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염원 그리고 노력

2023-06-01 조윤예 기자  choyunye@gmail.com

김인태 / 김해김 대표

글로벌 디자이너 김인태의 오늘과 내일


서울의 에스모드를 졸업한 디자이너 지망생 김인태에게 언젠가의 파리패션위크 런웨이는 막연한 동경일 뿐 거창한 계획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2019년 파리 의상 조합에 가입, 파리패션위크에서 첫 공식 쇼를 연 브랜드 김해김을 이끌고 있다. 그의 오늘을 있도록 한, 결정적인 순간들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김인태 대표


◇ '나만의 무언가, 하루에 한 가지씩'

한국에서 태어나, 파리를 거쳐 한국에 다시 돌아온 디자이너 김인태의 오늘에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해 준 가장 첫번째 인물은 바느질을 알려준 할머니. 그 다음은 에스모드서울을 졸업한 그에게 파리행을 적극 추천한 손영순 교수다. 파리에 가서는 학창시절부터 존경했던 정욱준 디자이너를 만나게 된 것도 행운 중 하나였다.

"10년 동안 파리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파리에 진출한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나만의 무언가를 보여주자라는 막연한 포부로 겁도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미 조엘이라는 친구의 소개로 일하게 된 발렌시아가, 니콜라 제스키에르 등 명품 브랜드에서 경험을 쌓은 터라 맞닥뜨린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 가지씩 만이라도 해내자' 라는 마인드로 이겨내며 점점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요."

브랜드를 런칭한 후에도 파리 의상 조합에 어떻게 가입할 지, 어떻게 글로벌화 할 지에 대해서는 막연했다. 하루에 한 가지씩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그에게 우연과 염원의 힘이 작용한다.

"우연히 파리의 PR에이전트가 의상 조합의 관계자를 소개시켜 줬고, 2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김해김의 미래에 대한 포부를 밝힐 수 있었어요. 단 5분만 시간을 내줄 수 있다고 했던 그녀가 결국은 쇼를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게 된 것이죠. 의상 조합에 가입하고 첫 쇼였던 19 S/S 첫 공식쇼에서 화제를 일으켰던 '링거투혼 워킹'은 글로벌한 관심을 받았고, 이후로 김해김 로고가 적힌 티셔츠와 선글래스가 전 세계로 팔려나가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펜데믹과 함께 김해김의 세계화가 시작됐다. 이후 '해외에서 더 유명한'이라는 수식어를 뗄 수 있을 만큼 한국으로 그야말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작았던 작업실 규모의 첫 매장을 삼청동의 첫 번 째 플래그십스토어로 이전 오픈했고, 2023년에는 청담동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제 2기를 본격적으로 열게 된다.


◇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펜데믹이 끝난 올해 초 선보인 23 FW 컬렉션에서는 'LINK UP'이라는 테마를 통해 한국 전통 매듭방식을 활용한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파리에서 경험한 프렌치 꾸뛰르와 한국에서 배워온 전통을 접목해 동서양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공예를 선보이는 것이 브랜드 김해김의 철학이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흔한 슬로건 아래 많은 브랜드들이 적절한 선을 지키기 힘들어 했던 것에 비해 김해김은 특유의 세련된 감성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모던하게 풀어낸다. 매 시즌 하나의 요소에 빠져들어 집착스러운 실험을 하는 옵세션(OBSESSION) 시리즈도 그의 시그니처다.

처음 선보였던 장미 시리즈부터 가죽, 리본, 헤어, 진주 등 시즌마다 다뤄졌던 요소들이 김해김의 일부가 되어 하모니를 이루도록 한다. 브랜드 초기에는 오간자와 꽃으로 유명해졌다면 지금은 리본과 진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쇼에서도 누드에 진주만 걸치고 나온 모델이 무대 위에서 진주가 다 흩어지도록 연출한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시리즈는 사진집으로 엮어져 출판되기도 했다.
항상 신선한 아이디어를 쇼에 접목해내는 그가 컬렉션을 준비하기 전, 그는 항상 즉흥적이면서도 우연한 상황들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곤 한다.

"계획에 없던 기차여행을 떠나거나, 모르는 도시를 지도없이 방황하기도 합니다. 이런 자극들이 느슨해진 일상에 다시 탄력을 불어넣어주고, 새로운 디자인을 시작하기에 적합한 상태를 만들어 주거든요. 때를 맞추지 못하고 찾아간 비바람 부는 바닷가를 보고 만든 데님 꾸띄르 드레스처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아이디어들이 컬렉션에 반영될 수 있죠."

얼마전 오픈한 청담 플래그십을 시작으로 앞으로 10년 동안은 차례로 파리, 상하이, 뉴욕, 밀라노, 런던, 도쿄 등의 주요 도시에 플래그십 스토어와 전시공간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제딘 알라이아가 롤모델이에요. 그는 유니크한 코드로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섹시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고, 그 방식은 시대를 초월하죠. 더구나 파리에 있는 헤드쿼터는 내가 바라는 김해김의 완벽한 모습이에요. 메인 플로어에서는 늘 작은 전시가 진행되고, 그가 작업했던 아틀리에와 부티크가 공존하며, 아트서적을 판매하는 서점과 카페가 함께 운영되는 공간이요."

김해김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거점 도시에 생긴 이후로는 무형의 콘텐츠 개발로 영역을 넓혀가고, 아티스트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아티스트들 간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발전시키는 스페이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디자이너들은 모두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지키는 장군들이예요. 과거에는 수요를 늘리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면, 현재는 그를 위해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지 않나요?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디자이너들이구요. 새롭게 선보인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자발적인 소비를 일으키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죠. 아름다운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은 그 일이 보람된다고 하니, 인류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세상을 지키는 장군이라고 답하는 귀여운 김인태 디자이너에게 앞으로 김해김 김인태처럼 되기를 꿈꾸는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물었다.

"지금 거울을 보면서 당신이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제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먼 훗날 성공한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성공을 진행 중인 이 순간 나의 모습을."


김인태 대표는 누드에 진주만 걸치고 나온 모델이 무대 위에서 진주가 다 흩어지도록 연출한 퍼포먼스를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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