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얼마 전 문을 연 쇼핑몰 ‘하이해리엇’. 1층 한가운데를 비롯해 군데군데 요지의 매장이 수개월째 비어 있다.
상가 활성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이 점포들이 이처럼 공실로 남아 있는 것은 입점 상인을 구하지 못해서도, 상인의 준비가 덜 돼 입점이 지연됐기 때문도 아니다. 임대료를 한 푼이라도 더 받겠다는 점포주의 욕심 때문이다.
쇼핑몰 측에서는 상가 활성화를 위해 합리적인 임대료를 책정해 우수한 상인을 유치하려 했지만, 이들 점포주는 이와 무관하게 높은 임대료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
급기야 이들 점포주는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쇼핑몰 측에서 추천한 상인 대신 만족할 만한 임대료를 부담할 상인들을 직접 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주변보다 높은 임대료에 입점할 상인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 이 때문에 상가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매장들이 수개월째 공실로 남아 있는 것.
점포주와 입점 상인 간 인식 차가 동대문을 비롯한 집단상가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대두되고 있다.
동대문총상인연합회 주최로 지난 9일 열린 ‘동대문시장 발전전략 세미나’에서도 이 문제는 심도 있게 제기됐다. 이날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한 서울시 시장지원반 김진년 반장은 이 문제를 동대문 발전을 저해하는 최대 장애물로 지적하기도 했다. 동대문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요구하는 상인들의 요청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김 반장은 “판매 활성화에 관심이 있는 상인과 달리 점포주들은 부동산 가치와 임대료 상승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그간 동대문 집단상가에 대한 다양한 활성화 방안과 지원책을 내놓아도 이러한 입점 상인과 점포주 간 인식 차로 인해 계획 자체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처럼 입점 상인과 점포주 간 인식 차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양자간 이해득실 계산으로 어떠한 지원책도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입점 상인, 손님 늘어야 장사 잘 돼
점포주와 입점 상인 또는 점포주와 상가운영자 간의 인식 차에서 비롯된 이 같은 해악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인식 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양자 간 추구하는 가치가 틀린 것에서 비롯된다. 많이 팔아야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입점 상인 입장에서는 우선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야 한다. 이에 새로운 가치 제안과 쇼핑의 선택 폭을 넓히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상가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있고, 우수한 상인과 콘텐츠 유치에도 관심이 높다. 상가 활성화에 대한 투자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소 느끼고 있다.
점포주, 사람 는다고 임대료 오르나
반면 점포주 입장에선 사람이 많고 적음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장사가 잘 된다 해서 자신들의 임대수익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가 수행되는 상가 리뉴얼과 활성화에 대해 입점 상인이나 상가 운영관계자들에 비해 미온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차는 등기분양 방식의 집단상가에서는 더욱 심하다. 점포주 각자가 절대적인 재산권자라 하기 싫으면 그만인데다 통일된 의사결정체가 없어 시장 변화에 대응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
따라서 시장환경 변화에 따른 상가 혁신이 쉽지 않아, 이로 인한 소비자들의 외면과 의욕적인 상인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 이는 결국 상가 슬럼화를 초래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집단상가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집단상가 특히 등기분양 점포주는 상가가 확실히 망가지지 않고는 웬만해선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간혹 혁신에 대한 필요를 느껴 다수 점포주의 동의로 일을 추진해도 막판에 소수가 반대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스스로 권리 포기하도록 방치하기도
상가 리모델링에 관심 있는 일부 운영위는 이 때문에 상가가 더 망가지도록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섣부른 일 추진으로 점포주와 갈등만 초래해 상황을 어렵게 만들기보다는 점포주들이 위기감을 느껴 스스로 일정 권리를 포기하거나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동대문의 한 등기분양 상가는 오랜 상가 슬럼화로 지친 점포주들이 떠난 점포를 헐값에 인수해 자기 지분을 꾸준히 늘리고, 이를 발판으로 최근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