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EYE Magazine 이야기 (上)

2023-11-14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04

종이 잡지가 모바일 시대를 사는 방법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대체로 아는 <뽀빠이(POPEYE·ポパイ, 이하 POPEYE)>라는 잡지가 있다.


한국에도 소위 ‘시티 보이(City Boy)’ 룩의 원조 격으로 알려졌다. 1976년 7월에 창간호를 발행한 이래 2023년 10월까지 총 918권의 잡지를 만든 월간지이며(과거에는 격주로 발행했다), 세계적으로도 ‘남성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가장 오래된 잡지 중 하나다. <POPEYE>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는 ‘Magazine for City Boys’로 의역하면 ‘도시 소년들을 위한 잡지’ 정도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 잡지에 관한 글을 한 번쯤 길게 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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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POPEYE> 2012 June, Issue 782, 리뉴얼 첫 호



◇ 브랜드의 광고판


보통 패션을 이끌어 가는 중심에는 아무래도 ‘패션 브랜드’와 브랜드의 고유한 스타일과 룩(look)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들에 있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훨씬 거대하게 느껴지긴 해도, 그들 역시 누군가 만든 창작물을 소비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패션의 중심에는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와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부터 에디 슬리먼(Hedi Slimane)과 라프 시몬스(Raf Simons) 그리고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패션을 넘어선 다양한 작업을 병행했더라도 본질은 결국 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들은 옷을 만들고, 컬렉션을 완성하고, 이를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선보이며 세계의 도시와 거리에 스타일을 전파한다. 때로는 모방을 낳고, 변형과 또 다른 창조의 원형이 된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패션이 거대한 산업이 된 이래 주도적으로 이어졌다. 그사이 <보그(VOGUE)>나 <지큐(GQ)>처럼 각국에 지사를 두고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소위 ‘라이센스’ 패션 잡지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잡지들 또한 나름의 룩을 만들어왔지만, 어느 순간 ‘화보 안에만 존재하는’ 유행에 몰두해 온 것은 아닌가 싶다. 특히 고급 기성복 브랜드들이 다른 브랜드와 섞이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흐름이 불문율이 된 이래 잡지 화보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그 안의 옷과 장신구들은 브랜드의 광고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POPEYE> 역시 상대적으로 패션 문화와 소비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인 일본에 적을 두면서도, 이러한 관성에 매몰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잡지는 문자 그대로 여러 이야기가 한곳에 모인 정보의 장 역할을 하지만, 때때로 읽어볼 만한 글과 사색이 필요한 통찰이 존재하고, 하나의 문화나 현상을 꾸준히 파고들어 그 자체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경우 또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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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YE> 앱 화면



◇ 도시 소년들을 위한 잡지


10대 후반 시절, 게임과 연예 잡지부터 온갖 패션 잡지와 문화, 예술 잡지 등을 광적으로 섭렵한 (아마도 거의 마지막 세대인) ‘종이 매거진 키드’ 출신으로서, 많은 잡지가 처음 포부를 잊고 변하거나, 시대에 순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POPEYE> 역시 잊힌 이름 중 하나였다가 종이 잡지의 르네상스 시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부활하였다. 인터넷 초기 시대를 넘어 다양한 소셜 미디어와 OTT, 유튜브와 게임 등이 경쟁하는 무한 콘텐츠 시대에도 그 가치는 빛이 바래지 않았다. ‘매달 한 권씩 발행하는 남성 패션 잡지’라는 정의는 마치 구시대의 유물처럼 들리는데,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며, 사람들에게 파급력을 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POPEYE>가 기사회생을 넘어 남성복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 데는 단연코 전 편집장, 키노시타 타카히로(Kino shita Takahiro)의 공이 크다. 2010년 전후로 스트릿 패션 블로그가 한창 유행할 때, 패션위크의 거리 패션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던 편집자 키노시타 타카히로는 1997년, 일본 매거진 하우스(Magazine House)에 입사하여 <브루투스 (BRUTUS)>의 부편집장 겸 패션 디렉터를 맡았다. 그리고 2012년 6월, 그가 첫 편집장을 맡아 전면 재단장한 <POPEYE> 매거진이 통권 782호로 출간했다.


‘시티 보이의 ABC(City Boy’s ABC)’라는 부제가 달린 리뉴얼 첫 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잡지의 개편 이전의 <POPEYE>는 유행하던 일본 패션 브랜드와 미국이나 유럽의 고급 기성복 브랜드를 적당히 버무린 화보에 연예인이 단골로 등장하는 어디에나 있는 잡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키노시타 편집장은 당시 영국 <모노클(Monocle)> 매거진의 패션 디렉터였던 하세가와 아키오 (Hasegawa Akio)를 새로운 패션 디렉터로 영입하고, <POPEYE>가 창간 첫 호부터 몰두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문화와 패션에 뉴욕 등 동부의 아이비리그 패션을 ‘동시대의 시점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결정을 내렸다. 2012년 당시에 이 잡지가 한국에 큰 파급력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우연한 기회로 접했는데, 유럽의 다소 고고한 잡지들이나 이도 저도 아닌 상업성에 물든 잡지에 질린 상태에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혹은 이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면서도 유용한 스타일링의 소년들이 가득한 잡지를 보고는 2013년 언젠가,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긴 적도 있다.


“2012년 5월, 문지문화원 사이(Saii)에 강의하러 가다가 시간이 남아서 들른 북오프(BookOff) 매장에서 처음 <POPEYE>를 샀다. 월간 패션잡지를 매번 사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인데, 리뉴얼 첫 호였던 2012년 6월호는 충격이었다. 책 전면에 인쇄된 ‘도시 소년들을 위한 잡지’라는 콘셉트는 리뉴얼 후 붙인 표어인 줄 알았는데, <POPEYE> 웹사이트에서 1976년의 창간호를 보고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왔구나 생각이 들어 감탄했다. 물론 <POPEYE> 또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던 시절이 존재했지만, 라이선스 패션잡지가 들어온 이후와 이전이 극명하게 나뉘는 우리나라 패션 시장을 보면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리뉴얼 이후) <POPEYE>가 대단한 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프레피풍을 비롯한 아메리칸 캐주얼을 기반에 두면서도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타 매체와 명확하게 다른 실용적인 스타일링이 있다. 둘째, 이러한 스타일과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곳곳에 가득 배치한다. 셋째, 한 가지 주제에 파고드는 것이 주특기인 일본 잡지 중에서도 풀어내는 솜씨가 무척 탁월하다. 넷째, 이건 편집자와 스타일리스트의 능력인 듯한데, 자주 들어가는 소위 유가(브랜드나 매장에서 돈을 내고 삽입한 광고 페이지) 화보마저도 마치 하나의 브랜드로 꾸민 것처럼 일관된 스타일링을 적용한다. 생로랑(Saint Laurent)이든, 에르메스(Hermes)이든, 비즈빔(Visvim)이든 말이다. 다섯째는 편집과 디자인으로, 얼핏 과한 듯하면서도 재치 있는 배치와 구도가 곳곳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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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YE> 2017 October, Issue 846



◇ 패션 흐름을 만들다


이 글을 쓴 이래 거의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1년에 두 권 혹은 열 권이 나오는 ‘다른’ 잡지들은 사지 않게 되었다.


그 잡지들은 여전히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 같은 곳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뉴 미디어 시대에 발맞추어 종이 잡지에 들어가는 인력을 개편하고, 디지털 미디어에 힘을 쏟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제삼자의 눈에도 선히 보인다.


한 권으로 완결하는 책은 여전히 전자책과 종이책 모두 틈틈이 구매하는 편이지?? ‘잡지’는 이제 거의 유명 인사의 기념용 표지나 독자 선물 경쟁에 달려 오는 부록 같은 존재가 되었다(슬프게도 말이다).


주변을 보아도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 할 것 없이, 잡지를 보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모든 정보가 소셜 미디어에 있고, 자신의 스마트폰 안에 있는 세상에 종이 매체가 설 곳은 더욱 더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POPEYE>는 특이하게도 여전히 매달 발행하는 잡지를 중심으로 생존하고 있다. 아니, 생존이라는 단어를 넘어서 공식 웹사이트와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가장 최근의 스레드(Threads)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OPEYE>는 여전히 그들의 정신적 뿌리인 미국 캘리포니아(정확히는, 60-70년대 젊은 일본 패션 편집자들이 한가득 동경을 품었던 미국 서부의 현대 자본주의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으면서 스케이트(skate)와 서프(surf) 문화를 다루고, 세계 도시 곳곳을 탐방하여 사람들의 실제 패션을 분석하고,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사는 집의 인테리어를 살피며, 손으로 만든 공예품의 대단한 점이나 피자와 커피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호 식품을 찬양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패션이라는 단어가 주는 당연하고도, 가끔은 질려버리는 유행과 반대쪽에 있는 옷과 브랜드를 모아 ‘언패션 (unFashion)’이라는 이름의 특집을 만든 적도 있다.


키노시타 편집장과 함께 <POPEYE>의 패션 화보를 거의 전담했던 하세가와 아키오 패션 디렉터는 체구가 작은 일본인들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오버사이즈’ 룩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본을 넘어 한국에도 ‘시티 보이 룩’이라는 단어가 (일부) 고유명사화하는 데 일조했다. 29CM이든 무신사이든, 차분한 올리브 색과 남색과 베이지색이 가득한 다소 펑퍼짐한 스타일의 일상복을 발견한다면, 90% 이상은 <POPEYE>의 영향 아래 있다고 단언한다.


앞서 ‘패션 흐름을 만드는 것’은 대체로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라고 했다. 이 잡지에 경외감 비슷한 감정을 품은 이유는 바로 그 어려운 일을 일개 잡지가 해냈다는 점이다. 2012년 이래 7년 동안, 그러니까 키노시타 편집장과 하세가와 패션 디렉터가 호흡을 맞춘 시기에 둘은 일본,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과 유럽, 미국에 이르기까지 소위 ‘POPEYE 룩’을 전파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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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YE> 타이틀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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