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분담인가? 책임전가인가?”

2006-03-17 정인기 기자 ingi@fi.co.kr

눈앞의 이익보다 ‘윈-윈 관계’ 우선

경기악화와 판매부진으로 회사의 생존을 위협받게 되자 ‘책임전가’식 관행이 성행하고 있다. 판매부진에 따른 재고를 줄이기 위해 클레임을 치거나 브랜드 전개중단을 들어 지급해야 할 결제대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부도난 서전어패럴은 국내 최대 임가공업체. 서전은 부도 당시 북한에서 작업중인 물량만 35만 장에 달했지만 갑작스럽게 부도 처리됨에 따라 국내 상당수 업체들이 물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캐주얼업체는 서전에만 9만 장이 물려 있어 봄 물량공급에 상당한 차질을 겪고 있다. 특히 서전 부도로 이 회사에 원·부자재를 납품한 업체의 피해액만 80억원 이상으로 추산돼 원·부자재업체의 연쇄부도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전에 원단을 납품했던 업체 관계자는, “생산을 마친 봄 물량이라도 납품하고 정리에 들어갔다면 결제금액 가운데 일부라도 지급했을 텐데, 그나마 어렵게 됐다. 패션업체들도 판매가 임박한 시기에 상품을 공급받지 못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서전어패럴과 거래했던 모 캐주얼업체는 지난해 11월 말 10억원어치의 겨울 점퍼를 클레임쳤다. 납기지연이 직접적인 명분이었지만 겨울상품 판매부진도 무시할 수 없었던 클레임 사유. 최근 판매부진에 따른 마켓 클레임이 잦아 프로모션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또 지난 겨울 시즌을 마지막으로 브랜드 전개를 중단한 모 캐주얼업체는 최근 거래업체들에게, “결제금액의 70%만 지급할 생각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공문을 보냈다. 이 업체는 70%를 현금으로 지급하되 지급 시기는 4월 초로 못박아 거래업체들은 겨울 물량 결재대금을 4월에 받게 됐다.

이 업체 관계자는, “상품기획과 생산차질에서 비롯된 판매부진에 대한 책임을 협력업체와 공동 부담한다는 차원에서 결제금액 가운데 일부를 감액 지급하게 됐다”고 말했다.

패션기업과 프로모션업체의 이 같은 관행은 판매부진에 따른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이라고 하지만 규모가 영세한 납품업체로선 연쇄도산의 위기에 내몰리기 일쑤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전문가들은, “수익을 낼 수 없어 브랜드를 중단해야만 하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업체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며,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당장 좋은 소싱업체들은 해당 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이며, 행여 그 업체와 거래하더라도 ‘플러스알파’의 리스크 비용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업체의 부도가 이어지면서 대부분 프로모션업체들은 거래 이전에 얼마나 안전한 업체인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한 프로모션업체 사장은, “2~3개 대형사 외에는 거래처를 정리했다. 물량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안전한 업체인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몇몇 패션업체들은 국내 프로모션업체들이 기피하고, 해외 소싱도 원활치 않음에 따라 소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급한 마음에 중국으로 날아가기도 하지만, 중국 업체들도 최근 미주 수출 물량이 급증하면서 한국 업체들은 찬밥 신세다.

불황과 판매부진으로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지만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상품력이 기본인 만큼 제품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패션업체와 생산업체의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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