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렐 윌리엄스와 다미에, 그리고 루이비통

2024-06-15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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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렐 윌리엄스(ⓒ Images Courtesy of Louis Vuitton)



LV 모노그램이 들어간 루이비통(Louis Vuitton) 가방을 두 개 가지고 있다. 모두 버질 아블로 시절의 것이다.


하나는 니고(Nigo)와 협업한 두 번째 LV² 컬렉션의 메신저 백이다. 수십 년째 나온 전형적인 디자인에 커다랗게 확대한 다미에(Damier) 패턴을 바탕으로,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는 듯한 가죽과 클래식 LV 모노그램 패턴이 섞여 있다.


다른 하나는 역시 버질 아블로 시절 어느 프리폴(pre-fall) 시즌 가방인데, 빈티지 루이비통 가방에서 볼 수 있는 낡은 놋쇠 부자재 느낌을 의도적으로 울퉁불퉁하게 살리고,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에 이식했던 금속 사슬 모티브를 더한 다음, 캔버스 소재를 두른 연갈색 카우하이드 가죽을 일부러 S자 곡선처럼 만든 커다란 키폴(Keepall) 50 모델이다.


혼자 부산에 갔을 때 샀는데, 당시 룩북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고, 전국에 하나 남았다는 말에 긴 고민 없이 지갑을 열었다. 출장이나
여행 갈 때 ‘잘 써야지’라는 예상(혹은 다짐)과 달리, 곧바로 코로나19 시대가 도래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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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남성복 ‘다미에’ 컬렉션 제품군(ⓒ Images Courtesy of Louis Vuitton)



◇ 반복하는 네모의 다양한 변주


브랜드의 상징이기도 한 유명한 ‘LV’ 로고의 모든 변주는 아무래도 너무 화려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스타일에도 LV 모노그램은 확실한 포인트가 되지만, 그게 부담스럽다고나 할까. 그래서 주류에서 벗어난 느낌의 다미에 모노그램을 좋아했다. 짧은 여행을 갈 때마다 자주 드는 미묘하게 어두운 남색 빛의 키폴 45 모델도 버질 아블로 시절에 나온 꽤 평범한 것이었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루이비통 데뷔 컬렉션 이후, 몇 차례 열린 컬렉션을 오랜만에 모아서 보았다. 루이비통은 ‘여행’이라는 강력한 유전자를 브랜드의 정신으로 삼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풀어내는 변주와 조화가 그간-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와 킴 존스(Kim Jones) 그리고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퍼렐에 이르기까지 루이비통 남성복을 관통한 일종의 공통된 방법론이 아니었나 싶다.


가장 최근의 24년도 가을/겨울 컬렉션은 미국 서부 시대로 여행을 떠난 카우보이 컨셉이 주를 이루었는데,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 미국을 은유한 컬렉션이 생각나며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뼛속까지 유럽인에 반골 기질이 몸에 밴 전설적인 동시대 디자이너가 미국 시장에 취하는 손짓과, 거대한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대장급 브랜드에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 예술가이자 창작자가 재해석한 미국의 느낌으로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퍼렐 윌리엄스와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이 다른 점은, 퍼렐이 생각보다 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에 잘 안착했고(물론 훌륭한 팀이 뒷받침하고 있을 테니), 상대적으로 누구나 좋아할 만한 컬렉션을 만드는 느낌이 든다(마치 ‘해피 (Happy)’ 이후 그의 음악 세계처럼). 매 시즌의 주제를 뽑아내는 데 있어, 모티브가 되는 요소들 또한 버질 아블로 시절보다 시각적으로 명쾌하다. 한 마디로 더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컬렉션이다. 또한, 흑인 문화의 중심에 있는 또 다른 창작자로서, 세계적으로 상징적인 엔터테이너로서 지닌 화려함이 반영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버질과 퍼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첫 시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다미에 모노그램이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퍼렐 윌리엄스가 자신의 첫 루이비통 남성복 시즌부터 다미에 라인을 변주해 나가는 모습은 마음에 든다. 다미에 패턴을 디지털 카무플라주로 만든 ‘다무플라주(Damouf lage)’부터 최근의 ‘다미에 팝(Damier Pop)’ 그리고 24년도 프리폴 컬렉션의 반가운 네이비(실제로 남색을 주요 색상으로 쓰고, 해군에서 영감받았다) 컬렉션까지, 아마도 당분간 이 변주는 계속될 것 같다. 최근 ‘카우보이’ 컬렉션에 나온 변주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짙은 붉은색의 커다란 다미에 패턴과 찰랑거리는 가죽은 오래된 프랑스 브랜드를 새하얀 캔버스처럼 다룰 수 있는 용기 혹은 확신에 가까운 자신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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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갖고 싶고 입고 싶은 패션


현재 루이비통은 동시대 여느 ‘빅 하우스’ 패션 브랜드가 그렇듯이, 패션쇼를 통해 일종의 세계 일주형 패션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기세등등한 확장의 길을 걷는다.


매장에 걸린 옷들은 여전히 어느 정도 화려하고, 정교하여 매출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듯 보이지만, 돈이 있어도 손이 가는 일은 별로 없을 듯한 디자인들로 이루어져 있다(입고 싶은 옷과 패션을 보는 관점에서 보기 좋은 옷에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미에’만큼은 어쩐지 하나쯤 가지고 싶어진다.


반복하는 네모난 패턴의 단순함을 깨트리는 다양한 변주는 (패션쇼 앞자리에 앉는 화려한 유명 인사들이 아닌) 패션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주요한 고객으로 삼은 브랜드에 있어, 허용 가능한 범위의 확장 전략이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퍼렐 윌리엄스의 다미에를 향한, 다미에를 위한, 다미에와 함께하는 여정은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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