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럭셔리는 정말 조용할까?

2023-11-15 박진아 칼럼니스트 jina@jinapark.net

박진아의 글로벌 트렌드 11

명품 소비 욕구로 전환시킨 창의성과 상혼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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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명품 의류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Bunello Cuccinelli). 브루넬로 일가가 입은 옷은 유럽풍 ‘조용한 럭셔리’의 전형의 일면을 보여준다. Image source: cucinello.com/courtesy of



패션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조용한 럭셔리’가 한창 이슈다.


어휘에서 미뤄볼 수 있듯,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란 ‘요란한 럭셔리’의 반대 개념이 라 짐작된다. 가령, 누가 봐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수입 고가 명품 브랜드의 시그니처 로고나 패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옷과 액세서리를 걸쳤거나 디자인이 내우 독특해서 주변인들의 시선을 끄는 차림을 한 사람은 요란한 럭셔리(loud luxury)를 연출했다 할 수 있겠다.


반면 이른바 조용한 럭셔리 소비자는 흑백과 무채색톤 색상, 클래식하고 미니멀하다 못해 베이직해 보이는 패션 아이템 위주로 단순하게 갖춰 입는 경향이 많다. 애써 브랜드 로고를 가린 듯 제품만 봐서는 브랜드나 메이커를 바로 판별하기 어려운 것도 특징이다.


한데 왠지 모르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단과 질감, 우아한 옷 맵시, 좀 더 자세히 보면 바느질 한 땀, 단춧구멍, 독특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형언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움을 넘어 그야말로 조용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적어도 조용한 럭셔리를 내세우는 고급 명품 패션하우스들이 내세우는 브랜드 기약이다.


도대체 이 조용한 럭셔리라는 개념은 언제 어디서 비롯돼 올 2023년 한 해 어패럴 업계의 해시태그로 또는 밈(meme)으로 떠오르게 된 것일까?


때는 올 2023년 3월 할리우드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Gwyneth Paltrow)가 2016년 스키장 충돌 사고 재판에서 승소했다. 좋든 나쁘든 매스컴의 관심은 훌륭한 광고 기회(Any publicity is good publicity)다. 매일 법정에 출두할 때마다 입은 의상과 액세서리부터 손에 든 문구용품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연출한 조용한 럭셔리 스타일은 재판장에서 무언의 위력을 발휘하며 승소로 이끄는데 기여하지 않았다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재판 기간 동안 언론이 눈 여겨 관찰하며 열띠게 보도한 뉴스는 재판 절차에서 오간 공방 내용이 아니라 기네스 팰트로가 입은 제품의 브랜드와 옷차림 연출에 담긴 피고인 의도를 분석 기사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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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팰트로의 법정 출두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적 브랜드들로 (좌로부터) 셀 린느, 프로엔자 슐러. 사진 출처: AP



◇ 글로벌 명품업계의 영특한 럭셔리 마케팅


멋진 옷차림을 갖춘 채 매일 성실하게 재판에 응한 피고인 기네스 펠트로의 법정 연기는 글로벌 명품업계가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해 조용한 럭셔리 마케팅을 펼칠 수 있었던 전략적 무대이자 조용한 럭셔리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준 패션쇼였던 것이다.


조용한 럭셔리를 유행시킨 틱톡과 유튜브 쇼츠 영상들에 따르면, 조용한 럭셔리 혹은 #올드머니 룩(#old money look)은 유럽에서 가문 대대로 부를 이어받은 귀족 또는 중상층 인사들이 그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점잖지만 고가의 특권층 스타일이라고 설명한다.


반대로 뉴머니 룩은 졸부 즉, 갑자기 돈을 많이 번 신흥부자의 스타일이라 하겠다. 뉴머니가 즐겨 입는 최신 유행 스타일, 복잡 요란한 디자인, 크고 노골적인 명품 로고는 이 정도의 돈을 너끈히 쓸 수 있는 부자 또는 성공한 사람임을 타인에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반영된 소통 언어이자 자기확인의 징표라는 것이다.



◇ 명품의 조용함과 요란함, 결국 ‘기능’의 차이


올해 조용한 럭셔리와 올드머니 룩 유행을 보며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 사이에서 생각하는 럭 셔리 개념의 차이의 본질은 무엇일까?


미국에서 동부는 올드머니를, 서부는 뉴머니를 상징한다. 흔히 전자는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의 19세기 영국 고딕풍 건축과 영화 ‘리플리’ 속 부잣집 자제들이 입는 보수적인 ‘프레피 룩(preppy look)’을, 후자는 킴 카다시안 가족이나 패리스 힐턴이 구가하는 현란하고 화려한 ‘캘리포니아-부자 룩(California-rich look)’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역사가 400여 년에 불과한 미국 사회에서 유럽의 귀족주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부와 서부의 다른 두 룩은 겉으로 달라 보이지만 모두 경제적으로 성취한 부자(富者)의 복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동등하다.


오늘날 유럽에서 가문의 뿌리를 1천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뼈대 있는 가문들은 많지 않은 데다가 명가 자손들 대다수의 재력은 오늘날 실리콘밸리 사업가나 굴지 재산가의 그것에 비기지 못한다. 또, 유럽인들의 옷 입기는 대체로 수수하고 보수적이다. 복장이란 부의 지표라기 보다 직무나 상황에 적합하게 갖추는 사회 규정이라는 의식 때문이다.



◇ 조용한 럭셔리, 차분과 단순을 가장한 부유와 호사


패션산업은 인간 내면에 숨은 사회적 열망과 허영심을 활용하는 비즈니스다. 현대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패션의 언어는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 숨겨진 여러가지 신화(myth) 즉, 근거 없는 믿음 체계들 중 하나라고 했다.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미니멀리즘, 캐주얼화, 간소화 추세 속에서 새 차별화 전략과 가치 창출이 필요했던 글로벌 명품가들의 #조용한 럭셔리와 #올드머니 룩 마케팅 상술은 기발했다. ‘조용한 럭셔리’ 개념을 럭셔리 마케팅에 응용해 소비자 마음 속 깊이 잠재된 열망과 동경심을 소비 욕구로 전환시킨 창의성과 상혼 역시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올드머니 미학은 고상하고 뉴머니 미학은 천박하다’는 구분법은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차이에 불과할 수 있다. 패션계의 유행은 어제의 천박함이 내일의 고상함이 되어 돌고 돌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조용한 럭셔리는 소비자가 취향과 안목을 잘 발휘하면 명품 브랜드의 몇 분의 일의 저렴한 가격으로도 얼마든지 코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소비자가 어느 브랜드와 제품에 지갑을 열 것인지 선택할 최종 권력은 소비자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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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올드머니 가문 출신이 아니어도 패션 소비를 통해서 간접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샤넬 로고 없는 샤넬 시그니처 원피드 드레스로 올드머니 룩을 선보이는 틱톡 인플루언서 에 리카 드와이어. Image courtesy: Erica Dwyer=Tik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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