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질 아블로는 무엇인가?”
2018-01-22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디자이너가 아닌 ‘버질 아블로’라는 브랜드


2010년대 패션계의 가장 중요한 흐름은 언더그라운드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스트리트패션 브랜드가 주류 패션계에 확실히 안착했다는 것이다. ‘하이엔드 스트리트 웨어’를 이끈 수많은 브랜드가 이때를 기점으로 탄생했고 주목받았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뎀나 바살리아의 ‘베트멍’,  ‘헬무트 랑’을 되살린 셰인 올리버의 ‘후드바이에어’, 한정판 스니커즈 붐을 이끈 카니예 웨스트와 ‘아디다스’가 손잡은 ‘이지’, 그리고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가 대표적이다.

팝 음악계처럼 패션계에도 대중의 소비 심리에 최적화한 슈퍼스타들이 있다. 고 알렉산더 맥퀸과 마크 제이콥스, 톰 포드와 라프 시몬스, 최근의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고샤 루브친스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가 웬만한 팝 스타 못지않은 인기와 영향력으로 트렌드를 이끈다.

그리고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버질 아블로 역시 음악가부터 예술가에 이르는 유명인사 친구를 가까이에 둔 스타 디자이너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2014년 ‘오프화이트’ 브랜드를 처음 선보인 이래 가장 활발하게 영역을 넓힌 2017년 행보를 보면 그를 ‘패션 셀러브리티’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는 무척 신중하게 자신의 영향력을 판단할 줄 안다. 패션 브랜드(‘오프화이트’)와 버질 아블로라는 이름의 가치를 ‘따로, 또 같이’ 끌어올리며, 독특한 위치의 컬트 레이블 디자이너에서 세계적인 패션 대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오프화이트'의 디렉터 버질 아블로. 사진은 '오프화이트 x 이케아'


‘버질 아블로’의 시작
버질 아블로의 수많은 협업은 고급 기성복 업계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패션 학교에서 정석대로 패션을 배운 디자이너들과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버질 아블로 역시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하여 일리노이주에서 자랐다. 일리노이 공과 대학 토목공학 학부에서 건축 석사 학위를 받은 그를 처음 대중이 각인한 사건은 2011년, 제이지와 카니예 웨스트가 합작한 음반의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 워치 더 쓰론으로 그래미상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부문에 지명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카니예 웨스트는 대중과 타협하지 않은 불세출의 명반을 차례대로 공개했다. 버질 아블로는 카니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참여해 앨범 디자인은 물론 앨범이 나온 후 어떻게 대중에게 노출해야 하는지 도왔다.

그렇게 카니예 웨스트의 조력자로 활동했던 버질 아블로는 카니예 웨스트와 작별 1년 후 시카고에 기반을 둔 하이엔드 스트리트 웨어 ‘파이렉스 비전’을 설립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이 브랜드에 충성도를 보인 시점에 불현듯 브랜드를 접었다. 다시 거점을 이탈리아 밀라노로 옮겨 2014년, ‘오프화이트’를 열었다. 카니예 웨스트와 킴 카다시안, 비욘세 같은 거물 셀럽들이 ‘오프화이트’의 간결한 타이포그래피가 들어간 청바지와 밀리터리 재킷을 입었고, 출시와 동시에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오프화이트X나이키' 더 텐 컬렉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밀레니얼에게 손짓
2017년에도 그 기조는 이어졌다. ‘브랜딩’ 관점에서 ‘현실 세계(오프라인)’에 소극적인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영향력과 매출을 함께 올리기 위한 노력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나이키’와 선보인 열 개의 상징적인 스니커즈 협업 ‘더 텐’ 컬렉션의 바이럴 마케팅은 작년 소셜미디어 브랜딩 사례 상위권에 있다. 세계 각국의 ‘오프화이트’ 매장 계정은 열 족의 발매 모델마다 시차를 두고, 브랜드 해시태그와 원하는 사이즈를 ‘리포스트’한 소비자에게만 당첨 기회를 주었다. 해당 도시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조건도 붙였다. 이제는 인스타그램 포스트 하나를 읽는 것조차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이 전략은 먹혀들었다. 웬만한 인터랙티브 마케팅에 꿈쩍도 하지 않는 이들이 수만, 아니 수십만 개를 리포스트했다. 2017년 가을, 소셜미디어는 ‘오프화이트 나이키’로 뒤덮였다.

발매 시기에 맞춰서는 서울의 ‘꼼데가르송’ 한남 매장을 비롯하여 런던과 뉴욕 등지의 주요 출시 매장을 방문하여 소비자들, 그리고 지역의 창작자들과 만나서 대담을 나누는 워크숍(WORKSHOP" c/o Virgil Abloh™)을 열었다. 지역 문화 단체들과 협력하여 패션과 예술, 음악과 설치 작업을 연결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일종의 D.I.Y. 워크숍이었다. 스니커즈 팬들과 대화하거나, 신발 밑창 옆면에 그들의 이름이나 별명을 직접 써주는 팬 서비스(?)도 했다. ‘루이비통’의 남성복 디렉터 킴 존스나 일본 스트리트웨어의 대부 후지와라 히로시, 21세기 최고의 팝 스타 비욘세 같은 이들에게 ‘더 텐’ 스니커즈를 선물하며 전파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오프화이트 제품에 달린 플라스틱 태그를 제거한 후 신어야 하는가?”처럼 사실 아무래도 좋을 문제까지 열성 팬 사이에 논쟁이 일어날 만큼 ‘나이키’가 수시로 진행한 어떠한 협업보다도 커다란 화두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버질 아블로는 지금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요소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인스턴트 식품보다도 빠르게 식는 모바일 문화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지역 문화의 거점을 일구는 이들과 친구가 되고, 의미 있는 행사를 주최하며, 모바일 문화에 익숙하여 온라인 세상에 길든 미래 소비자들에게 참여 기회를 공유한다. 서울, 도쿄, 런던 등지의 백화점들에 있는 오프화이트 매장에서 이러한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상업성이 짙게 깔린 채 ‘예술적으로’ 보이는 이벤트에 거부감을 지닌 이들도 존재하므로), ‘버질 아블로’라는 한 명의 창작자로서 참여하고, 참여를 유도한다.

이러한 연계는 탁월한 상승효과를 발휘하여 ‘오프화이트’를 모르던 이들조차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브랜드’라는 호감을 표하게 한다. “오프화이트는 ‘쿨’해, 너도 하나 사 입어”라는 1차원 광고가 아니다. ‘오프화이트’를 만드는 버질 아블로라는 ‘사람’이 벌이는 다양한 이벤트가 결국, 그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기성 패션계가 불세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끌어들인 후 벌이는 전형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버질 아블로의 워크숍 프로젝트는 브라질 상파울루와 영국 런던, 미국 마이애미 아트 바젤 등지에서 조금씩 이름을 달리하여 열었다. 브랜딩 에이전시 스와이프의 이근 디렉터는 버질의 방식을 두고 “앤디 워홀의 팩토리를 보는 것 같다”고 평했다. 신선한 소통 방식과 브랜딩을 냉정하게 보면 이미 예술계가 행하던 형식(워크숍)을 빌렸지만, 스니커즈와 패션, 지역 문화와 결합하며 완전히 다른 결과물로 나왔고, 이제는 버질 아블로를 대표하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스템'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한 버질 아블로

버질 아블로는 ‘무엇’인가?
원점으로 돌아와 그가 행한 작업을 브랜딩 관점으로 얘기해보자. “버질 아블로가 누구야?”가 아니다. “버질 아블로는 ‘무엇’인가? (What is Virgil Abloh)?”이다. 

2018년도 시스템 매거진 10호에 실린 이 표지 문구는 무척 시의적절하다. 버질 아블로가 패션계 혹은 패션계를 넘어서 벌인 다양한 프로젝트는 기성복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확장과도 연결되어 있지만, 버질 아블로라는 인물이 패션 브랜드 범주를 넘어선 ‘행위’ 자체에 더 많은 함의를 내포한다. 시스템 매거진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대신, 버질 아블로로부터 파생한 ‘현상’들을 담기 위해 가장 어울리는 제목을 뽑았다.

2018년에도 버질 아블로는 분주하다. 러시아 월드컵 시즌에 맞춰 새로운 ‘나이키’와 새로운 ‘스우시’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2019년에 출시 예정인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라이프스타일 오브제 제작을 마쳤다. 하이엔드 럭셔리에 맞춘 ‘오프화이트’를 사기 어려웠던 고객들을 위하여 ‘낫원스앤포올(Not Once And For All)’이라는 콘셉트의 캡슐 컬렉션도 이 달 출시했다(유명한 후드 파카의 가격대가 100달러 남짓이다). 그는 패션 브랜드의 경영자로서 브랜드를 이끌며, 현대 예술과 건축에 탁월한 심미안을 지닌 사상가로서 제프 쿤스 같은 당대 예술가들과 담론을 논한다. 예상하지 못한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될 수도 있다. 심장이 뛰는 사람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기질의 브랜드가 탁월한 균형을 이루며 존재한다. 말 그대로 ‘Not Once and For All’이다.

'오프화이트' 워크숍 '코튼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