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1 정인기 기자, 권민 객원 에디터 unitasbrand@gmail.com
저번 글에 예시로 들었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말한 내용을 브랜드 주문으로 바꾸어 보았다.
“지금 나한테 이 브랜드는 수백 수천 명의 다른 브랜드와 별다를 것 없는 한 상품일 뿐이야.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은 거야. 그리고 네 입장에선, 너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지. 너에게 있어 나도 수백 수천 명의 소비자들과 별다를 것 없는 한 명의 고객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고….”
소비자(앞으로 사용자라고 말하겠다)를 어떻게 길들일까?
하나의 상품은 그저 소비되지만, 브랜드는 개별 상품을 떠나 총체적인 체험으로서 브랜드와 소비자가 서로가 서로에게 길든다. 특정 브랜드에 길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개, 고양이, 설치류(쥐), 곤충류를 반려동물이라 부르며 자기 침대에서 기르는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즉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공감 없는 이해일 뿐이다.
우리는 브랜드에 길들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커피를 들고 길거리를 다니면서 마셨을까? 언제부터 우리가 스마트폰을 인공심장기처럼 가슴에 품고 다녔을까? 언제부터 우리가 천만 원이 넘는 핸드백에 수십만 원이나 되는 화장품을 넣고 다녔을까?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우리의 삶은 브랜드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렇게 브랜드에 길들고 있다.
다시 한번 당신의 책상 위나 혹은 창문 밖의 거리를 살펴보자. 모든 상품에는 상표가 있다. 상표가 없는 상품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상품으로만 거래되는 것이 있다면 길거리에서 파는 반찬과 나물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1차 생산물도 요즘은 모두 상호가 있는 가게에서 판매된다. 별로 놀라운 사실이라 생각되지 않겠지만, 이 세상 모든 제품은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것에 누군가가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구 혹은 소비품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지식은 무엇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지식보다 더 중요한 지식은 무엇일까?
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는 그 지식의 중심에 있다. 우리는 기업에서 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법인명일 뿐, 실제로는 브랜드의 중심에서 일한다. 브랜드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시장이며, 그 시장의 구조에 의해 사회가 형성된다. 그뿐만 아니라 브랜드는 상품 가치, 사용 가치, 상징 가치, 소장 가치 등 수많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상품 이상의 상품이 되어 문화를 만들어 간다.
이처럼 브랜드는 상품이 아닌 문화가 되어 우리의 호흡이 되어 가고 있다. 소비가 문화가 되어 버리는 순간 우리는 소비의 대상인 브랜드를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의 친구 혹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바로 이렇게 친구가 되는 것이다. 결국 브랜드의 영혼은 친구의 영혼이다. 브랜드를 사는 사람이 사용자와 소비자가 아닌 반려자, 동반자 그리고 협력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혹 이런 생각이 너무나 급진적이며 과장된 생각일까?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보겠다. 나에게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단어는 ‘쓰고’, ‘덜 쓰고’, 또는 ‘달달하다’ 뿐이다. 그런데 내 친구 중에 소믈리에 직업을 가진 친구가 알려주는 와인의 맛은 너무나 다양하다. 무겁고, 섬세하고, 가볍고, 진하며, 유혹적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와인 맛이 냉정하고 수줍으며 화려하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와인을 느끼는 감각도 눈으로 마시고, 코로 마시고, 혀의 여섯 군데를 적시면서 마시고 나중에는 목으로 느낀다고 한다. 그는 와인은 신의 음료이기 때문에 맛에서 영적인 깊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두고, 일부러 의식까지 하며 와인을 맛보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와인은 떨떠름한 맛일 뿐이다.\
바리스타 친구는 더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에게 드립 커피를 만들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이렇게 뜨거운 물을 부을 때 커피가 파이처럼 불룩 올라오잖아. 이것이 바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야.”
정말로 그는 커피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믿는 것일까? 하지만 친구의 눈빛을 본다면 정말로 믿는 것 같다.
소믈리에와 바리스타의 주장이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일단 그들의 말을 믿고 시장을 바라본다면 브랜드의 시장을 볼 수 있다. 현재 수많은 커피숍들이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곳곳에서 와인이 팔리고 있다. 10년 전에는 이런 모습이 존재했을까? 커피는 일명 ‘다방커피’를 기반으로 가장 고가의 커피는 헤즐넛 커피 정도였다. 간혹 특이한 커피가 메뉴판에 몇 개 있었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와인은 어떤가?
과거에는 수입 제한 항목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동네마다 있는 마트 진열대에서는절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브랜드들이 마트에 입점되어 있으며, 그 브랜드 수만큼이나 잡지, 출판, 방송 등 너무나 많은 영역에서 소개되고 있다. 비록 내가 와인과 커피에 관심이 없어도 세상은 이렇게 커피 브랜드와 와인 브랜드의 세상으로 점점 충만해지고 있다.
예를들어 애플이라는 브랜드의 성장기를 우리는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애플 브랜드의 라이프사이클과 확장모델을 보게 됐다. 만약 애플과 비슷한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가 향후 100개 등장한다면 그야말로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할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에 관한 지식은 시장뿐만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지식이다.
명화를 감상할 때 단 5분이라도 큐레이터의 소개를 듣고 볼 때와 듣지 않고 볼 때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처럼, 브랜드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의 변화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왜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브랜드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믈리에 친구에게 한참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나는 몇 년도산 와인이 가장 맛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와인은 오래 되었다고 맛있는 것이 아니고, 또 몇 년산 와인이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니야.
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람이나 오랫동안 사귈 사람과 먹을 때 가장 맛있지!”
이 친구도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고개를 끄떡이면서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말을 이렇게 했다.
“이제 조금 이해할 것 같아.”
이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와인과 커피의 무거운 맛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바리스타와 소믈리에 친구에게 [브랜드 관계]를 말하면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브랜드도 라이프 사이클이 있어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죽는다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브랜드는 커피나 와인처럼 입으로 들어가서 소변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영감과 혁신을 주며 궁극적으로 브랜드와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이해 못 한다.
다시 한번 ‘관계’에 대해서 정의해보자.
《관계》의 저자 탐 마샬은 인간 간의 관계를 세우는데(하나가 되려는 의지로) 사랑, 신뢰, 존중 그리고 이해의 네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관계를 가장 오래가게 하고, 신뢰는 가장 깨어지기 쉬우며, 존중은 가장 소홀히 취급되기 쉽고, 이해는 가장 오래 걸린다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가 브랜드를 만든다면, 그 브랜드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 사람들은 독자의 브랜드를 통해 사랑, 신뢰, 존중과 이해관계를 경험하게 될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독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야 할까?
관계를 통한 친밀한 경험은 1:1 관계일수록 더 깊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진다. 따라서 브랜드 설계자는 소비자와 타깃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개념으로 대하는 태도를 버리고 인격적으로 사용자를 대해야 한다. 브랜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
지금까지 했던 말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번에는 나이키 웹 사이트를 살펴보자. 나이키 상품을 파는 웹사이트가 아니라 나이키의 ‘목적’을 설명하는 웹사이트다. https://purpose.nike.com
이곳에 가면 이 문장을 볼 수 있다.
Nike exists to bring inspiration and innovation to every athlete* in the world. Our Purpose is to move the world forward through the power of sport ? breaking barriers and building community to change the game for all. *If you have a body, you are an athlete.
...
Nike는 전 세계 모든 운동선수*에게 영감과 혁신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Nike 창립자 Bill Bowerman이 어록이 적혀있다.
If you have a body, you are an athlete 몸이 있으면 운동선수다.
브랜드 관계를 갖기 위한 첫 번째 그리고 궁극의 자세는 우리가 소비자라고 부르는 사람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그리고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 달렸다. 나이키는 몸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운동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이키는 고객을 소비자가 아닌 운동선수로서 대했다. 나이키는 사용자를 운동선수로서 대했기 때문에 고객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나이키는 생산자가 아니라 코치로서, 감독으로서, 동료로서 그리고 팬으로 고객을 운동선수처럼 대하고 있다. 그렇게 믿고 있다.
다시 한번 나이키 [목적 사이트]를 보면서 탐 마샬이 말한 관계의 [사랑, 신뢰, 존중 그리고 이해]가 콘텐츠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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