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패셔너블해서 죄송합니다."

2022-05-04 유재부 패션 에디터 UB@fi.co.kr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


1980년대를 풍미한 코미디 황제 이주일. ‘수지 큐’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리던 우스꽝스러운 춤과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를 전국적으로 유행시킨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발판으로 1992년 14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주일’이라는 본명이 적힌 그의 선거 포스터의 캐치프레이즈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였다. 못생겨서 죄송하지만, 국회의원의 자격은 뻔뻔한 얼굴이 아니라 민심을 읽는 진심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덕분에 그는 못생긴 얼굴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한국 정치판의 추한 ‘민얼굴’을 경험하고는 1996년 15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그는 정치판을 떠나면서,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해서 기대를 했지만, 코미디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라고 말했다. 4년 동안 ‘못생겨서’ 죄송했던 그는 '마음'만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 그가 국민에게 남긴 메시지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것이었다. ‘뭔가 보여 드리겠다’라고 허풍만 늘어놨다가 정작 코미디보다 웃기는 꼴을 보이는 것이 작금의 국회 풍경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정작 ‘죄송하다’라고 말해야 할 사람은 코미디언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세기가 바뀐 2022년에 또 다른 죄송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번엔 못생겨서 죄송한 것이 아니라 너무 패셔너블해서 죄송한 사람이다. 바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 출연해 보통 국무위원 후보자한테 마이크를 들이대면 다소곳이 ‘청문회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만 보다가 한 후보자가 굉장히 패셔너블한 스타일로 당당하게 준비했다는 듯이 자신 생각 밝히는 모습이 무척 불편했다고 발언해 화제가 되었다.


이날 조응천 의원의 발언에서 주목받은 단어는 ‘패셔너블’이었다. 사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팩트다. 그동안 한 후보자처럼 완성도 있는 슈트 스타일을 선보인 정치인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한 후보자의 스타일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옷걸이(?)가 좋은 한 후보자는 어떤 옷을 걸치더라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이미 지난해부터 미디어와 커뮤니티의 주목 대상이었고, 여권에서 역시 옷걸이가 좋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신구 법무부 장관으로 스타일을 비교하는 것은 미디어의 생리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된 후 한동훈의 출근길 패션은 늘 화제다. 착용한 제품의 브랜드명이나 가격은 물론 스카프를 맨 방식부터, 넥타이 딤플 연출, 바지 밑단을 접어 올린 턴업 등은 슈트 스타일의 정식을 보여주었다. 이에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칼주름 바지에 턴업, 옷매무새 정리까지 빈틈없어 보인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 같다’ ‘찢어진 구두 쇼보다 반질반질한 구두 차림이 훨씬 솔직하다’라는 등 인상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일반적으로 패션 용어인 ‘패셔너블’은 ‘유행하는’ ‘현대적인’ ‘간지나는’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종합하면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잘 입는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과거와 현재, 국내외를 불문하고 패션이 정치를 만나면 메시지가 된다. 전 세계적으로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에게 ‘이미지 만들기’는 따로 전문 스타일리스트 채용할 정도로 중요한 과제다.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이미지가 중요한 소위 ‘이미지 정치’ 시대기 때문이다. 따라서 패셔너블한 스타일로 대중들의 호감을 받아 이것이 득표로 이어져서 당선되는 것은 당연한 행보다. 따라서 정치인이 패셔너블하다고 해서 죄송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때 야인이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각종 발언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그의 패션은 이전과 다른 힘을 갖는다. 바로 패션이 가지는 메시지 파워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이자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면서 흔한 넥타이 하나에도 메시지가 실려 있다. 지난 1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 때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입은 붉은빛 스카프는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패션을 통한 지지로 해석되었다.


또한 최고가 명품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0만 원대 스카프, 30만 원대 가방 등은 가성비를 따지는 젊은 세대들의 주목을 받았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라는 찬사와 함께 그만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부상한 국내 가방 브랜드 데이빗엔헤넬의 서류 가방은 패셔너블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주목받으며 품절이 되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완판왕' 정치인의 탄생한 셈이다. 현재는 법무부 장관 후보지만 아직 젊은 나이기 때문에 앞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 그 경제적 효과를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정치인의 옷차림은 과거에도 화제가 됐었다. 지난 2003년 유시민 작가의 국회의원 시절 '백바지 등원'이 대표적이다. 유시민 작가는 보궐선거에 당선돼 4월 29일 취임 선서를 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흰 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연단에 서자 한나라당 중심의 여당 국회의원들이 '예의가 아니다'라고 반발했고 일부는 퇴장하기도 했다. 이에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은 "모양이 좋지 않다"며 선서를 다음 날로 미뤘다.


지난 2020년에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 입고 참석했던 옷차림이 논란을 낳았다. 류 의원은 1992년생으로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총선에서 당선됐다. 따라서 MZ세대인 그녀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국회에서는 아무런 비난이 없었고 이 원피스 브랜드는 품절되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진보적인 정당이 다수였기 때문이지 아니면 국회의원이 인식이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국회 내에서 '분홍 원피스'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을 퍼붓지 않을 만큼 '격식 주의'가 약해졌다는 점에선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복장을 문제 삼아 '국민을 존중하는 자세가 아니다'라는 식의 '품격론'을 제기하는 것과 극우 사이트 등에서 성희롱적인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아직도 한국 사회의 패션 선진국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나온 조응천 의원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패셔너블한 스타일 비난은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옷은 대칭적인 문화다. 때문에 양쪽 팔이 다 있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양 날개가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패션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패셔너블에 이념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에 다름 아니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패션은 경쟁력이다. 특히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국정을 이끌 장관 후보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들도 국민에게 잘 보여야 한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몸가짐, 말솜씨, 글씨, 판단력 등 네 가지를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중 몸가짐에 해당하는 것이 패션이다. 결국 첫인상은 패션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는 단정한 옷차림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옷은 그 사람의 얼굴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는 입후보자의 패션 역시도 그 연장선이다.


따라서 패셔너블한 정치인들은 장려의 대상이지 혐오나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정치인의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정치적인 이견(?) 때문에 비난하는 것은 트집으로 보일 뿐 온당치 못한 처사로 보인다. 혹시 ‘패셔너블=사치’로 인식하는 구시대적 '꼰대' 마인드라면 이번에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패셔너블하다’는 의미는 옷을 잘 입는다는 의미를 넘어 자신만의 스타일, 즉 개성이 있다는 뜻이다. 많은 대중이 보는 옷의 스타일과 색깔은 물론, 스카프와 넥타이, 액세서리에도 메시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와 MZ세대가 주도하는 ‘개성시대’를 사는 지금 촌스러운 꼴불견 스타일을 입은 정치인에게 유권자들은 절대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번 지방 선거에 나서는 선출직 공무원들이 더 이상 패셔너블한 옷차림 때문에 죄송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국회의원 눈치 보지 않고,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패셔너블한 스타일로 당선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인종, 민족, 생활양식, 국적, 성별, 언어, 종교, 사상에 대한 차별없이 누구나 개성있는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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