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팔지 않는 매장의 탄생

2023-04-01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 insightprobe@gmail.com

최원석의 리테일 BIZ 03

매장의 정의와 변화의 시작


슈퍼카 매장이나 모델하우스는 제품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판다(사진=일룸·LG지인 모델하우스 쇼룸)


매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전통적으로 매장을 만드는 이유는 상품을 팔기 위함입니다. 특정상품들을 모아서 쌓아서 보여주고, 소비자의 방문 및 즉각적인 구매를 목적으로 설계되죠.

전통적인 매장은 고객이 찾아오기 쉬운 위치에 기반하여 지역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또는 아이템 별로 특화하여 특정 목적고객을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자제품만을 한번에 구매하기 쉬웠던 양판점(하이마트, 삼성플라자 모델)이라든가 수입상품들을 모아서 파는 남대문 수입상가, 포장지들을 특화한 방산시장 등이 전통적인 형태의 매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 속에서 매장의 가치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찾아보면 예전부터 우리 주위에는 물건을 팔지 않는 매장들이 존재해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슈퍼카 매장이나 모델하우스입니다. 그 매장에서 즉각적인 물건의 구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체험하고, 구매에 대한 기대감을 이상적으로 높여주기 위해, 미래의 가능성을 팔죠.  

우리에겐 제품의 구매가 필요한 게 아니라 즐거운 상상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구매활동이 결코 이성적이고, 기능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다들 편의점을 갔을 때를 상기해보세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머무르셨나요? 보통 2~3분가량?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가 진짜 필요한 무언가를 구매하는 데에는 30초면 충분합니다. 이후에 나오면 그만인데 사람들은 그때부터 편의점 안에서 새로운 발견을 찾아 모험을 시작하죠.

새로운 제품, 못 봤던 과자는 없는지? 예상하지 못했지만 물건을 봤더니 사고 싶어지는 것은 없는지? 내가 구매한 무언가와 같이 사면 좋은 건 없는 건지? 인간은 발견과 상상의 즐거움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도 모릅니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츠타야(TSUTAYA)'와 '무지(MUJI)'죠. 단순하게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나 섹션을 기반으로 연관된 상품들을 배치하고 하나의 경험이 되어 그 공간 안에서 머무르는 즐거움을 완성한 매장. 대표적으로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티-사이트(T-SITE)를 꼽을 수 있습니다.

츠타야는 마스다 무네아키가 만든 서점 및 DVD 대여서비스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도서, 대여업이라기보다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선구자가 되었죠. 티-사이트에서는 소비자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책, 음악, 영화를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제안했죠. 또한 대표적인 고급 주거지역인 다이칸야마에 기존의 서점이라는 개념보다는 작은 골목이라는 개념으로 공간을 설계하고, 단순하게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커피 식당, 전시장 등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구성했습니다. 우선 티-사이트에 방문해야 할 다양한 이유를 제공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발견을 위해 고객들을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숲 속의 도서관이라는 컨셉으로 건물 밖으로 산책로를 연결하고, 호텔식 컨시어지 서비스, 즉 고객의 요청에 따라 책이나 음반 영화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설계, 30여명이 넘는 직원들을 배치했습니다.

특히 맡은 영역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직원들로 셰프나 음식연구가로 활동하던 직원, 음악이나 영화 마니아인 직원을 뽑아 관련 서적을 담당하고 소개나 제안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단순하게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책의 큐레이션부터 연관된 상품, 그리고 심지어 책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스탭까지, 다양한 장치와 설계로 사람들이 공간 내에서 끊임없는 탐사와 발견, 그리고 이야깃거리를 전달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습니다.


  '시루카페'는 커피 대신 학생들의 커리어에 대한 서비스와 정보를 기업과 연결시켜준다


◇ 무지 긴자, 시루카페

무인양품의 MD 구성도 물건을 쌓아두고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그에 대한 이야기에 맞춰 소개하고 연관되어 떠오르는 단어나 소재들이 연계되도록 MD 콘텐츠를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어떤 주제 하에 컨셉이나 메시지가 느껴지는 MD를 두고 메인 상품의 배치 및 관련 상품의 경우 기능이나 물리적인 카테고리가 아니라 소비자의 연상과 관련된 방식으로 디스플레이가 이뤄지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차의 재료에서부터 차를 내리기 위한 도구들, 그리고 차에 관련된 책과 와가시(디저트)개념의 과자까지도 하나의 세트로 구성하여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확장해 나아가는 방식이죠. 소비자들은 필요한 것을 기능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주말은 차 한잔의 여유를 즐겨 볼 수도 있겠다'라는 상상과 더불어 상황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또 하나의 재미난 케이스를 보자면 커피를 공짜로 주는 '시루카페(SHIRU CAF?)'가 있습니다. 시루카페에서는 커피를 팔지 않습니다. 30세미만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이라면 회원가입 후 누구나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습니다. 카페에 방문하는 대학생들은 카페에 비치된 태블릿PC를 이용해 학교와 전공, 졸업연도,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모든 메뉴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시루카페는 2013년 교토에서 설립, 인력제공을 기대하는 대기업들에게 스폰서십을 받아 운영되는 모델로 각 기업들에게 연간 140만엔(한화 1500만원) 비용을 받아 운영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시루카페를 후원하고, 대학생들의 정보를 가져가는 구조로 구인난에 목마른 기업들과 취업 및 캐리어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연결해주는 비즈니스 플랫폼이자 취업 가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커리어에 대한 서비스와 정보를 연결시켜주는 공간인 것입니다.


◇ 비즈니스의 접점이자 브랜드 체험의 공간

이미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매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이제 공간은 브랜드나 비즈니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소비자를 위해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경험으로 제공하고 이를 비즈니스로 전환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BMW Welt도 그런 공간일 듯합니다. BMW의 모든 차량과 기업에 대한 설명을 볼 수도 있지만 BMW차량 구매 시, 차량의 인수인계가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하죠. 벨트(Welt)에서는 리프트를 통해 차량이 탑 플로어(Top floor)로 이동하여 소비자가 직접 픽업하게 되고 벨트 내부의 런웨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차량을 직접 운전해 지상으로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BMW 벨트는 단순하게 차량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에게 BMW 드라이버가 되었다는 소속감을 만들어 내는 하나의 무대와 같은 공간입니다.

단순하게 물건을 팔고 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온라인 커머스라는 훌륭한 솔루션이 이미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가치를 오프라인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BMW Welt는 고객에게 BMW 드라이버가 되었다는 소속감을 만들어준다

'츠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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