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FW 시즌 기억에 남은 두 개의 브랜드

2024-10-21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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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슬림 ‘Episode 6’ 2024년도 FW 컬렉션(ⓒ Images Courtesy of XLIM)



계절이 (드디어) 가을로 바뀌고, 수많은 브랜드가 서늘한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선보인다. 새 시즌을 알리는 여러 프리젠테이션 가운데서 특히 마음에 남은 브랜드가 있었다.


남성복으로 출발했으나 동시대 젊은 여성들에게도 큰 지지를 받는 ‘엑슬림(XLIM)’, 그리고 우아한 여성복을 표방함에도 남성복의 고전적인 면모가 은연 중에 떠오르는 ‘이주(YIJU)’의 새로운 컬렉션이다.


◇ 엑슬림 by 김도희


엑슬림을 만드는 김도희 디자이너는 수년 전, 음악가 딘(DEAN)을 인터뷰했을 때 알게 된 인연이다(그는 딘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오랜 기간 합을 맞추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어지던 2021년 어느 날인가 브랜드를 만들더니, 이제는 공고한 열성팬을 지닌 독립 패션 레이블의 수장이 되었다.


현대 기성복 패션의 유행과 스타일 분야에서-그것이 다수이든 소수이든-누군가가 지지하는 하나의 룩(look)을 만드는 것은 거의 대체로 언제나 ‘디자이너’의 몫이었다. 그러나 동시대 패션의 관점에서, 몇몇 스타일리스트가 디자이너의 영역과 거의 동일한 범주로 ‘룩’을 만든다고 느낀다.


꽤 다양한 사례가 있겠지만, 직접 실감한 두 가지는 <뽀빠이 (POPEYE)> 매거진의 초대 패션 디렉터였던(그 유명한 ‘시티 보이(City Boy)’ 룩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의 스타일리스트 아키오 하세가와(Aki o Hasegawa)였고, 다른 한 명은 딘과 키드밀리(Kid Milli)와 함께 작업한 김도희였다.


엔터테인먼트가 직결하고, 또 그 영향력이 금세 세계로 번지는 요즘은 더 많은 스타일리스트가 이미 존재하는 아이템과 새로 만든 무언가를 섞어서 사람들이 추종하는 스타일을 만들고, 일종의 상징적인 반열에 오르는 걸 목격한다. 비슷한 시기에 고급 기성복을 짓는 패션 하우스들이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스타일의 시작과 끝을 강요하게 되면서부터 ‘잡지’ 영역의 스타일링을 보는 것은 아쉽게도 흥미가 식어버렸다.


이러한 제약에서 좀 더 자유롭고 신선한 관점을 지닌 창작자들이 새로운 룩(look)을 만들 때,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주는 가장 흥미로운 순간을 보게 된다.


구조적으로 복잡해 보이지만, 엑슬림은 실루엣과 소재를 유기적으로 버무려서 입는 사람의 특징이 드러나는 컬렉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전통적인 시즌 구분 방식을 쓰지 않는 브랜드는 꽤 많아졌으나, '에피소드(episode)’라는 단어를 붙인 데서 김도희 디렉터의 개성이 반영된다)는 여성복이 함께하는데, 남성복으로 만든 옷들 또한 3주간 주말에 이어지는 팝업 행사에 방문한 많은 여성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혹은 브랜드로서, 하나의 잘 만든, 또 잘 팔리는 아이템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이와 동등하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브랜드이든, 이를테면 세계관 같은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입고 싶은, 혹은 지지하는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감각을 주고, 또 그 반복의 루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때로는 꽤 많은 이가 하나의 브랜드를 특정한 (패션) 키워드 안에 가두려는 것 같다. 그래서 섬세한 고민과 제작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낸 엑슬림의 정교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이것은 점차 발전하고, 진화하는 무형의 자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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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슬림



◇ 이주 by 장이주


세심하게 고른 소재를 사용하여, 우아한 감각의 여성복을 짓는 이주(YIJU)의 2024년도 가을/겨울 시즌 프레젠테이션에 다녀오는 길은 아직은 조금 더운 저녁이었다. 그러나 처음 이주의 쇼룸에 들어설 때, 왠지 도쿄 다이칸야마 골목에 있을 법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기분 좋아지는 평일 같은 첫인상이었다고나 할까.


디자이너 장이주는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며 작성한 노트에 ‘삶의 여정을 함께하는 의복을 만드는 것이 이주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따라 계절이 바뀌면 사라지는 옷이 아니라, 오래 곁에 두고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우아하고 섬세한 옷을 만들겠다는 포부처럼 느껴졌다.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매일 입을 수 있는 브랜드를 응원하는 건 무척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이주의 컬렉션에는 한눈에 보아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옷이 무척 많았다. 둥글게 재단한 주머니를 단 버진 울(Virgin Wool) 소재의 사파리 재킷, 셔츠의 촉감을 유지하면서 촘촘하게 주름을 잡은 개더링 셔츠, 타이와 셋업을 이루는 주름치마와 셔츠 재킷(Shaket)은 선선해진 요즘 날씨에 바로 입기 좋은 조합이다. 이러한 컬렉션은 모두 텍스고라운드(TEXGOROUND®)의 고급 재사용 원단으로 만들어졌다.


이주는 소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이면서도,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를 탐험하는 취향을 지닌 옷을 만든다. 실루엣과 소재만으로 무척 우아한 느낌을 주고, 어느 시대에 가져다 놓아도 고전으로 느껴지는 남성복의 영향이 곳곳에 담겨 있다. 실제로 디자이너는 컬렉션을 만들면서 오래된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의 컬렉션을 종종 찾아본다고 했다.


섬세하고 우아하며, 화려한 면모가 있으나 굳이 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태도로서 존재하는 고고한 정신 같은 것이 이 젊은 여성복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녹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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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2024년도 FW 컬렉션(ⓒ Images Courtesy of YIJU)



◇ 잘 만든 옷, 오래 입을 수 있는 브랜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패션 브랜드가 생기고 사라진다. SPA 브랜드 수준으로 많은 물량을 전개하거나 앞다투어 연예인과 유명인을 기용하여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브랜드도 많다. 모든 기업의 목적이자 조건이 생존과 성장에 있으니 벌어지는 일을 탓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 수많은 브랜드의 수많은 옷을 볼 때, 어쩐지 저렇게 만들지 않아도 될 텐데, 하고 반짝 흥미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요즘은 무척 자주 있다.


옷은 누군가에게 그저 사업의 수단이겠지만, 그사이에는 작은 하나의 이미지와 소재부터 매장의 느낌 하나까지 신경을 쓰는 브랜드도 있다. 나는 그러한 브랜드에 무척 애정을 느낀다. 설령 그것을 내가 입지 않더라도 말이다.


잘 만든 옷을 선보이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브랜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요즘 흔히 말하는 지속 가능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조건이다. 위에 소개한 두 브랜드는 그러한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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