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5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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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든 초(JADEN CHO) 플래그십 매장(ⓒ Images Courtesy of Hong Sukwoo) |
패션에 관한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지만, 나는 ‘지속 가능한 원부자재의 순환’이라는 모토로 설립한 지속 가능한 원부자재 스타트업, 텍스고라운드(TEXGORO UND®)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패션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 수많은 단기·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많은 자원이 낭비되거나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걸 보았다. 어느샌가 이건 큰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거대하게 돌아가는 업계를 바꾼다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한참 벗어났기에 약간의 좌절감 또한 느꼈다. 실제로 이 분야는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는 ‘멋진’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걸 최고로 친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수면 아래 백조의 발처럼 가려진다.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걸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 의식주의 하나를 차지하는 옷은 인간의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지만, 실제로 우리는 너무 많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걸 사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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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낭만적인 컬렉션
텍스고라운드는 좋은 품질의 지속 가능한, 친환경(eco-friendly) 원단을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제안한다.
공급 업체가 좋은 품질의 지속 가능한 원단을 소개하면, 그 원단으로 옷을 짓고 세상에 선보이는 수많은 브랜드가 생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크고 작은 패션 브랜드는 다양한 이유로 상대적으로 친환경 원단으로 한 시즌에 출시하는 모든 제품을 구성하기 어렵다. 가장 먼저 가격 문제가 있고, 상대적인 다양성의 제한도 종종 한계로 거론된다. 그럼에도 텍스고라운드가 소개하는 원단의 종류가 늘면서, 그 취지에 공감하는 브랜드가 더 나은 원단으로 옷을 짓고, 컬렉션에 친환경 원단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지배하는 패스트 패션처럼 너무 많이 생산하지 않으면서, 한 벌의 옷에 세심한 신경을 기울이고, 아름다운 컬렉션으로 사람들의 옷장을 채우는 브랜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기쁘다.
패션 브랜드가 강하게 지속 가능성을 드러내는 성향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친환경 원단’이라는 옵션 혹은 플랫폼을 만들어 단단히 이어가면, 실제로 친환경 공정이나 소재를 사용한 원단을 쓴 옷이 시장에 늘어난다. 좋은 옷을 만드는 브랜드들은 그저 그들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그것이 경제적 관점이든, 사회나 환경의 관점이든)에 집중하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조금씩 ‘변화’는 시작된다.
‘그러한’ 브랜드 중에는 제이든 초(JADEN CHO)가 있다. 디자이너 조성민이 설립한 이 훌륭한 여성복 브랜드는 지금 보면 낭만적인 20세기 중후반의 맞춤복 문화가 떠오르는(손으로 하나씩 마감한) 섬세한 디테일의 옷으로 짧은 기간 동안 굳건한 지지층을 만들었다. 그들은 북촌에 쇼룸을 지었는데, 장마가 오기 전 2024년 여름의 어느 날 이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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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만든 한 벌이 주는 기쁨
어떤 면에서 서울은 2024년과 2021년, 2017년과 2009년, 때로는 1998년이나 1989년이 함께 녹아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여러 갈래로 뒤섞인 동네와 골목의 건축과 눈에 보이는 풍경 탓도 있겠지만, 패션과 옷 역시 그 이유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과거만큼 커다란 하나의 유행이 도시를 휩쓸지 않고, 다양한 창작의 관점을 지닌 훌륭한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패션 저널리스트의 관점은 물론, 지속 가능한 친환경 원단을 소개하는 텍스고라운드의 관점으로도 항상 이런 패션 브랜드를 지지한다. 매장에 방문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제이든 초 플래그십 매장과 옷들이 지난주 내내 생각이 났다. 오래전 시작했든 아니든, 주류에 관한 반 문화적 관심에서 출발했든 아니든, 신선한 감흥을 주는 한국 패션 브랜드가 있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옷의 작은 세부 사항 하나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독자적인 방식처럼, 두 개의 브랜드, 제이든 초와 엄버 포스트파스트(Um ber Postpast)가 하나의 공간에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은 매장은 옷뿐만 아니라 공간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요소가 꽤 있다.
벽에 바로 페인트를 칠하는 대신 원단 질감의 종이를 두른 다음 덧칠한 벽은 차분한 빛을 내고, 깃털을 휘감은 드레스는 과거 어느 시대, 고급 맞춤복의 전성기를 지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역작이다.
인생의 특별한 날 입어야 할 품이 많이 든 여성복, 또 일상에서 쉽게 입을 수 있으면서도, 우아하게 분위기를 바꾸는 실용적인 옷과 장신구가 이 매장 안에 공존한다. 이를테면 잘 만든 한 벌의 옷을 소유하고 즐겨 입는 기쁨이 있는 공간이다. 쉽게 사서 빠르게 질리는 옷을 산더미처럼 사는 것보다, 한 벌의 옷을 사서 오래 입는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컬렉션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패스트 패션의 세상에 느리고 잘 만든 옷을 마주하는 즐거움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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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에 간다면 꼭 들러보시길
제이든 초 매장에 들렀을 때, 한 주 내내 드문드문 이어지던 빗줄기와 회색 구름은 거짓처럼 사라졌다.
붕 뜬 한낮의 해는 매장 계산대 앞의 바닥과 사람 키를 훌쩍 넘어 솟은 이름 모를 식물의 잎과 줄기를 부드럽게 적시고 있었다. 섬세하게 재단하고, 치열하게 고민했을 아름다운 여성복이 그사이 공간과 조화를 이루었다.
장마가 그친 후에도 여전히 열대야가 함께하는 여름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조금은 한적한 여름의 어느 날, 북촌의 거리를 걸을 일이 있다면 꼭 이 매장에 들러 보길 권한다. 서로 다른 콘셉트의 브랜드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공간에 담긴 균형과 대비를 멋진 옷으로 마주하고, 음미하는 기쁨이 가득한 공간이니까. 훗날 기회가 된다면, 이 브랜드에 관해 더 긴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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