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유재부 패션 에디터 UB@fi.co.kr
중국 경제 위기 속 중국 시장에 의존해온 럭셔리 브랜드들의 우려 확장
| 2024 가을/겨울 구찌 여성복 컬렉션 |
중국 쇼핑객들의 경기 둔화에 대한 두려움은 지난 1년 동안 럭셔리 업계를 괴롭혀 왔다. 지난주에는 패션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가장 많이 노출된 브랜드 중 하나인 구찌가 이 문제에 직면했다. 중국 경제 위기 속 중국 시장에 의존해온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의 '차이나 쇼크(China shock)'가 럭셔리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찌·발렌시아가를 소유한 프랑스 럭셔리 그룹 케어링은 구찌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가까이 줄어들 전망이며, 이에 따라 케링의 1분기 전체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10%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후 시장 총액은 90억 달러(약 12조원)가 사라졌다. 경기 둔화는 럭셔리 산업의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위스 시계 산업협회는 지난달 중국과 홍콩으로의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5%, 19%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스위스 고가 시계는 중국 소비 심리에 영향을 받는 대표적 상품으로 꼽힌다. 오메가·티쏘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스와치그룹의 경우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3분의 1 가량을 중국이 차지했다. 한편 분석가들은 중국의 럭셔리 수요가 올해 더 냉각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제로-코로나 봉쇄 조치에서 벗어난 부유한 중국인들의 소비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냉정한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일부 럭셔리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보다 이 여파를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케어링을 시작으로 중국에서의 사업 방식을 재고해야 할 수도 있다.
2016년 이탈리아 여행 중 구찌 가방을 세 개나 샀을 정도로 구찌에 매료된 적이 있다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34세의 은행원 우 샤오팡은 "몇 년 동안 구찌 가방을 직접 사본 적이 없다. 새로 나온 디자인은 형편없다."라고 말했다.
우 샤오팡은 현금을 어디에 쓸지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는 중국 럭셔리 쇼핑 세대 중 한 명이다. 실업률 증가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소비자 신뢰도가 떨어지고,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세계 최대 소비 시장 중 하나인 중국의 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쇼핑객을 유인하기 위한 기준이 높아졌다. 구찌는 최근 몇 달 동안 공식 웹사이트와 티몰의 이커머스 플랫폼을 포함한 중국 온라인 매출이 대폭 감소했다고 기밀 사항이라며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가 말했다.
작년에 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사바토 데 사르노는 전임자인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화려한 디자인보다 더 미니멀한 패션 미학을 채택했다. 매장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그의 세련되고 차분한 패션이 중국 고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
하지만 일부 고객들은 이전보다 덜 독특하고 발렌티노, 프라다, 셀린느와 스타일이 너무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패션 컨설턴트 마크 리우(Mark Liu)는 말했다. 케어링은 사바토 데 사르노의 최신 앙코라 컬렉션의 초기 기성복 제품이 호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구찌는 오랫동안 주요 럭셔리 브랜드 중 가장 변동성이 큰 브랜드 중 하나로,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전임자 톰 포드 같은 디자이너에 대한 입소문에 따라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했다. 특히 구찌가 케어링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 수익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에 매우 취약한 편이다.
우 샤오팡은 "구찌가 한동안 스트리트 브랜드로 변신했다가 다시 하이엔드 브랜드로 전환하려 했던 것 같다.하지만 이제는 누구를 타깃으로 삼으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추락하는 주가는 날개가 없다?
케어링은 지난 3월 19일(현지시각)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이번 분기 구찌 매출이 20% 가까이 감소했다는 발표로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주가는 3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룹은 2년 전 중국과 홍콩의 구찌 패션 책임자를 새롭게 임명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후 구찌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결별하고 발렌티노 출신의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 사바토 데 사르노를 영입했다. 그 후 케어링은 약 8년간 구찌를 이끌었던 마르코 비자리 대신 피노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장 프랑수아 팔루스를 영입했다.
짐작컨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더 많은 변화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RBC 캐피털 마켓의 애널리스트 피랄 다다니아(Piral Dadhania)는 지난 주 금요일 "장 프랑수아 팔루스가 구찌의 임시 CEO로 적합하다는 케어링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재무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증된 실적을 가진 새로운 수장을 선임하는 것은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외부 아이디어를 새롭게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경기 둔화는 구찌를 제외한 다른 브랜드에도 큰 폭은 아니지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롤렉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과 같은 최고급 럭셔리 하우스는 중국 쇼핑객들에게 인기 있는 홍콩에서 2023년에 두 자릿수 성장을 보였지만, 지난해 10월 초부터 판매가 둔화되었으며 올 해 1월에는 프리미엄 시계의 중고 가격이 전년 대비 40% 하락했다고 이 문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말했다.
스위스 시계만큼 중국 소비 심리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럭셔리 제품도 드물다. 스위스 시계 산업 연맹은 지난 2월 중국으로의 수출이 전년 대비 25% 급감했으며, 홍콩으로의 수출은 19% 감소했다고 지난주 밝혔다.
이 두 지역으로의 수출을 합치면 스위스 시계의 최대 단일 시장인 미국을 능가한다.
오메가, 티쏘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스와치그룹의 CEO 닉 하이에크(Nick Hayek)는 "경기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2023년 회사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닉 하에에크는 중국과 홍콩의 쇼핑객들은 스와치 그룹 브랜드 매장을 방문하고는 있지만 대량 구매를 주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돈은 있지만 언제, 어떻게 소비할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을 수 없다
문제는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2주간의 아시아 여행 후, 에르완 램버그가 이끄는 HSBC 럭셔리 애널리스트들은 금요일 메모에서 "중국의 수요 상황이 힘든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방문하지만 지출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고 그들은 덧붙였다.
일부 브랜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코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 내 럭셔리 매출 성장률은 2023년 12%에 비해 한 자릿수 중반으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은 고액 자산가 또는 투자 가능한 자산이 1천만 위안약 19억 원) 이상인 사람들이 주도할 것이다.
일부 럭셔리 브랜드는 성장 둔화 추세에 반기를 들었다. 미우미우 브랜드를 소유한 프라다 그룹은 4분기에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소매 매출이 32% 증가했다. 이달 초 이탈리아 그룹의 CEO 안드레아 구에라(Andrea Guerra)는 1월과 2월의 추세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헤르메스 인터내셔널도 4분기에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베인엔코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브루노 라네스(Bruno Lannes)는 "불확실한 시기에는 중국 소비자들이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럭셔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제품을 보유한 브랜드가 시즌 상품을 출시하는 브랜드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라고 덧붙였다.
라 메르, 톰 포드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미국 화장품 대기업 에스티로더(Estee Lauder Cos.)는 장기적인 성장 전망과 현지 신생 기업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중국에 통 큰 베팅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중산층의 확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1인당 소비가 계속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변동성은 완화될 것이다. 에스티로더의 CEO 파브리지오 프레다(Fabrizio Freda)는 이번 달 뉴욕에서 새롭게 열린 UBS 컨퍼런스에서 "이러한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럭셔리 브랜드는 미래 성장을 위해 중국을 넘어 아시아 전략을 재고하고 있다고 럭셔리 컨설팅 등의 사업을 운영하는 RTG그룹아시아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 안젤리토 페레즈 탄 주니어(Angelito Perez Tan, Jr.)는 말했다. 그는 인도, 동남아시아, 중동이 장기적으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젤리토 페레즈 탄 주니어는 "경영진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더 많은 것이 있다는 측면에서 보다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반적으로 럭셔리 브랜드 중 일부는 중국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더 이상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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