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8 유재부 패션 에디터 UB@fi.co.kr
자정 넘게 '소음·조명 남발' 뒤풀이 행사로 '그들만의 파티'라는 비판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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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지난 16일(한국 시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국보 제223호 경복궁의 근정전과 회랑에서 반짝이는 조명과 북소리를 배경으로 한국의 헤리티지와 모던 패션을 결합한 올드 & 뉴의 믹스인 2024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였다.
마르코 비자리 구찌 글로벌 회장 겸 CEO, 구찌 앰배서더인 배우 겸 가수 아이유,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하니, 영화배우 이정재, 미국의 영화 배우 시얼사 로넌, 다코다 존슨, 엘리자베스 올슨 등 약 570여 명의 국내외 유명인들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경복궁서 열린 첫 럭셔리 브랜드 패션쇼로, 아시아서 처음 열린 구찌 크루즈 패션쇼였다.
구찌는 이날 오후 8시부터 약 30분간 경복궁에서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선보였다. 유난히 더웠던 하루가 지난 해질녘 무렵, 관광객 한 명 없는 구중궁궐에 불이 켜지고 소나무로 뒤덮인 산을 배경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OST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면서 시작된 패션 쇼는 황동혁 감독의 한드 ‘오징어게임’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의 OST를 담당한 작곡가 정재일의 음악과 함께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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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3 루이비통 프리폴 컬렉션에서 피날레를 장식했던 세계적인 한류 모델 최소라는 이번에는 청바지 위에 블랙 롱 패딩 코트를 걸치고 홀로그램 라일락 퀼팅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바게트 모양의 가방을 들고 구찌 패션 쇼의 포문을 열었다.
이번 구찌 쇼는 한국의 전통 복식 문화에 대한 레퍼런스가 돋보였다. 구찌 측을 사전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컬렉션에는 서울만의 독창적인 패션 스타일과 한국의 전통적인 의복에 대한 연구가 반영됐다”고 말했다. 구찌의 의도는 시작부터 빛을 발했다. 패션쇼 오프닝을 장식한 도포를 연상시키는 긴 기장의 보머 재킷이 좋은 예였다. 풍성한 실루엣의 스커트 역시 속치마 등을 통해 볼륨을 강조한 한복 치마를 연상시켰다. 저고리 매듭에서 영감을 얻은 리본 디테일이 반복적으로 등장했고, 색동저고리 특유의 강렬한 색을 그대로 차용한 듯한 네온 그린 컬러의 롱 드레스 등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컨템포러리 K-패션의 메인 키워드인 부르주아 스트리트웨어와 스포츠웨어를 믹스한 패션쇼에서는 서핑 슈트를 입거나 스케이트보그 형태의 백을 든 모델들이 경복궁 근정전을 둘러싼 복도의 고풍스러운 기둥 사이를 활보했다. 단순히 ‘신선한’ 백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평소 스케이터들이 입는 와이드 더블 니 팬츠 혹은 오버사이즈 셔츠 등을 매치했다. 또한 무릎 부분에 슬릿이 들어간 와이드-레그 트라우저와 벨트를 맨 코트, 헐렁하게 늘어뜨린 티셔츠도 주목을 받았다.
부클레 바이크 쇼츠와 매치한 허리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잘라낸 재킷 뿐 아니라 블랙 스쿠버 슈트 위에 레이어드한 런웨이에서 펄럭이는 러플 장식이 돋보이는 페일 핑크 쉬폰 드레스의 믹스는 스트리트와 스포츠웨어의 절묘한 조합이었다. 여기에 네오프렌은 턱까지 지퍼가 올라오는 레이어드 터틀넥과 옆구리를 가로 지르는 디아만테 크리스털로 장식된 트위드 미디 스커트와 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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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길고 루즈한 실루엣, 허리를 낮게 잡아 발목을 감싸는 팬츠, 낙하산 맥시 스커트, 수많은 끈으로 묶은 스타일링을 통해 서울 스트리트의 유스 룩을 글로벌 런웨이로 호출했다. 서울의 스트리트 스타일에 대한 미묘한 언습은 티셔츠 뒷면에 경복궁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노골적인 서울 찬가보다 더 스마트하게 느껴졌다. K 스타일에 고정관념을 덧씌우는 대신 서울이 여느 패션 도시와 마찬가지로 패션에 민감한 도시라는 점을 강조한 듯 보였다.
마르코 비자리 구찌 CEO는 “세계적 건축물인 경복궁에서 한국 문화와 이를 가꿔 온 한국인들과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며 “과거를 기념하고 미래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경복궁에서 2024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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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패션쇼 이후 진행된 뒤풀이 행사가 밤늦게까지 도 넘은 소음을 유발해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이날 밤 9시56분쯤 트위터에는 “소음 공해 신고는 어떻게 하나”라고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인근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네티즌 A씨는 먼 거리에서 촬영한 구찌 뒤풀이 행사장 사진을 첨부하며 “10배 줌으로 찍은 거다. 내 방까지 음악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스피커를 밖에 설치한 것 같은 정도다. 심지어 레이저 불빛까지 번쩍거린다”고 호소했다.
약 두 시간 뒤인 밤 11시52분쯤 A씨는 다시 트윗을 올려 “나 진짜 정신병 걸릴 것 같다. 왜 저렇게 외부에까지 소리를 울리게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여기 사람 사는 곳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명품 회사답게 굴면 안 되는 거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후 스피커 소음과 레이저 불빛 등 뒤풀이 당시 현장 상황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여럿 올라오며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SNS와 여러 커뮤니티에는 “쇼 멋있게 해놓고 뒤풀이로 욕먹는다” “평일 저녁에 저게 웬 민폐냐” “명품이 뭐라고 일반 시민들이랑 무슨 상관이냐. 서울시는 뭐 하는 거냐” “루이비통은 잠수교에서 패션쇼 열면서 교통 통제로 난리더니 구찌는 소음 공해냐” 등 부정적 반응이 나왔다. 한 네티즌은 “이날 바로 옆 서울광장에서는 이태원 참사 200일 추모식이 있었다”며 씁쓸해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구찌는 “패션쇼 종료 후 진행된 애프터 파티로 인해 발생한 소음 등 주민들이 느꼈던 불편함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3시간 민폐에 한줄짜리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명품 브랜드답지 못한 싸구려 매너라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구찌는 지난 해 같은 장소에서 패션 쇼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159명의 사망자를 낸 끔찍한 이태원 할로윈 참사가 발생한 후 곧바로 취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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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구찌는 지난해 11월 코로나 펜데믹 영향도 있었지만 경쟁사에 뒤처지는 매출 때문에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결별을 선택했다. 물론 매시즌 반복되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비슷한 콘셉추얼 테마에 고객들이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구찌는 올해 말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대체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사바토 데 사르노를 영입할 예정이다. 이번 2024 크루즈 컬렉션은 사바토가 합류하기 전, 구찌 디자인 팀이 담당한 마지막 컬렉션인 셈이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 LVMH 그룹의 상승세에 응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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