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속 투박한 양말에 담긴 반전 매력

2024-06-02 박진아 칼럼니스트 jina@jinapark.net

박진아의 글로벌 트렌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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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촌스럽다고 여겨졌다가 다시 ‘쿨’해진 두텁고 흰 크루양말. 사진 출처: Jessie Inchauspe/Glucose Revolution=YouTube captured still



“구두에 양말 신은 것은 촌스러워 보이는구나.” “나도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이게 유행이래요.” “그래?”(침묵)


역시 ‘요즘 유행’이라는 한 마디는 그 어떤 보편 스타일 공식도 제압시키는 마력을 지녔는가 보다. 최근 나는 엄마와 이런 짧은 대화를 한 후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나 또한 얼마 전만 해도 주류 패션계는 요즘 Z세대 젊은이들이 구가하는 구두와 크루삭스의 결합은 피하면 좋을 어색하고 민망한 조합이라고 여겼다.


가령, 비르켄슈톡(Birkenstock) 샌들 신발에 흰색 면양말을 매칭해 신는 이른바 ‘독일서 온 관광객’ 룩(look)은 낯부끄럽기 짝이 없는 패션 실수(fashion faux pas)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그런 후 별안간 올 2월 <엘르>지에 보도된 한 기사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빨간색 타이츠와 양말 코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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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제이콥스가 제안한 흰 양말과 검정 스틸레토의 결합. 사진 출처: Marc Jacobs



◇ 구두 속에 양말, 쿨내 진동


벌써 5~6년이 넘도록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오버사이즈 스웨트 셔츠(추리닝 상의)와 후드티(hoodies)가 승승장구를 계속하는 사이, 이 틈을 타고 강력한 패션 액세서리로 등극한 아이템은 다름아닌 양말이다.


구두에 양말과 스타킹 매칭 트렌드가 스트릿 웨어 브랜드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조용히 재출현한 지는 5~6년이 됐다.


2018년 릭 오웬스(Rick Owens)와 비르켄슈톡의 캡슐 컬렉션 콜래보에서 모델들은 비르켄슈톡 아저씨 샌들 밑에 두껍고 성글게 짠 면 합성 소재의 긴 양말을 신어 보이는 것으로써 스테이트먼트 액세서리 아이템으로 자리잡을 레그웨어(legwear) 트렌드를 선도했다.


2023년 여름, <W>매거진은 헤일리 비버(Hailey Bieber)에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까지, 미국의 일류 셀럽들이 투박해 보이는 발목 양말에 구두를 매칭해 신은 코디 트렌드를 포착한 사진을 게재하며 흰 양말의 본격적인 유행을 알렸다.


이어서 2023년 연말, 드디어 브리티시 <보그>와 <인스타일>지도 괴짜 청소년들이나 애용할 법한 이 ‘촌스럽고’ 괴상한 어글리 미학의 인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양말 트렌드를 뒤따라 보도했다.


그보다 앞선 2023년 9월 영국에서 열린 런던 패션 위크 2024년 봄철 쇼에서, 한때 해서는 안 될 패션 금기, 구두 속에 양말 신기가 버젓이 시크(chic)하고 쿨(cool)한 스트릿 패션 스타일링이 돼 추종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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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하고 남성적 분위기 나는 룩에 화룡점정으로써 빨간색 스타킹 또는 양말을 연출하고 2024년 2월 열린 토리 버치 AW24 컬렉션 쇼에 참가한 알렉사 청(Alexa Chung)의 모습. 사진 출처: Pinterest



◇ 주연 같은 조연


구두 속에 양말을 신는 트렌드는 2024년에 접어든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더 대범해지는 추세다.


아버지 장롱에서 몰래 꺼내 빌려 신은 듯 흰색과 빨간색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상이나 독특한 패턴이 새겨진 넉넉하고 어색해 보이는 양말을 로퍼 구두와 매칭시켜 대담하면서도 의도한 듯한 생경함을 연출하는 것이 스타일링 요령이다.


급기야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 타임스>지는 요즘 셀럽들과 대도시의 패셔니스타들이 눈에 띄는 색상과 원단의 양말과 스타킹을 한껏 자랑하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양말과 스타킹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미니멀리즘 패션을 완성시켜주는 화룡점정적 요소라 본다.


2024년 양말 유행의 핵심 포인트는 양말을 구두 속에 받혀 신어 풋웨어와 레그웨어를 동시에 강조하는 것으로써 ‘눈길을 사로잡는 액세서리(statement piece)’로 주연 같은 조연으로 활용한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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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 디자이너·사업가 제니 리(Jenni Lee)가 창업한 고급 양말 및 스타킹 브랜드, 콤시(Comme Si). 사진 출처: Jenni Lee@definitleejenni=Instagram



◇ 어글리 미학의 힘


2024년의 구두와 양말 조합 유행 트렌드는 지난 근 10년 패션계를 주도해 온 스트릿 패션 룩, 편안함을 추구하는 캐주얼화, 괴짜스럽고 풍자적인 ‘어글리(ugly)’ 미학을 다시 한번 밀어붙인 산물이다.


패션업계는 종아리까지 끌어올려 신는 투박한 양말은 Z세대(1997~2012년 사이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알파 세대 사이 인구를 일컫는 인구학적 분류) 특유의 집단적 자아정체성의 산물이라 본다. 가령, 여러 틱톡 인플루언서들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발목 양말과 페이크 삭스을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가 명품 의류 브랜드의 소비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의도된 어글리 미학과 어색함의 병렬을 통해 패션 규칙을 위반하면서 느끼는 통쾌함과 해방감, 그것이야말로 편안한 신발 안에 받쳐 신은 두터운 양말에 담긴 기호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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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자유, 반항도 스타일시하게! 1900년대 초엽 테니스웨어, 1950년대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프레피룩(preppy look)과 그리서룩(greaser look), 1980년대 대안적 스트리트 스타일과 에어로빅 체조의 유행을 타고 패션 액세서리 역할을 했던 크루양말이 21세기 디지털 시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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