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매거진(POPEYE Magazine)이야기 (下)

2023-11-15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04

내 손 안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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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YE> 콘텐츠



2018년 봄, 잡지의 부흥을 이끈 두 명의 주역은 나란히 <POPEYE>를 떠났다. 키노시타 타카히로는 유니클로(UNIQLO)로 유명한 주식회사 패스트 리테일링(Fast Retailing)의 크리에이티브 커뮤니케이션 집행임원이 되었고, 하세가와 아키오는 더블탭스(WTAPS)부터 노티카 재팬(Nautica Japan) 같은 브랜드의 스타일링과 디자인을 담당하며 자신의 이름을 건 온라인 매거진 <AKIO HASEGAWA. HOUYHNHNM>을 만들고 있다.


현재 <POPEYE>의 편집장은 마치다 유지(Machida Yuji)라는 인물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인적 변화가 새로운 <POPEYE>를 만든다기보다는 전임자들의 성공 사례를 존중하며 유지를 잇고, 새로운 온라인 및 모바일 환경에 맞추어 개선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가령 <POPEYE>는 종이 잡지가 모두 사라지던 시대에 (아무리 출판물 천국이라는 일본이라고 해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발행 부수와 인기를 구가했는데, 반대로 공식 웹사이트는 허술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오래도록 방치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매달 선보이는 잡지 콘텐츠와 비하인드 더 씬 같은 이야기를 꾸준히 배포하더니,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잡지 콘텐츠를 유려하게 혼합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의 경험을 바꾸고 있다.


먼저 2018년 12월호부터 시작한 구독형 <POPEYE> 앱이 있다. 여전히 종이 잡지를 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이 앱을 깔게 된 이래 1년씩 구독 연장 방식을 통해 아이패드(iPad)로 잡지를 본다. 월간지를 모은다는 건 집의 공간 일부가 꾸준히 사라진다는 것과 동일한데, 그런 점에서 개별 구매도 가능하고, 구독한 지난 호를 전부 볼 수 있는 구독제 앱은 훨씬 나은 경험이다(하나 아쉬운 점은 2018년 12월호 이전 호가 전혀 없다는 점인데, 깐깐한 일본 잡지사가 업데이트할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다른 하나는 공식 앱보다 늦게 출시한 공식 웹사이트, 뽀빠이 웹(POPEYE Web (https://popeyemagazine.jp), 이하 POPE YE Web)이다.


호리우치 세이이치(Horiuchi Seiichi)가 디자인한 탐스러운 ‘POPEYE’ 서체가 화면 가득 등장하는 POPEYE Web은 종이 잡지로서 <POPEYE>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을 통해 보는 손안의 또 다른 잡지를 구현한다.


우리가 아는 다른 잡지들도 물론 잘 만든 콘텐츠가 가득한 자사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다. 유튜브와 릴스처럼 소셜 미디어 시대에 특화한 온라인 콘텐츠에도 힘을 쓴다. 하지만 항상 그러한 것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곳에는 새로운 시류를 따른 무언가가 존재했으나, ‘잡지를 본다’라는 경험은 점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잡지란 무엇인가? 한 권으로 완결하여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는 단행본 형태 출판물과 달리, 태생부터 한 시대, 특정 시점의 이야기를 집약해서 모은 정보의 결정체이다. 이를테면 ‘시의성’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시의성이란 매달 벌어지는 일을 ‘지금’ 보고 있다는 경험이다. 또한, 단지 유행하는 것과 인기 있는 유명인, 브랜드가 힘을 쏟는 광고를 넘어서 만드는 이들의 철학과 취향이 녹아 있어야 한다.


POPEYE Web에 들어가면 가장 처음 볼 수 있는 것은 상단 오른쪽의 ‘오늘 날짜와 시각’이다. ‘이달의 TODO 목록’이라는 이름으로 업데이트하는 메뉴를 누르면, 편집자들이 고른 TV와 라디오 소식부터 영화와 책, 예술과 음악, 다양한 축제와 행사, 유튜브와 팟캐스트(Podcast)의 추천 목록이 있다.


온라인 매거진의 특성상 기사는 어느 정도 정리한 범주(카테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POPEYE Web의 구성 자체는 ‘문화, 여행, 음식, 패션, 라이프스타일’로 단출하다. 그러나 오리지널 콘텐츠 격인 연재 기사가 실로 다양하여, 한 번 보면 다른 기사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매력이 가득하다. 소위 ‘구제’로 부르는 헌 옷에 관한 에세이, 작은 가게를 시작하는 방법, 책상 위에 펼쳐진 과학, 지금 먹고 싶은 것과 좋은 굿즈들, 나이가 든 선배들에게 “스무 살 때, 무슨 일을 했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연재 기사까지 다양한 읽을거리가 있다. 일본어를 듣고 해석할 정도는 아니라 팟캐스트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편집부의 회의를 담은 콘텐츠(POP-EYE MEETING 편집 회의)’나 요즘 관심 있는 지역을 논하는 ‘타운 토크 라디오(TOWN TALK RADIO)’를 보면 언젠가 비슷한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잡지 화보나 기사도 일부 공개하며, 크롬(Chrome)이나 사파리(Safari) 브라우저의 한국어 번역 기능의 탁월한 성능으로 공식 앱이나 종이 잡지 대비 내용을 이해하며 볼 수 있다는 장점 아닌 장점도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뽀빠이 웹이 눈길을 끄는 점은 각 콘텐츠 페이지의 편집과 디자인 방식에 있다. 보통 웹사이트처럼 제목-사진-글로 이어지는 평범한 구성도 있으나, 개별 콘텐츠 종류에 따라 사진이 자동 슬라이드 방식으로 이어지거나, 웹사이트 스크롤에 따라 보였다 사라지는 배경 화면 광고 삽입 방식은 일반적인 광고나 형식의 거부감을 상당 부분 상쇄하는 데 신경을 썼다고 느끼게 한다.


그 외에도 마치 손으로 붙여 넣은 듯한 편집 방식을 시도하는 등, 뒤늦게(?) 공식 웹사이트를 만든 것치고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시도를 꾸준히 한다. 모바일 웹의 경험은 종이 질감을 고스란히 느끼는 잡지의 경험과는 전혀 다르지만, 종이 잡지로서 <POPEYE>를 볼 때, 멋지고 예술적인 레이아웃보다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찼다는 느낌을 살리는 방식을 그들 역시 꾸준히 탐구하는 것 아닌가 싶다.


종이 잡지가 저무는 시대에 굳이 잡지를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POPEYE>의 안목과 취향을 신뢰하고, 그 신뢰가 하나의 지지층이 되어 오리지널 콘텐츠가 존재하는 자사 웹사이트의 방문으로 이어진다.


최근 한국 뉴스 중 눈에 띄는 것은 TV와 신문에 이어 포털 뉴스의 순 방문자가 계속 감소한다는 것인데, 천편일률적 기사와 취재가 전무한 복사 붙여 넣기식 나열에 질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POPEYE>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달 발행하는 종이 잡지로 매체 영향력을 유지하고, 온라인 웹사이트와 디지털 구독 앱으로 신규 독자와 기존 독자에게 새로운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전하며,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웹 방문을 유도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


얼핏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수십 년간 잡지를 만든 관록 있는 매체들 역시 쉽게 유지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떠올리면 <POPE YE>의 지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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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YE> 2023년 11월호, 12월호 표지



◇ 앞으로도 우리 곁에 있어주길


길고 긴 찬양(?)의 마지막은 수년 전 쓴 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2017년 9월, 당시 갓 나온 <POPEYE> 846호를 보고 적은 글이다. 과거를 자꾸 들추는 이유가 마땅찮을 수도 있지만, 다른 잡지를 더는 보지 않게 되었던 시절, 심지어 일본어를 겨우 조금씩 읽는 수준임에도 종이 잡지를 넘기며 보는 즐거움을 알게 한 거의 유일한 매체가 <POPEYE>였기 때문이다.


<POPEYE> 매거진은 1년 열두 달을 영리하게 배분하고 호흡의 강약을 조절하여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들의 다양한 특집은 일본 잡지 특유의 오밀조밀하고 거미줄 같은 기획력에 맞닿아 있다. 광고주들이 돈을 쓰는 사이클을 따르는 게 눈에 보이지만, 꼭 그리 치부하기에는 남들이 굳이 하지 않을 아이디어를 기어코 실현한다(요즘은 좀 감상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가령, ‘당신은 스무 살 때 무얼 했습니까?’처럼). 자연스럽게 조금 힘을 빼고 보여주기도, 누가 봐도 한두 달 준비가 아닌 커다란 기획을 툭 내놓기도 한다. 에디터라는 외래어의 정확한 번역처럼, ‘편집자’의 본질에 가까운 작업이란 이 오래된 일본 잡지가 매호 만드는 방식은 아닌가 생각한다.


2012년 6월 이후-그러니까 리뉴얼 후 <POPEYE>에서 가장 좋은 건 ‘패션(fashion)’ 특집이다. 봄에도 비슷한 주제가 나오지만(보통 ‘도쿄 탐방’에 ‘매장’ 및 ‘쇼핑’ 특집을 겸해서), 역시 패션은 두툼한 겨울 외투들이 모조리 들어갈 10월호가 적격이다.


2012년에서 2017년이 되는 사이, 패션을 편애하는 남성들 사이 일종의 클래식(classic)으로 여겼던 것들에서 나는 한 발 빠지기도, 조금 관심이 사그라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발을 뺀 느낌으로 ‘여전한’ 그들을 바라보는 감각이 좋다. 더불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질려버렸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쉬운가, 생각한다(수년 전, 이건 반드시 오래 입을 거야! 라고 다짐하고는 수년째 잠들어 있는 내 옷장 전체에 묵념한다).


모든 동시대 패션이 이야기하는 클래식이란, 사실 얼마나 실제 다른 분야들의 쟁쟁한 고전들, 그 발끝만큼도 대접받기 어려운가. 사람들은 얼마나 빠르고 얕게 흡수하며, 얼마나 빨리 잊나. 상업적으로 영리하면서도, 또 조금씩 변하고 또 그대로 있는 잡지는 그래서 좀 ‘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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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YE> 2023년 10월호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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