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미래 14 I 브랜드는 관계다

2021-09-15 정인기 기자, 권민 객원 에디터 unitasbrand@gmail.com

할리 데이비슨의 웹사이트에 이런 카피가 있었다.

At Harley Davidson, the purchase of motorcycle is the beginning of the relationship, not the end.

할리 데이비슨을 구매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할리 데이비슨에서는 상품을 구매한 사람을 소비자(Consumer)라고 부르지 않는다. 할리 소유자/주인(HARLEY OWNERS)라고 한다. 할리 주인과 할리 소비자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브랜드는 생산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할리 주인들이 만드는 브랜드와 할리 소비자들이 만드는 브랜드 차이다. 상품을 사는 사람을 ‘소비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상품을 ‘소비’만 할까? 상품은 소비재(消費財)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품, 그러니깐 어떤 브랜드는 ‘소비’가 아닌 ‘관계’를 위한 것도 있다. ‘룰루레몬’의 경우 고객을 게스트 Guest라고 하고 직원을 에듀케이터Educator라고 부른다. 게스트의 의미는 소비자가 아니라 집에 초대한 손님, 호텔에 돈을 지불하고 머무르는 사람이다.

‘룰루레몬’ 집에 방문한 게스트를 대하는 직원은 판매사원이 아니라 에듀케이터(교육자)이다. 할리 오너HARLEY OWNERS라는 작위(?)수여를 받은 이들은 할리 소비자와 달리 ‘할리 데이비슨’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야말로 소비 만족이 아니라 주인 정신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판매사원이 아닌 에듀케이터가 된 매장직원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들은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요가 선생님이 된 것이다. 이들은 상품을 파는 것으로 자기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가 스승’으로 요가 수련장(매장)에 들른 게스트에게 요가의 도를 소개한다. 그리고 룰루레몬 옷은 태권도 도복과 띠처럼 에듀케이터의 지도하에 받게 된다.

어떤 장인은 상품에 혼을 담아 그것을 ‘작품’으로 만든다고 한다. 상품에 혼이 담기면 작품이 된다는 것은 분명 은유적인 표현인데 왜 공감이 되고 믿어지는 걸까? 놀랍게도 탁월한 상품에서는 장인의 혼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브랜드에 관해 극단적인 비유를 할 때면 서슴없이 ‘브랜드의 영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말은 정말로 상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니다. 마치 자연에 신이 있다고 믿는 범신론(汎神論)의 이단격인 ‘상신론(商神論: 상품에 신이 있다)’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소유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가지거나 혹은 애정 관계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할리 데이비슨’과 ‘룰루레몬’은 이것을 알고 있다.

상신론 현상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에 죽은 미라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도구(지금은 브랜드지만)에 대해서 이상하리만큼 집착한다. 수천 년 전에 죽었던 미라의 주변에는 망자가 사용했던 도구들이 함께 있다. 그렇게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유언인지 아니면 예식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미이라와 함께 그것들이 묻혔다는 점이다. 도구가 귀하던 원시 고대 사회에서 왜 그 귀한 도구를 죽은 자와 함께 묻어 주었을까? 이런 풍속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민족들에게 똑같이 존재하던 것일까? 아마도 망자는 자신이 생전에 사용하던 도구를 가지고 또 다른 세계로 가고자 했던 것 같다. 이집트의 파라오와 중국의 진시황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옛날에는 인간은 죽으면 다른 세계로 간다고 믿었다. 아마도 이러한 도구를 함께 묻었다는 것은 다른 세계에 가서도 자신이 살아서 쓰던 도구를 가지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도구도 저세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은 도구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물건은 ‘소비’가 아니라 ‘의미’의 대상이다.

◇ 브랜드 영성 = 인간이 상품에 감성과 관계를 결합하는 것
오늘날 브랜드라고 불리는 도구에 대해 사람이 특별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먼저 구글에 들어가 ‘컨버스(Converse)’라는 브랜드를 입력하고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사진들이 등장할 것이다. 검색어를 converse와 my converse를 넣고 이미지 검색을 하면 완전히 다른 화면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더 명확히 알고 싶다면 나이키, 푸마 그리고 아디다스를 똑같은 검색어를 입력해 이미지를 보면 이 현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또 플리커(Flicker)에 들어가 컨버스의 사진을 검색해보면 컨버스가 어떤 영혼을 가졌는지 볼 수 있다. 컨버스의 경우, 어떤 사이트를 통해 검색하든 대부분 동일한 이미지가 검색되는데 이를 한 단어로 표현해보면 바로 ‘LOVE’다. 컨버스는 농구화다. 그런데 왜 ‘사랑’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졌을까? 나이키처럼 ‘Just do it’과 같은 캠페인을 하지 않는데도 전 세계 사람들은 왜 컨버스를 사랑의 미디어로 생각할까? 바로 여기에 영적인 부분이 있다. 브랜드가 소비가 아니라 관계의 대상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자동차와 가족’이라는 검색어로 구글에 접속해 이미지를 찾아보면 더 재미있는 사진이 나온다. 자동차 옆에서 가족들이 일렬로 차렷 자세로 찍은 사진들이다. 최초의 자동차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자동차까지 전 세계 사람들은 자동차 앞에서 식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예식을 한다. 냉장고, 오디오, TV 앞에서 가족들이 모여 사진을 찍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새로운 자동차가 식구가 되었다고 가족이 모두 나가 환영을 하는 것일까?

브랜드의 영성은 마치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영을 불어넣은 것처럼, 인간이 상품에 자신의 감성과 관계를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이 ‘용도와 기능’을 떠나 ‘의미와 가치’가 되어 가는 것이 진정한 브랜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업계에서는 ‘강력한 브랜드’, 그리고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을 ‘마니아’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그런 현상과 결과가 아니다. 바로 인간이 왜 자신의 도구에 대해 이토록 애착심을 가질까 하는 이유다. 그 이유에 대해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지금 나한테 너는 수백 수천 명의 다른 아이들과 별다를 것 없는 한 아이일 뿐이야.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은 거야. 그리고 네 입장에선, 너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지. 너에게 있어 나도 수백 수천 마리의 다른 여우들과 별다를 것 없는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거고….”"

여우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어린 왕자는 친구 이전에 먼저 관계 맺기인 ‘길들여 지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왕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조금 이해할 것 같아.”

시장에서도 어린 왕자와 여우의 관계처럼 ‘소비되는 브랜드’와 달리 ‘길들여지는 브랜드’가 있다. 그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비자와 브랜드가 아니라 소비자, 생산자 그리고 그 중간에 브랜드가 끼어 있는 기묘한 삼각관계다. 이 셋은 서로서로 길들이면서 브랜딩되고 있다. 최근에 애플 마니아, 할리 데이비슨 마니아등 수많은 브랜드의 마니아들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우 입장에서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브랜드 입문자들은 이제 더 이상 특정 브랜드들의 마니아를 신기하게 보지 말고 브랜드와 소비자 간에 ‘길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친구로서 길들여지는 것을 원한다. 따라서 브랜드 경영자들은 이제 손님, 고객 그리고 소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친구’라는 관점으로 그들을 보아야 한다.

영화 <애니홀(annie hall)>에서 감독이자 주연배우였던 우디 앨런은 어린왕자의 여우와 비슷한 관점으로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관계란 상어 같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거든.”

제대로 된 브랜드를 관리하는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말인 줄 안다. 소비자와 브랜드 간에 소통이 없으면 브랜드는 그저 일용품으로 전락하여 사라지는 것이 바로 최근의 시장 상황이다.

할리 데이비슨의 사이트에 이런 카피가 있다.
Harley riders are Harley riders, there's always that commonality.
- Gary Dodd Salt Lake, UT

‘할리 라이더는 할리 라이더다, 공통점이 있다.’ 아마 할리 데이비슨을 구경만 했다면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브랜드를 공부한다면 귀찮아도 할리 데이비슨 오너에게 그들의 공통점을 확인해보자. 바로 그 공통점이 브랜드를 소비시키지 않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브랜드 핵이다. 공통점에서 브랜드 관계가 시작되고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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