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5
김묘환 CMG 대표이사
패션업계 구조조정 골든타임 ② - Designer
패션산업 구조조정의 두 번째는 현재 길을 잃어 버린 국내의 디자이너 산업을 다루고자 한다.
내셔널 브랜드 구조가 체감하는 불황의 정도에 비해 디자이너 구조의 불황은 구조조정보다는 지금까지를 다 엎어버리고 새롭게 구조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더 심각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가감 없는 역사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노라노, 최경자, 서수연, 김영애 선생들 같은 여성 선각자들에 의해 전후 1950년대를 거치며 일기 시작한 국제복장학원, 라사라양재학원, 시대복장학원 같은 취업목적의 학원 붐속에 배출된 손재주 좋은 분들에 의해 창업된 양장점 시대가 형성됐다. 이때 시작된 디자이너 산업은 1961년 5.16 군사정부가 내세운 근대화 물결바람을 타고 본격적인 서양복식의 대중화에 나서고 이후 경제개발계획의 수행에 따른 산업의 고도 성장과 맞물려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패션쇼 행사가 TV 교양프로그램으로 방영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을 받던 분야였다. 이런 현상은 몇몇 스타 디자이너들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부와 명예를 동시에 쥐면서 사회 각층을 대상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구조에 첫 번째 위기가 다가온 것은 70년대 중반 대기업이 참여하면서 폭발 시킨 여성기성복 브랜드의 대두였다. 코오롱, 제일모직 등의 대기업과 ‘논노’ ‘모라도’ ‘데코’ 등 전문 내셔널 브랜드들의 등장은 디자이너 구조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중반까지도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현상 유지가 가능했다. 그건 소비자들이 비성숙한 시장에서 디자이너 브랜드가 지닌 비정상적인 가격구조를 계층 구분의 신분증처럼 사용하고자 하는 일부 소비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이 시기 디자이너들 중 대부분이 해외 컬렉션에 나온 옷들을 그대로 복제하여 논란을 일으킨 사례들이 빈번했음에도 디자이너들은 반성은커녕 본인들만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해외 디자이너들의 개별 디자인 복제를 넘어서 시즌 컨셉을 송두리째 복제해 자신들의 창작인 것처럼 세상에 선보이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 이런 관행에 위기를 가져 온 것도 역시 정보전달 수단의 변화가 야기시킨다.
◇ 정보전달체계 발달에 순응하지 못한 디자이너 업계
1988년 서울올림픽은 우리사회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오는데 통제와 여과없이 많은 해외 문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또 한편으로는 소득의 성장과 함께 시작된 내국인들의 해외여행 기회 확대는 당시의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숨기고 싶어한 비급이 노출되는 계기가 된다.
업계 종사자들의 특권처럼 여겨진 파리, 밀라노 런던 등지의 컬렉션이 그들의 재력 있는 고객들에게 한 시즌 묵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전달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빠른 정보입수자 신분의 우월적 지위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자본을 무기로 더 빠른 정보전달 체계를 갖춘 내셔널브랜드의 성장은 가격경쟁력까지 갖추고 디자이너 브랜드를 코너로 내몬다.
80년대 후반 국내의 패션산업에 무한 애정을 느낀 몇몇 세력들(공무원, 기자, 관련협회 관계자들)에 의해 한국에도 본격적인 디자이너 컬렉션 시대를 열어보자는 논의가 진행된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SFAA라는 디자이너 단체였고 이들에 의해 서울에 정기컬렉션 시대가 1990년 11월 처음 열리기 시작한다. 이미 국내엔 1950년대 만들어진 디자이너 단체가 있었음에도 몇몇 디자이너들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통합된 모습이라기 보다는 우월적 차이를 내세우며 분파적으로 출발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SFAA가 컬렉션 시대를 열어 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시작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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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 산업 구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축은 디자이너가 아닌 시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전에 있었던 보여주기 식의 패션쇼 형태를 답습해 나간 SFAA서울컬렉션은 출발부터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지녔다. 막상 컬렉션을 지탱해야 할 바이어 축은 구성도 못한 채 보여주는 쇼케이스로 출발한 컬렉션은 비용 구조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관주도 행사에 편입되어 주도권을 잃고 표류하다가 끝내는 유명무실해 지는 일이 벌어진다.
1990년대 우리 패션업계의 인식이 컬렉션과 패션쇼케이스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엉성했다는 증거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디자이너 업계에 뿌리깊은 서열 구조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SFAA가 탄생하고 2년 뒤에 당시로는 신진인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NWS라는 단체를 구성하고 컬렉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산파역은 작년에 작고한 모델라인의 이재연 회장이었다.
이 분이 신진디자이너를 규합하여 New Wave in Seoul(NWS)을 구성할 때의 생각은 단지 두터운 디자이너 층을 확보해 시장을 확대해 보자는 뜻이었다고 생전에 여러 차례 언급하였는데, NWS의 회원들이 SFAA 어른들(?)에게 불려가 선배들에게 도전하느냐는 꾸지람을 들은 일은 그 이후 관련 업계에 코미디 같은 일로 두고두고 조롱거리처럼 남았다. 헌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NWS 회원들이 뒤에 나온 신진들에게 유사한 일을 행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행태가 디자이너 업계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원인은 도제처럼 시작된 잘못된 디자이너 업계의 출발에 있기도 하겠지만 작은 밥그릇을 놓고 다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 디자이너 선생님
디자이너들이 제일 듣고 싶어하는 호칭은 선생님일까?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는 한 디자이너가 십여년전 패션산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들의 비행기 태우기에 반짝 스타가 된 적이 있었다.
학생 신분으로 해외유수 전시회에 나가 기성 디자이너도 이룩하지 못한 실적을 거두었다고 한 매체가 다루고 그걸 또 다른 매체가 복제하고 하다 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 대형 디자이너처럼 시장의 신데렐라가 되어버린 일이 있었다. 이걸 또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이용하다 보니 이 디자이너는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패션쇼 행사장에서 자신보다 경력,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업계 관계자가 선생님이라 호칭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항의하는 일이 두고두고 업계에 화제가 되었는데 비단 이 친구만의 인식이 아니라 유독 패션 디자이너들은 선생님이란 호칭을 즐기는 것 같다. 거기다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힘든 이유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원로 디자이너들 중에 ‘내가 어떤 중진 디자이너를 가르쳤습니다’ 라고 나설 분이 있는가? 또 중진 중에 ‘어느 신진 디자이너가 내 밑에서 일을 배워 나갔습니다’ 라고 말할 분이 있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들, 딸 말고 현재 국내 어떤 디자이너도 누구를 가르쳐서 독립시켰다고 내세울 수 있는 디자이너는 없을 것이다.
수년 전 서울컬렉션에 관계하고 있을 때 서울시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적극 양성하겠다는 계획하에 많은 예산을 들여 신진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지원사업을 진행하였다. 경쟁 선발하는 원칙에 따라 2년차에 들어섰을 때 새로운 대상 디자이너를 선발하려는 시점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차년도 선발 디자이너들 중 몇 명이 후배 디자이너들을 불러 모아 선배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 당신들은 응모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반 공갈성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울시장과의 간담회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지원을 할려면 선발된 사람을 장기간에 걸쳐서 집중 지원해야지 매년 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의 제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야말로 1년에 3천여명 배출되는 후배들은 안중에도 없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으로 사회적 통념뿐 아니라 21세기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는 사고의 틀 안에서 여전히 디자이너들이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일의 반복 때문이다. 세상에 디자이너가 소유경영과 창작행위 거기다 세습까지 성공적으로 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유독 우리 나라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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