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예측과 자율주행차

2021-08-18 김해근 브래키츠 대표  hg.kim@brackets.solutions

<김해근의 패션기업 디지털 성장전략 7>
즉각적인 효과보다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



일론머스크가 완전자율주행차에 대해 한발 물러섰다. 이미 2015년에 “2~3년 내 어디든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차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한 이래 완전자율주행(Full Self-Driving)차 출시를 여러 차례 공언해왔지만 번번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FSD 9 베타 버전을 8월 중 출시할 계획이었으나 무산되자 “일반적인 의미의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FSD 베타 버전도 단어의 의미와는 달리 주행보조시스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세간의 평가다.

패션업계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AI 라는 화두가 핫해진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전반적인 이해 수준은 단선적이다. AI가 화제에 오르면 대부분 “다음 시즌 트렌드 예측이 가능한가요?”라는 질문부터 나온다.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아니고 다음 시즌 트렌드 예측을 할 수 없으면 AI를 활용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AI 활용=트렌드 예측?

그런데 이제 어떡하나. 현실 세계 AI 적용에 있어 자율주행차 만큼 많은 돈을 쏟아 부은 부문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10년 내에 완전자율주행차 현실화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그럼 ‘다음 시즌 트렌드 예측’은 언제쯤 가능해질까? 기술적 난이도로 보면 완전자율주행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는 문제다.

자율주행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해보자. 도로 상태, 주위 사물 등 다양한 대한 데이터를 시시각각 수집하고 이를 분석한 후 자동차 제어에 대한 의사결정을 자율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 수집·분석·의 사결정 각 단계별로 AI의 요소기술들이 사용된다. 그런데 자율주행을 위한 의사결정의 시간적 범위는 초단기 예측이다. 눈 앞의 차선을 따라가고 사물을 인지해 멈추는 등의 제어는 수초 이내의 예측이면 충분하다. 물론 배터리량을 감안해 주행 계획을 세우는 등의 긴 시간 예측도 하겠지만 시간범위가 긴 예측 문제는 고려하는 변수가 줄어든다. 하지만 다음 시즌 트렌드 예측은 어떤가? 예측 시간 범위가 최소 수개월이다. 게다가 시간 범위가 길어지면 고려할 변수가 더 많아진다.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에게 어떤 데이터를 입력해서 학습을 시켜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데 있다. 트렌드를 형성하는데 사회경제적 요인, 인구사회적 요인, 집단의 심리적 요인, 기후와 기상 요인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고 했을 때 각 요인을 모두 데이터화해서 AI를 학습시키는 것이 가능한 걸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완전자율주행이 예상보다 쉽지 않다는 고백을 한 일론머스크의 트위터 @Twitter


◇ AI 대박은 없다

다음 시즌 트렌드 예측의 결과물은 뭘까? 어떤 카테고리가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을 지 예상하는 것, 나아가 어떤 디자인의 스타일이 유행할지를 예측하는 것일테다. 이를 자동차 산업에 빗대어 본다면 어떤 차종이 유행할 지와 특정 차종이 유행할 것 같다면 그 차종의 디자인이나 기능이 어떠해야 하는지 예측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문의 예측을 위해 자동차 산업이 AI 기술에 큰 투자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큰 투자를 한다 해도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 AI는 패션업계에서 시기상조인가? 아니다. 장기 예측을 통해 대박을 내겠다는 한탕주의식 접근이 문제인 것이지 우리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AI기술들은 많다. 다만 그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자동차산업에 빗대어 보자면 자율주행차는 AI를 활용한 기능을 자동차라는 상품에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패션제품에 반도체칩을 넣는 식의 접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제품의 혁신이 아니라면 결국 그 제품을 만들고 파는 비즈니스 모델과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관건 아니겠나.

◇ 예측이 아니라 자동화

우리는 자율주행차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 의사결정에 집중하지만 의사결정을 위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도 AI기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기술이 주위 사물을 인지할 수 있도록 눈 역할을 하는 컴퓨터 비전 기술이다. 비슷한 기술이 패션에서는 속성 태깅 업무에 활용되고 있다. 제품의 속성이 잘 관리되어야 품질 좋은 검색이 가능하고 누적된 데이터에 대한 분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사람이 일일이 제품의 속성을 입력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AI 기술을 활용하면 이를 자동화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화마케팅은 AI를 분석에 활용한 사례이다. 각 개인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빠른 속도로 분석해내고 각 개인에 최적화된 쿠폰을 제시하거나 추천을 하는 식이다.

대박을 낼 만한 기술들은 아니지만 이런 기술들이 적재적소에 적용된다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례를 종합해 보면 적용 부문이 예측이라기 보다는 자동화에 가깝다. 태깅이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이 하면 할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개인화마케팅은 기존의 컴퓨팅 파워나 기술로도 가능은 했겠지만 대규모 트랜잭션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 쪽이든 대용량의 업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예측보다는 자동화에 가깝다.

다시 말해 AI라는 기술이 우리가 생각해내지 못하는 대단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나 기존 기술이 하지 못했던 대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고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일에는 응용이 가능하다. 개별적인 업무 적용을 보자면 그 성과는 미미할 수 있겠으나 적용범위가 넓어져 업무 전반에 효율성이 높아진다면 혁신의 임계점을 넘어 폭발적인 성과를 내게 될 것이다. 나아가 조직의 디지털 포텐셜이 점점 높아지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도 용이해질 것이다.

완전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해 일론 머스크가 한발 물러섰다고 해서, 혹은 전문가들이 수십년 걸릴 거라는 전망을 내놓는다고 해서 그 방향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 비전이 멋있기 때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차근차근 나아가며 성과를 쌓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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