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콘텐츠가 패션의 ‘시그니처’를 만든다

2022-06-15 황연희 기자 yuni@fi.co.kr

‘MLB’ ‘메종키츠네’ ‘웰던’의 컬처 르네상스

# 캐주얼 브랜드 A는 사람 심볼을 활용해 1000억원 볼륨으로 단숨에 커졌지만 현재는 브랜드를 중단한 상태다. 재기를 노리며 사람 심볼을 다시 적용한 신상품을 개발했으나 과거의 전성기를 누리기에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 야상점퍼 한 아이템으로 700억원 매출을 기록했던 B 브랜드도 자취를 감췄다. 다운점퍼 하나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몽클레르', 영국을 대표하는 남자들의 왁스재킷 '바버'도 여전히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B 브랜드의 수명은 15년을 넘지 못했다.




. 'MLB'는 시그니처 아이템 전략을 넘어 콘텐츠, 컬처, 미디어 전략을 강화함으로써 '브랜드 시그니처'를 공고히 하고 있다

브랜드의 지속적인 미래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 시각적인 플레이가 아닌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시그니처로 생태적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특히 콘텐츠 파워가 브랜드의 절대적 우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면서, 콘텐츠의 근간을 충실하게 할 수 있는 시그니처 전략이 중요하다. 


시그니처(SIGNATURE)는 사전적으로 서명, 간판, 특징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를 구분하기 위한 정체성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패션 브랜드의 시그니처를 이야기하면 브랜드 로고, 심볼, 패턴, 컬러, 특정 아이템으로 이해됐지만 이는 다소 부족한 해석이다. 시그니처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 


앞서 말한 A, B 브랜드도 로고, 심볼, 아이템 등을 활용한 전략을 펼쳤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이것에만 의존했던 것이 하락세의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최근 이커머스 플랫폼, 골프 시장의 호황으로 수백여개의 스트릿, 골프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들 역시 브랜드 로고, 심볼 플레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브랜딩 전문가인 권민 대표는 "시그니처는 보이는 요소이지만, 진정한 브랜드 시그니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패션에서 시그니처는 상품이 아니라 고유한 캐릭터를 드러내는 스타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로고, 심볼, 패턴 등 차별화된 디자인 시각 요소를 넘어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타일, 그 안에는 콘텐츠 파워가 구축되어야 한다.




◇ 'MLB', 콘텐츠 브랜드가 시그니처를 만든다 
앞서 언급했던 A, B 브랜드는 공교롭게 2007년 동시에 론칭한 브랜드다. 이보다 10년 앞서 1997년 론칭한 'MLB'는 캐주얼존에서 마켓 1위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중국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지난해 1조 클럽(매출 1조 2000억원)에 이름을 올렸다. SPA 브랜드가 아닌 단일 브랜드로 기록한 성과인 만큼 더욱 의미가 깊다. 1990년대 론칭한 캐주얼 브랜드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올드한 브랜드로 MZ 세대의 외면을 받고 있지만, 'MLB'는 현재 캐주얼에서 매출 1위를 공고히 함은 물론 글로벌에서도 인기다. 'MLB'의 시그니처는 어떠한 파워를 발휘하고 있을까?


'MLB'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의 정신과 역사를 캐주얼 브랜드로 재해석한 만큼 'MLB'의 심볼, 로고를 활용한 플레이가 핵심이다. 30개 MLB팀이 주요 IP로 상당수 제품에 이들 구단 심볼을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NY(뉴욕 양키스), LA(LA 다저스) 등이 대표적이다.


또 확고한 시그니처 아이템도 보유하고 있다. 'MLB' 야구모자가 대표적으로 이는 중국 시장 진출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MLB' 야구 모자는 4년 만에 중국 판매량만 650만개를 판매할 만큼 매출 의존도가 높다. 의류 라인에서는 모노그램 패턴 라인을 기획해 Y2K 트렌드에 맞춰 레트로 물결에 편승했다. 이 같은 전략이라면 A, B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MLB'가 25년 역사를 지키며 마켓 1위를 수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로고 플레이 의존도가 아니라 확고한 브랜드 철학과 문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라는 스포츠 컬처는 매 시즌 화려한 이슈와 선수들을 배출하기에 브랜드 플레이에도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최지만(탬파베이 레이스) 국내 선수들의 활약은 새로운 팀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MLB' 의류는 스포츠 정신을 근간으로 하지만 여기에 스트릿 감성을 부여해 패셔너블하게 재해석하고, 음악과 댄스, 그리고 스크린과 믹싱된 콘텐츠 마케팅에 끊임없는 투자를 단행했다. 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 연출, 소셜 미디어 전략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올드해 보이지 않기 위한 리프레쉬와 영층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에 끊임없이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응집된 팬덤을 유지하고 있다. 중요 포인트는 팬덤의 핵심층이 시대에 맞춰 꾸준히 변화한다는 점이다.


패션과 뮤직, F&B 컬처가 결합되어 풍부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는 '키츠네'

◇ 동양과 서양, 패션·음악·건축의 집합체 '메종키츠네'
서양과 동양의 만남 '여우집(메종키츠네)'은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가 됐을까? '메종키츠네'는 2002년 패션 디자이너 쿠로키 마사야와 다프트 펑크 매니저 겸 아티스트 디렉터 질다스 로액이 만나 패션과 음악을 접목시켜 론칭한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다. 프랑스어 '메종(집)'과 일본어 '키츠네(여우)'를 접목한 브랜드명처럼 서양과 동양의 믹스, 패션과 문화의 만남이 시작이었다.


'메종키츠네' 역시 올해 론칭 20주년을 맞이하는데 여전히 MZ의 열광을 받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고, 지난해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1000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하는데 현격한 공을 세웠다.


'메종키츠네'의 시작은 일렉트로닉 뮤직 브랜드 'Kitsune'였고, 2005년 파리의 팔레드도쿄에서 첫 기성복 컬렉션을 발표하며 패션 브랜드로 모습을 갖췄다. '메종키츠네'는 일렉트로니카 음반, 카페 등을 오픈하며 브랜드가 갖는 다양한 콘텐츠를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3CE, 애시드, 아더에러, 갤럭시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 상품을 개발하면서 국내 소비자까지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메종키츠네' 역시 여우 심볼로 잘 알려졌지만 그 보다 쿠로키 마사야와 질다스 로액의 서로 다른 콘텐츠의 시너지 효과로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특히 쿠로키 마사야는 도쿄, 파리, 뉴욕 등에 거주하며 다문화의 글로벌 감성이 발달했고, 무엇보다 건축가였던 그의 감각이 패션에도 독특한 스타일로 어필되고 있다.


편집숍 '비이커'의 매니저는 "'메종키츠네'의 인기는 남녀 구분없이 다양한 연령대가 선호한다는 점이며, 특히 로고 와펜 자수 제품이 인기다. 올해는 '키츠네' 심볼이 1개인 베이직 디자인뿐만 아니라 더블폭스, 칠랙스 폭스(건방진 여우) 심볼 시리즈 등 다양한 라인이 선호되고 있다"고 말했다.


◇ 콘텐츠 힘을 빌려야 뜬다
'MLB' '메종키츠네'처럼 패션과 컬처의 콘텐츠 결합으로 시그니처 파워를 공고히 하는 브랜드도 있지만 브랜드 시그니처를 만들기 위해서 콘텐츠의 힘을 빌리는 전략도 중요하다.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글로벌 브랜드의 시그니처 탄생에는 문화 콘텐츠의 조력이 뒷받침됐다. 클래식의 아이콘 '샤넬'의 트위드 재킷은 존F케네디의 부인 재키 케네디에 의해 인지도가 높아졌고, 영화 '보카치오 70'의 로미 슈나이더가 대중적인 인기에 기여했다.


육군 장교의 레인코트로 시작했던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가 착용하며 패션 아이템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고무 운동화 시초 '케즈'의 캔버스는 영화 '더티댄싱'에서 주인공 제니퍼 그레이가 화이트 '케즈'를 착화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청바지의 시초 '리바이스'가 청춘, 반항의 시그니처가 된 것은 영화 <위험한 질주> <이유없는 반항>의 힘이 컸다.


1970~1980년 문화 르네상스 시대에는 영화, 드라마가 패션 브랜드의 시그니처 아이템을 만드는 데 중요한 키포인트 전략이었다. 요즘은 어떨까? 영화,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뮤직비디오, 예능 등 새로운 문화 콘텐츠 그리고 유튜브, 틱톡, 릴스 등 새로운 소셜 미디어가 과거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스트릿 브랜드가 글로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국 음악,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K-콘텐츠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전략을 활용한 '웰던'

권다미, 정혜진 듀오 디자이너가 론칭한 '웰던(We11done)'은 2015년 편집숍 '레어마켓'의 PB로 시작했다. '완전히 익힌, 잘 만들어진' 의미로 '웰던'이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했고, 위트있게 'll'을 대신해 숫자 '11'로 교체했다. 레어마켓을 만드는 11명의 멤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패션 블로거 린드라메딘의 스타일링 클래스로 브랜드 론칭을 알렸던 '웰던'은 2020 FW 파리패션위크에 참여하며 국내보다 글로벌 마켓을 주 타깃으로 정해 해외 수출에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세쿼이어캐피탈로부터 아시아 최대 규모인 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 발판을 확고히 했다.


'웰던'은 론칭 초기부터 권다미씨의 동생 지드래곤(권지용)이 모자, 셔츠, 니트, 재킷 등을 착용하며 자주 노출되어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다. 지드래곤은 2020 FW 파리패션위크에서도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웰던'은 국내 유튜버 채널보다 중국, 일본, 영국, 러시아 등 해외 유튜버들의 콘텐츠 아이템으로 자주 노출되고 있다.


'유타골프'는 볼드한 브랜드 로고와 블랙팬서 그래픽 시리즈, 일러스트 골드 라인 아트웍, 자카드 패턴 등 독자적으로 개발한 디자인의 상표권 등록을 마쳤다. 이를 통해 오뜨꾸띄르 골프웨어라는 별칭을 얻은 '유타골프'는 독창적인 유니크함을 어필하기 위해 골프 예능 콘텐츠를 선택했다.


기존 골프웨어가 스포츠 전문채널에 브랜드 협찬을 주력했다면, 제이앤지코리아는 직접 골프 예능 방송프로그램 '디스이즈골프'를 제작하고, '유타골프' 제품을 단독으로 노출시켰다. '유타골프'는 자체 골프 방송 외에도 유튜버들과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2030 세대가 즐겨보는 콘텐츠로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제이앤지코리아 관계자는 "브랜드를 론칭하며 '유타골프'의 오뜨꾸띄르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고유 패턴을 개발해 시그니처로 활용하기 위해 13종의 상표권 등록을 마쳤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것도 특정 아이템이 아닌 '유타골프' 스타일이다"고 말했다.


패션 마켓은 이커머스의 발달, 보더리스 마켓의 발달로 글로벌 소비자가 인식할 수 있는 시그니처 개발이 더욱 중요해졌다. 글자는 문장이 아니다. 문장으로 만들어진 글이라고 독자의 공감대를 얻진 못한다. 탄탄한 스토리가 있는 글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브랜드 역시 BI, 아이덴티티가 연결된 콘텐츠 파워가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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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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