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패션업계 구조조정 골든타임!
2018-07-01 
김묘환 CMG 대표이사

얼마 전 한 패션 전시회에 들렀다.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 속에 아쉬움을 이야기하다가 패션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을 놓고 한바탕 치열한 테이블 토론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 했던 분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업계가 어렵다"는 사실 말고는 '춘추전국시대 백가쟁명'식으로 다양한 인식 차이를 보였다. 참여한 대부분이 "그래도 살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누군가는 잘하고 있을 텐데 그게 누구일까?"라는 생존가능성을 모색하는 본능적인 사고가 주류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단기적으로는 거시적 지표를 바탕으로 연초부터 올 한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해가 될 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실체적으로 한 해의 반기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축소되는 시장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실제로 2018년 여름 우리 시장의 냉혹한 현실은 전 복종에 걸쳐서 역신장이 나타나고 있다는, 누구도 두려워서 언급조차 하지 않던 일이 현재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마치 30년 전 일본이 ‘헤이세이 데프레’와 함께 맞이한 '잃어버린 20년'의 초기 모습과 흡사해 보이는 상황이다. 솔직하게 미국발 무역전쟁의 조짐이나 이에 대응하는 강대국들의 대응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차라리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전세계 모든 경제인들이 주목해 온 사실들이지만 유독 우리나라 패션시장 상황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축소로 가는 시장
다른 이유 거론할 것 없이 소비자가 이반해 버린 시장의 진부한 구조가 국내 패션시장 상황악화의 첫 번째 원인이고, 두 번째는 지금 존재하는 대부분의 패션 기업들이 아날로그 소비자를 상대로 하면서 디지털 시대를 준비 없이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분명한 원인과 드러나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다른 원인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시장이 축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까? 연 40조 혹은 확장된 개념으로 50조라는 거대 소비 시장이 형성되는 동안 국내 패션업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2000년대 들어서 15년 동안 시장 규모가 두 배로 커지는 경험을 한 국내 패션 업계는 포지션, 혹은 장르별로 생태적 지위를 누리는 시장으로 고착화 되었고 여성복과 캐주얼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 생태적 지위가 형성되어 버리는 상황임에도 살 사람은 산다는 무사안일한 태도로 2018년을 지내고 있다. 거기다 2014년 아웃도어 붐이 정점을 친 이후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의 스토리만 간직한 채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 현재 고민하는 한국 패션 기업의 자화상인 것이다.

구조조정 이야기를 하려니 갑자기 일본 패션업계의 노력이 떠오른다. 1993년 잃어버린 20년의 전조가 시작될 무렵 일본의 기존 어패럴 대기업들인 온워드 카시야마, 도쿄모드, 레나운, 산요쇼카이 등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여 년 동안 어패럴 업계에서는 두 개의 회사가 쌍두마차처럼 구조 혁신을 통해 업계를 주도해 나갔다. 하나는 샐러리 맨의 신화인 테라이 히데조우가 이끄는 월드사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국내 시장에 위협적인 존재인 패스트리테일링사의 '유니클로'가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일본 어패럴 기업 순위 5위이던 월드社는 당시 경영기획본부장이던 테라이 히데조우 현 회장이 SPA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외의 기업들은 도대체 SPA가 어떤 것인지, 외부에서 불어올 초강력 태풍이 어떤 것인지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찻잔 속 태풍처럼 월드가 추구하는 SPA에 대해 실체 파악을 하지 못하고 기존의 방식만 되풀이 하는 상황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시대를 읽지 못했던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에 팔리거나, 브랜드 홀딩 컴퍼니라는 허울 좋은 기업이 되거나, 심각하게 축소된 모습이거나, 역사 뒤로 사라져 버린 기업도 부지기수다.


과거 테라이 히데조우 회장이 밝힌 것처럼 월드가 SPA를 채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익보다 큰 재고나 기회 로스의 발생은 결국엔 기업을 망가트릴 것이라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월드는 전성기 매장의 20%를 축소하고도 영업 이익은 오히려 증가하는 실적을 보였고 패스트리테일링사는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능가하면서 일본 패션업계의 파괴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외에도 시마무라, MUJI, PAL Group, Adastria 등 많은 기업들의 구조조정 혁신 사례가 쌓여서 일본 패션 업계가 장기간 불황의 터널을 돌파하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일까?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지식경제부는 패션업계에 글로벌브랜드 육성사업이라는 초유의 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예산을 마련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글로벌 브랜드를 국가가 나서서 육성한다는 사업 자체에 부정적이었던 필자가 해당 사업의 추진기관으로 참여하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핑계 같지만 국내 패션업계에 처음으로 큰 예산이 주어진 당시로는 패션업계를 위해 잘 쓰여진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좋은 뜻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사업이 목표로 했던 2015년까지 3개 이상의 글로벌 브랜드 창출이라는 목표는 당시에도 웃음거리였지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사업추진 과정의 잘잘못을 떠나 패션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고 있는 것이 솔직한 우리 패션업계의 민낯이라 할 것이다.


10년전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당시도 이미 국내 패션 업계의 로컬 마켓은 포화상태로 성장하지 않을 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리고 고속 성장하는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남의 떡임에도 입맛을 다시기에 충분하였기에 너도나도 글로벌을 외쳤고, 당시 글로벌은 ‘떠오르는 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화두였기에 우리 기업들에겐 만만한 도전 쯤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당시에도 분명히 국내 패션업계의 글로벌 도전과제는 BPR이라는 기업 체질의 혁신을 통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지만 당시 참여기업이나 주관기관이나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보여주기(SHOWING)에 치우쳐서 PR 활동에 모든 역량과 예산을 쏟아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당시 글로벌로 나가기 위한 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혁신을 거론했었는데, 지금 10년 만에 다시 이야기하는 국내 패션업계의 구조조정은 기업구조의 혁신 수준이 아니라 완전한 의미의 탈각과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 될 것 같다.


우리가 이야기 하는 구조조정은 흔히 Process의 혁신을 통한 BPR이라는 'Re-Engineering'과 원론적인 부분에서부터 사업 단위와 구조를 재조정하는 'Re-Structuring', 혹은 'Re-Organization'의 두 가지 방법이 주로 사용되는데, 지금 국내 패션업계엔 Re-Structuring 방식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 같다.


그 이유는 시장이 포화되었고, 축소가 진행되고 있으며 경영의 시계가 타 산업에 비해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관계자는 당장 자신들 조직원의 근무연차와 급여누적 그래프를 뽑아 보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안정적인 발전형 그래프가 아니고 무게 중심이 상부로 쏠린 전형적인 쇠퇴형 구조를 보여 주고 있을 것이 틀림 없기 때문이다.


10여 년전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한 BPR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아직도 생존해 있는 기업들의 모습이 30년전 일본의 어패럴 대기업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구조조정은 어디서부터
BPR 방식의 구조조정을 쉽게 설명하는 단어로 'Zero Based Thinking'이 있다. 이는 현재 사업 구조에 구동되고 있는 모든 프로세스를 전혀 고려치 않고 무에서부터 창업하는 것처럼 '비즈니스 모델과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에 담긴 속뜻은 창업에서 성공하는 확률만큼이나 BPR은 실패 가능성이 높은 접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전 국내 업계에 BPR을 요구한 것은 당시 이미 글로벌 시장 말고는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보이질 않았고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방법은 혁신적인 프로세스 개선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이클 해머가 30여 년전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기업의 경영혁신도구로서 BPR을 주창할 때 당시에 횡행하던 다운사이징 방식이 아니라 "혁신을 통한 재설계가 기업의 핵심성과 목표(일반적인 제조업에 적용할 수 있는 Quality, Cost, Delivery, Service)를 달성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 패션업계는 이미 핵심성과에 있어서 글로벌 기업과 혹은 주변 후발국과의 경쟁에서도 뒤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BPR로 대응하기엔 늦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다운사이징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Re-Structuring 적 접근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여기에도 정밀한 학습과 업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1993년 해머와 챔피가 공저로 BPR을 다룬 ‘리엔지니어링 기업혁명(Reengineering the Corpora tion: A Manifesto for Business Revolution)’ 를 썼을 때 몇 가지 원칙, 정확하게는 7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그 중 자원과 정보처리의 중앙집중, 의사 결정의 포인트를 업무수행지점에서 해야 된다는 내용 등은 지금도 유효하게 대부분의 산업계에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Re-Structuring이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다운사이징에 지나지 않다고 폄하한 것과는 달리 미국의 사례를 보면 실제 노동환경을 악화시키고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데에는, Re-Engineering 방식이 훨씬 더 나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언급을 하는 이유는 지금 현재의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산업경제 정책에서 패션 업계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하면 조선산업이나 자동차처럼 생존목적의 다운사이징 밖에 생각이 못 미치는 사람들로 인해 업계를 한계산업으로 치부하여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일본 월드사의 OZOC 홈페이지 초기화면. 입점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입점사를 노출하고 있다.



일본의 구조조정에서 배울 것
일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일본 어패럴 산업계에 도매업으로는 우리가 모두 공멸하니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등장한 테라이 히데조우가 만 20살의 약관에 입사해서 40대에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기까지는 일본 어패럴 산업계에 혁신의 궤적이라할 만큼 드라마틱한 과정이었다.


단지 개인의 역량으로 자리까지 올라간 것만이 아니라 업계와 공동으로 고민하고 동지를 규합해서 역경을 헤쳐나간 스토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5년 테라이 사장은 18년간의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외부에서 영입한 CEO에게 전권을 내어준다. 이 전문 CEO가 바로 월드의 다운사이징을 통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행한 카미야마 켄지 사장이다.


켄지 사장은 일본의 오래된 의류 수퍼체인인 나가사키야의 사장과 일본의 음식점 정보를 알려주는 GRUNAVI란 IT기업의 COO를 역임하고 2013년 월드사에 스카우트 되어 월드 역사상 처음으로 비 창업멤버가 대표가 되는 신화를 기록한다. 이 켄지 사장은 전임인 테라이 회장의 업적인 SC형 SPA 브랜드 모델이 '유니클로' 등의 가격 파괴 경쟁과 엔화 약세, 소비세 증세 등의 영향으로 실적 부진이 수년 간 지속되자 구원 투수로 투입되어 단기간에 V-Curve를 그리며 그룹의 영향력을 회복시켰다.


켄지 사장의 성공 사례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효율 매장의 조정을 통한 다운사이징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IT 컨설팅을 통한 적극적인 디지털 시장 대응과 라이프스타일 시대의 확산 시류에 맞추어 자사 포토폴리오에 부족한 비즈니스 모델의 외부 충전 등의 일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OZOC 홈페이지 초기화면에서 보이는 것처럼 월드의 대부분 브랜드는 디지털 플랫폼과의 결합으로 재무장을 했다. 여기서 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20년 간 월드를 이끌어 온 테라이 히데조우 회장의 결심이다. 본인의 성공 방정식을 버리고 과감하게 일선후퇴를 결정, 새로운 인물을 외부에서 영입하여 주효한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은 켄지 사장의 능력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테라이 히데조우 회장이 이처럼 새 인물에게 경영을 맡기고 한 행보는 더욱 놀랍다. 그 해에 시마무라의 사외이사로 취임한 것이다. 우리처럼 사외이사가 거수기 노릇을 하는 풍토가 아니라 일본의 사외이사는 내부 경영 시스템을 제어하고 직접 참여하는 자리이기에 더 놀랍기만 하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일본 어패럴 산업계를 리드하는 경영자들의 열린 경영방식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17년 2월 도쿄 유락초의 MUJI Marche 에 몰린 관심


지난 3월 일본 MUJI가 최대 규모의 근린형 라이프스타일 스토어를 오사카 외곽의 사카이시 이온 몰에 오픈한다는 소식에 다녀왔다. 당시 사카이 MUJI에서 받은 충격은 그야말로 경악이었다.


지난 2017년 2월 도쿄 출장 길에 우연하게 들렸던 기존의 유락초 마루이 근처 MUJI매장이 팝업처럼 MUJI Marche를 열고 있는 것을 단순한 하루 행사로 보기엔 상품의 구성이나 소비자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또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지가 궁금했는데 불과 1년 만에 사카이 시에 펼친 MUJI는 입을 다물게 했던 충격이 몇 달 지난 지금도 가시질 않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단순한 매장 구성에 놀란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회사 체계가 부러워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 같다. MUJI는 경기불황과 이에 따르는 재고의 증가 등으로 한참 어려움을 겪고 있던 2002년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당시 시마무라 재생의 주역인 후지와라 히데지로 사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경쟁관계에 있을 지 모르는 후지와라 사장을 영입하여 MUJI가 한 일은 이렇다. 당시 MUJI가 안고 있던 문제인 제품 품질의 안정과 물류의 개선 그리고 최첨단 정보시스템의 도입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재진입과 V-Curve를 그린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 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다.


또 후지와라 사장을 초빙하여 한 수 배운 MUJI의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마쓰이 타다미츠 사장은 현재 아다스트리아 홀딩스의 사외이사로 자신의 역량을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헤쳐나간 이면에는 업계 리더들의 공유와 협력 그리고 지속적인 혁신이 바탕이 됐다.


지금 다운사이징을 고민하는 우리 업계에 필요한 일들 혹은 벌려야 할 일들을 이웃 일본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기업 개별적으로 사정은 다르겠지만 지금 무언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 그건 혁신적인 구조조정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자. 여러분이 창업할 당시 혹은  처음 이 업계에 들어 온 당시의 비용 구조 중에서 항목별 비중을……. 이 자료만 가지고도 여러분은 구조조정을 왜 해야 하는지 바로 이해 했으리라 믿는다.


다음 호엔 패션 기업의 구조조정 보다 더욱 서둘러야 할 디자이너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조정을 다루어 보자.


사카이 시 이온 몰의 MUJI Life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