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1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해가 지면 서늘한 바람이 분다. 끝이 없이 이어지던 폭염도 안녕을 고한다. 남성들의 옷장에 다시 외투와 셔츠를 준비할 계절이 온다.
올 가을 남성복 트렌드를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2018년도 가을/겨울 헤라서울패션위크만 보더라도 하나의 트렌드로 합치기에는 너무도 각자의 색이 뚜렷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계절의 남성복을 이야기한다. 패션위크에서 꾸준히 컬렉션을 선보이는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 ‘비욘드클로젯’과 ‘문수권’은 물론,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인큐베이터와 다름없는 제너레이션 넥스트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바농 스튜디오’와 ‘쏜가먼츠’도 주목할 만하다.
◇ 스트리트와 클래식, 그 사이의 남성복
항상 서울의 남성복 디자이너들에게는 다양성이 존재했다. 과거의 ‘클래식’ 복식을 복고풍 유니폼과 스포츠웨어로 재해석하고, 청년문화와 스트리트 웨어를 90년대풍 ‘뉴 키즈 룩’으로 풀어내며, 사람들이 말하는 유행과 조금 발을 뗀 채로 흥미로운 테일러링을 재해석한 디자이너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이엔드 스트리트 웨어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세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시 남성복의 기본적인 아이템들 ? 반듯한 셔츠와 스웨트 셔츠, 트렌치코트와 테일러링 재킷 ? 이 서서히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트리트 웨어와 고전적인 남성복 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교차점이 이번 시즌의 가장 큰 특징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비욘드클로젯 Beyond Closet by Ko Taeyong
2008년 설립한 ‘비욘드클로젯’이 벌써 11주년을 맞이한다. ‘비욘드클로젯’은 시대에 맞춰 조금씩 변화하며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자유분방한 나쁜 남자 같은 옷을 짓고, 스트리트 웨어와 협업한 컬렉션도 선보였다. 여전히 ‘비욘드클로젯’이 사랑받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 모든 행위를 받아들이고 재해석한 유머와 재치가 옷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울패션위크를 이끌어 가는 남성복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서 피날레 컬렉션에 걸맞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8년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비욘드클로젯’은 남성들의 유니폼을 재해석했다. 하지만 오래된 군복과 엄격한 남성 복식을 복각하는 컬렉션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비욘드클로젯’의 방식이 아니다. 눈을 빼고 얼굴을 감싼 전투 모자, 거친 워크웨어에서 영감 얻은 파스텔톤 셔츠가 화려한 파티에 어울리는 보랏빛 턱시도와 같은 무대에 섰다.
아웃도어와 익스트림 스포츠 영향이 느껴지는 아노락 점퍼, 그리고 포근한 아가일 패턴 카디건과 로브는 각각의 복식이 지닌 시간과 장소를 조금씩 비틀었다. 회색과 와인색을 베이지와 함께 넣은 줄무늬 패딩 코트는 화려한 색의 옷깃이 이어진 트렌치코트와 만나 다소 복고적인 분위기도 연출했다.
고태용은 언제나 독자적이며 동시대적인 클래식을 제안하는 데 힘을 쏟았다. 결국, ‘뷰티풀 비 피플; 유니폼 Beautiful B People; Uniform’이라는 부제는 전형적인 유니폼을 전위적으로 바꾸는 시도는 아니다. 대신 오랜 세월 사람들이 받아들인 고유한 느낌과 특징을 지닌 채로, 격식과 규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변주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재미없는 인생에 던지는 세련된 도발입니다.” 거리에서 그 옷들을 걸치고 작은 일탈을 꿈꾸는 남성들에 의한, 남성들을 위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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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권 Munsoo Kwon by Kwon Munsoo
2018년도 가을/겨울 컬렉션의 시작은 ‘문수권’ 특유의 테일러링 수트를 덮은 아웃도어 스타일 마운틴 재킷이었다. 더블 형태의 빅 숄더 테일러드 재킷과 파란 후드 파카의 조합, 옷깃을 평평하고 딱딱하게 만든 커다란 코트와 연보라색 트레이닝 수트가 ‘문수권 세컨드’에서 빌린 화려한 스웨트 셔츠와 웨이스트 백, 그리고 좀 더 활동적인 짧은 패딩 점퍼로 만나 조화를 이뤘다.
디자이너가 가을과 겨울의 색상으로 잡은 보라색과 연분홍색 변주들은 특히 흥미로웠다. 몇몇 오버사이즈 외투 중 특히 핀스트라이프 오버사이즈 슈트는 마치 운동복을 비슷한 감각으로, 격식 차리지 않은 자리에서도 편한 스타일링으로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나풀거리는 와이드 팬츠들이 서정적인 느낌이었지만, 지금껏 단정해 보였던 문수권 소년들과 달리 허리춤에 매듭지은 붉은 새틴 셔츠를 풀어헤치고 가슴을 드러내며 관능적인 남성미를 뽐냈다. 쇼 끄트머리, ‘문수권’의 시그니처 아이템 ‘롱 카디건’과 함께한 붉은 타탄체크 트렌치코트는 묘하게 동양 혹은 서울의 옷처럼 느껴졌다.
이번 컬렉션은 전반적으로 ‘문수권’의 강점인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의 만남이었으나, 그 활동성이 진중한 남성복을 잠식하지 않았다. 새로 나온 아이템들은 지금껏 이 브랜드를 기대한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주었다. 메인 레이블보다 실용적인 데일리 웨어를 다루는 세컨드 레이블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일까. 유행과 흐름, 그리고 상업성과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다시 한걸음 전진한 남성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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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농 스튜디오 Vanon Studio by Yang Yeonghwan (GN)
‘바농스튜디오’의 컬렉션에는 표면 아래 숨은 이야기가 있다. 단지 자신을 돋보이고자, 유행에 편승하여 사라지는 옷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 안에는 지역 문화를 자각하는 디자이너가 시도하는 과감무쌍함과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옷에 쓰이지 않는 산업용 소재와 스트랩을 본디지와 밀리터리 스타일로 풀어낸 PVC비닐 소재 바지, 레인코트와 아노락을 결합하고 광택 나는 표면을 더한 여성용 재킷은 동시대적이면서 절대다수와는 다른 길이다.
스웨트 셔츠 아래 셔츠를 해체한 치마를 걸치고, 성별 구분이 모호한 긴 상의와 셔츠 드레스를 입은 남성 모델이 무대 위를 활보하는 것 또한 디자이너가 바라본 문화를 정의하는 자의적 결과다. 겉에 보이는 요즘 청년문화의 소수 취향 ‘이미지’가 쇼 전반을 지배해도, 사실 하나씩 옷을 뜯어보면 기성복을 짓는 브랜드의 고민도 엿보인다. 차분한 감색 레인코트는 쌀쌀한 날씨에 바로 입을 만큼 탄탄하고, 옷깃을 목까지 추켜올린 쥐색 코트는 초겨울 눈 내리는 날 입기 좋을 것이다.
바농스튜디오 컬렉션을 보며 여러 심상이 떠올랐다. 영화 ‘매트릭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을 관통한 테크노 전자음악,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섞고 다시 조합하는 믹스앤매치 문화 같은 것들 말이다. 군더더기 없이 단출한 구성이었다. 제너레이션 넥스트의 데뷔 무대로도 손색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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