하지만 그만큼 무거워졌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날개가 우리를 날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짓누르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남들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비교하고, 초조해지고, 불안해진다. 멋져 보이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하는 억압은 결국 자기 부정으로 이어진다.


도시와 농촌,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


매장을 운영하면서 재미있었던 경험이 있다. 도시 고객과 농촌 고객은 옷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도시 고객은 이렇게 말한다. “이 옷, 제 이미지랑 어울릴까요?”


농촌 고객은 이렇게 말한다. “이 옷, 김장할 때도 괜찮겠네.”


이 두 질문의 차이는 단순히 지역적인 특성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철학, 존재 방식,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뜻이다. 도시는 타인을 전제로 한 삶을 산다. 내가 아니라, 나를 보는 누군가가 기준이다. 반면 농촌은 스스로를 위한 삶에 가깝다. 실용과 편안함, 실제 삶에서의 역할이 기준이다.


도시적인 삶은 세련되고 활발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비교와 피로를 수반한다. 농촌적인 삶은 단순하고 실용적이지만, 사회적 맥락에서 소외될 수 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도시적 시선에 경도돼 있다는 것이 문제다. 모두가 보여지는 삶을 살고 있다.


‘꼴’이 만든 위계


“그 옷 입고 오니까 되게 사람 대우 받았어.” “왜? 옷 하나 바꿨다고?”


이런 대화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외모=대우’라는 공식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다. 더 좋은 옷을 입으면 더 정중한 대우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쉽게 무시당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브랜드, 핏, 색상, 액세서리의 매치,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


문제는 그 대우가 나의 ‘본질’이 아니라 ‘꼴’에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걸까, 내가 입은 브랜드를 좋아하는 걸까?’라는 의심은 결국 관계의 진정성을 해친다. 우리는 점점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있고, 진짜 자신으로 살아가는 건 두려운 일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질문을 바꿀 수 있다


한 번은 한 중년 고객이 이렇게 물었다. “이 옷, 너무 튀지 않아요?”


나는 되물었다. “그보다, 입었을 때 마음이 편하신가요?”


그분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이제 좀 나를 입어야겠네요.”


이 짧은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판단의 기준이 외부에서 내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구매 결정이 아니라, 삶의 자세를 바꾸는 행위였다.


패션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들을 자주 듣는다. “이 옷 입으면 날씬해 보일까요?” “젊어 보여요?” “있는 집처럼 보일까요?”


그 모든 질문에는 공통적으로 ‘~처럼 보이다’라는 프레임이 숨어 있다. 타인의 눈을 전제로 한 자기 판단이다. 나는 그 질문들을 조금만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내가 편할까?” “내가 좋아할까?” “내 마음이 가는가?”


이제 ‘보이는 나’에서 ‘느끼는 나’로, ‘남이 원하는 나’에서 ‘내가 원하는 나’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옷은 결국 내가 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도 나다.


꼴값 없는 사회를 상상하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꼴값을 지불한다. 거울 앞에서, SNS를 열 때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비용은 단순히 개인의 피로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창의성과 생산성까지 잠식한다.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 자원은 결코 적지 않다. 자존감은 외모와 브랜드에 저당잡히고, 사람들은 진짜보다 잘 포장된 가짜를 선택한다.


꼴값 없는 사회는 외모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나답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내가 기준이 되는 사회, 그리하여 외적인 치장이 아닌 내적인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오늘 당신이 입은 옷은 당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시선을 위한 것인가? 오늘 당신이 한 선택은 당신을 살아낸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연기한 것인가? 그 물음에서 모든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더 이상 ‘보이는 삶’만을 위해 살아갈 필요가 없다. 진정한 자유는, ‘꼴값’에서 벗어나 나답게 사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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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희(Sylvia Oh)는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브랜드 레오나드(LEONARD PARIS) 바잉팀장을 거쳐 2001년 몬테밀라노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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