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이덴티티 경영, “‘브랜드’를 팔아라”
2018-01-26강경주 기자 kkj@fi.co.kr
소비자를 매혹하는 마성의 브랜딩

“아시아에서 이만한 독창성을 갖춘 브랜드는 처음 봤다.”

LVMH의 투자펀드사 엘캐터톤아시아의 라비 타크란 대표는 지난해 국내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전개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대표 김한국)에 600억원을 투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젠틀몬스터’는 1551억원의 매출, 506억원의 영업이익이라는 수치적 성과에 더해 ‘독창성’이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최고의 글로벌 럭셔리 그룹을 사로잡았고, 올 5월 런던 매장 오픈으로 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등 글로벌 브랜드의 토석을 다지고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란 브랜드를 설명하는 고유의 ‘통일된 이미지’를 말한다. 이는 브랜드의 철학, 제품, 공간 등으로 구체화돼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이렇게 전달된 이미지는 수 백, 수 천개의 브랜드가 경쟁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의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으며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핵심요소가 된다.

현재의 1020세대의 젊은 소비자들은 이른바 ‘투표적 소비’를 행한다. 단지 옷을 제품으로 구매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 투표하듯이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구매로 표현한다. 우리가 매력적인 사람에게 끌리는 것처럼 소비자도 매력적인 브랜드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세우는 브랜딩 작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이슈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젠틀몬스터' 상하이 플래그십스토어


‘젠틀몬스터’와 ‘H&M’의 공통점
‘젠틀몬스터’와 ‘H&M’. 언뜻 교집합이 보이지 않는 두 브랜드이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브랜딩’의 고수라는 점이다.

‘젠틀몬스터’는 제품으로 소비자와 소통하지 않는다.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 콘셉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 소비자를 대한다.

‘젠틀몬스터’는 독특한 플래그십 스토어로 유명하다. 나무를 거꾸로 매달거나 다양한 형태의 설치 미술품을 전시해 매장을 방문하는 소비자에게 작은 충격을 준다. 최근에는 합정동 사옥 1층 미팅룸에도 이 같은 작품을 설치했다.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문화 공간 ‘배트’를 오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배트’는 농장 콘셉의 카페, 만화방, 전시회를 여는 등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젠틀몬스터’는 김한국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의 절반이 브랜딩팀 소속이며 공간 기획 담당자는 팀의 절반을 차지한다. 연 40여 가지의 스타일이 출시되는 독특한 디자인은 물론 제품을 넘은 브랜드 자체의 브랜딩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구진영 ‘젠틀몬스터’ 브랜딩 매니저는 “‘젠틀몬스터’의 방향성은 ‘예측불가능한 브랜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아이덴티티가 지금의 ‘젠틀몬스터’를 만든 원동력이라는 설명이다.


온라인 럭셔리 편집숍 '미스터포터'와 협업한 SPA '코스'


‘H&M’은 두 얼굴을 가진 브랜드(기업)다. 저렴한 가격과 대물량을 쏟아내는 SPA라는 이미지와 함께 ‘코스’ ‘앤아더스토리즈’ ‘아르켓’ 등으로 보여준 브랜드 철학이 그것이다.

에이치앤엠헤네스앤모리츠가 선보인 서브 브랜드들은 메인 브랜드인 ‘H&M’처럼 SPA의 성격을 띄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이미지는 SPA에 국한되지 않는다. ‘코스’는 컨템포러리, ‘앤아더스토리즈’는 여성 라이프스타일, ‘아르켓’은 SPA의 한계를 극복하는 착한 브랜드로 새롭게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코스’는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소재, 봉제 기술을 사용해 기존 SPA와는 차별점을 가져간다. 지난해 국내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스나키텍쳐와 협업 전시를 여는 등 브랜드 문화를 만드는 데도 능숙하다. ‘코스’가 네타포르테 그룹의 남성몰 ‘미스터포터’와 협업 컬렉션을 제작, 입점 판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선보인 ‘아르켓’은 환경문제와 비합리적인 생산 노동자에 대한 처우 등 기존 SPA가 가진 한계와 정반대되는 철학을 제시한다. 캐시미어 제품은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며 생산처의 공급자와 공장 정보를 제공한다. 또 편집형 오프라인 매장을 선보여 ‘아르켓’과 어울리는 타 브랜드 제품을 함께 판매한다. 1~10까지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제품을 더 싸고 빠르게 판매하는 SPA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H&M’이지만 이 같은 서브 브랜드들의 아이덴티티로 여전히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브랜드(기업)는 이렇게 감도있는 디자인을 하고 가치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에이치앤엠헤네스앤모리츠의 부정할 수 없는 강점이다.


기존 SPA와는 다른 가치를 내세우는 'H&M'의 '아르켓'


아이템 전문화, 아이덴티티 첫걸음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템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어떤 아이템을 구입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브랜드라는 점은 소비를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다. ‘유니클로’ 히트텍, ‘리바이스’ 청바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에프앤에프(대표 김창수)의 ‘MLB’는 이러한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을 보유한 브랜드다. ‘MLB’의 대표 아이템인 야구 모자는 ‘MLB’의 아이덴티티인 야구에서 비롯한 아이템으로 가장 적합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지난해 20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에는 해외 시장에서도 ‘MLB’ 모자가 이슈다. 지난해 면세점 9개 점에서 월 40억원 이상의 매출 90% 이상이 모자에서 나왔다. 에프앤에프는 홍콩 등 9개 국가의 ‘MLB’ 라이선스를 획득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블루마운틴코리아(대표 공기현)의 ‘블루마운틴’은 우븐슈즈를 대중화시켜 신발 시장의 카테고리로 키워냈다. 2014년 1만 족에 불과했던 생산량은 현재 70만 족을 넘는 물량으로 늘어났고 판매율도 90%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블루마운틴’은 중국, 두바이 등에 진출,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가고 있다.

전문 아이템은 스트리트 캐주얼 시장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소자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하나의 아이템에 집중해 브랜드의 뿌리를 키우고 이를 육성해 다양한 아이템으로 가지를 뻗는 형식이다.

스튜어트(대표 김현지)의 ‘앤더슨벨’은 2014년부터 코트를 1만장은 가볍게 뛰어넘게 판매하며 스트리트 캐주얼 시장에서 코트 대표 브랜드가 됐다. 이에 힘입어 코트와 어울리는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방향을 정하고 브랜딩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 바니스 뉴욕은 스트리트 패션과 컨템포러리를 조화롭게 구성한 ‘스마트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앤더슨벨’을 소개해 글로벌 브랜드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앤더슨벨’은 중국 빅 바이어에게도 연 20억대 매출을 내고 있다.


(왼쪽부터) 'MLB' 볼캡, '블루마운틴' 우븐슈즈, '앤더슨벨' 코트


아이덴티티의 집약체, 플래그십 스토어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집약시키는 공간이다. 아이덴티티를 중시하는 브랜드들에게 플래그십 스토어는 단순히 거대한 평수에 전 아이템을 선보이는 것이 아닌 브랜드의 철학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꾸며진다.

스웨덴 브랜드 ‘아크네스튜디오’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시작된 브랜드인만큼 플래그십 스토어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콘셉이 확실한 건축 디자이너와 협업해 특유의 여유롭고 꼼꼼한 디자인을 인테리어에 담는다. 각 국의 매장의 모습을 모두 다르게 디자인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이 중 청담동에 위치한 ‘아크네스튜디오’ 매장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서울의 모습처럼 이중 폴리카보네이트 시트로 매장을 만들어 시멘트 일색의 건물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외관을 자랑한다.

국내 브랜드에서는 ‘젠틀몬스터’와 ‘앤더슨벨’, ‘아더에러’ 등의 브랜드가 플래그십 스토어를 활용한 브랜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오픈한 ‘앤더슨벨’ 도산공원 플래그십 스토어는 공간 디자이너 르동일 작가와 협업해 일반적인 매장 모습과는 달리 건축미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꾸몄다. 피팅룸은 입구부터 내부까지 모두 거울로 제작했고, 매장 안쪽은 전시 공간으로 구성해 특별 콜래보를 선보인다. 상품 진열도 일렬 행거나 선반을 사용하지 않고 매장 곳곳에 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 ‘아더에러’도 지난해 홍대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아더에러’는 콘텐츠 브랜드라고 자신을 명명한다. 의류를 만드는 것에 더해 콘텐츠 제작, 아트워크 활동에도 힘을 쏟는다. 플래그십 스토어도 의류 매장이라기 보다는 갤러리에 가깝다. 지난해 오픈한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는 전위적인 조형물들을 설치해 건축적인 미를 더했고, 매장 곳곳에 숨겨놓은 작은 공간에도 양말, 모자 등의 제품을 진열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아더에러’는 독특한 제품 디자인에 신선한 콘셉까지 갖추면서 “당신이 알아야 할 5개의 한국 브랜드(Amuse)”, “‘베트멍’을 향한 한국의 대답(Vogue US)”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루키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


'아크네 스튜디오'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이중 폴리카보네에트 시트로 만든 이 매장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서울의 모습을 닮았다.


팬덤을 만드는 브랜딩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은 광적인 팬덤을 보유한 독특한 브랜드다. ‘슈프림’의 제품 출시일 마다 10여 개의 세계 각국 매장에는 긴 줄이 늘어서고 온라인 스토어는 10여 분만에 전 제품이 품절된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의 콘서트를 기다리는 팬들처럼 소비자들은 ‘슈프림’의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이 같은 강점으로 지난해 ‘슈프림’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거대 자본과 손을 잡은 것. 글로벌 사모펀드 그룹인 칼라일은 ‘슈프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 사 지분 50%를 5억 달러에 인수했다. 또 ‘루이비통’과의 콜래보는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가 거리의 패션에 손을 내민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17년 여름 '루이비통X슈프림'을 구매하기 위해 '루이비통' 청담점 앞에 줄을 선 소비자들


이처럼 ‘슈프림’과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독특한 팬덤문화를 보유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스케이트 보드와 힙합 음악 등의 서브컬쳐가 그 뿌리다. 소비자들은 이들 브랜드들을 단순히 의류 브랜드로 보는 것이 아닌 문화를 함께 향유하는 동반자로 생각하면서 브랜드를 소비하고 있다.


국내 스트리트 캐주얼에서는 ‘디스이즈네버댓’이 팬덤을 가진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디스이즈네버댓’의 시즌 프레젠테이션 행사는 제품을 판매하지 않지만 젊은 소비자들의 방문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옷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SNS에 자신이 이 브랜드를 입고 즐긴다는 것을 노출하고자 한다.


특히 시즌 컬렉션을 많게는 15차례에 걸쳐 출시하는 방식은 소비자에게 꾸준한 이슈거리를 만들어준다. 제품 디자인부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까지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재미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주면서 팬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