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메이저의 인사 키워드는 ‘성과주의·전문성·젊은피’
2017-12-15이채연 기자 leecy@fi.co.kr
대형사 임원급 사업부장 외부영입 늘어
의사결정 빠르고 책임소재 분명한 ‘수직적 관리’ 재편

12월은 한 해의 영업을 마무리하는 시기이자 패션업계의 인사 시즌이다. 실적 마감 잠정치가 잡히면서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공과를 반영한 인사와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패션기업들이 최근 단행한 정기임원인사와 중급 규모 이상 조직개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성과주의’ ‘전문성’ ‘젊은 피 등용’, 세 가지다. 연말이 가까워서야 해빙 기미가 보이는 한·중 관계에, 내수 침체로 팍팍했던 올 한 해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 앞으로의 운영방향이 어떨지 녹아있는 대목이다.

유통 대기업과 계열 패션기업, 상장기업과 중견사들에서는 성과주의 인사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성장정체와 수익률 저하를 돌파할 수 있는, 조직관리보다 매출을 일으키는 추진력을 드러낸 40~50대 임원들이 전진 배치됐다. 따라서 공채 기수에 따른 서열도 무너지는 추세다.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는 물론 기존 사업에도 확실한 커리어를 쌓은 동업계 임원을 적극적으로 영입한 것도 한 몫을 한다.

이 같은 인사방침을 가장 명확하게 반영한 곳이 LF다. LF는 최근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는데, 각 브랜드 산하로 소싱 업무를 이관한 점이 특히 눈에 띈다. 다 브랜드를 전개하는 만큼 종전에는 전사통합소싱부문이 원부자재 수급부터 봉제까지를 관장하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동업계 정보 파악과 사내 공유, 새로운 소싱처 발굴 등에서 속도가 떨어져 결과적으로 경쟁사 대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별 체질개선을 위한 행보는 보다 파격적이다. 지난해 ‘질스튜어트스포츠’ 론칭을 위해 ‘디스커버리’로 역량을 보여준 손광익 상무를 영입한 데 이어 지난달 아웃도어 ‘라푸마’까지 총괄하도록 했다. 이달 들어서는 아이올리의 여성 편집숍 ‘랩’ 사업부장을 지낸 박민수 상무를 여성리테일사업부장으로 영입했다. 박 상무는 신세계인터내셔날, 캘빈클라인진코리아를 거치며 캐주얼부터 수입 컨템포러리까지 넓은 영업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인물.

내년에는 현재 LF몰 내 숍인숍으로 운영 중인 편집숍 ‘어라운드더코너’를 단독몰로 독립시켜 스트리트 캐주얼과 디자이너 브랜드의 주 무대를 본격 공략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무신사, 오프라인 편집숍 출신의 20~30대 MD를 대거 영입했고, 매출 상승 효과를 본 만큼 전문성 만을 평가하는 학벌타파 블라인드 채용을 늘릴 방침이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미래준비와 핵심경쟁력 강화라는 큰 틀 안에서 철저히 성과주의 방침에 따라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손문국 신세계백화점 상품본부장과 김홍극 이마트 상품본부장의 부사장 승진 발령으로 오프라인 채널 경쟁력 강화 의지를 드러냈고 신세계인터내셔날 글로벌패션2본부장과 신세계톰보이 대표를 겸직해 온 고광후 부사장을 백화점 전략본부장으로 복귀시켰다.

숍 브랜딩에 방점이 찍혔던 신세계인터내셔날 라이프스타일사업부도 단일 브랜드에 무게를 실은 ‘자주’사업부로 재편했다. 또 전문성을 가진 임원급 인사 영입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인사 키워드도 다르지 않다. 이번에 상무(갑)로 승진한 안장현 아울렛사업부장, 김봉진 미래MD사업부장은 모두 상품본부 바이어로 잔뼈가 굵어 패션업계 사정에 밝은 영업통이다. 계열사 한섬에서는 자사몰을 비롯해 홈쇼핑 영업을 확대하며 소비자 저변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임은우 생산지원사업부장이 유일하게 임원으로 승진했다. 사업분야별 핵심 경쟁력의 하나로 생산 소싱을 꼽은 셈이다.

중견사 중에서는 세정이 강도 높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가장 큰 변화는 '웰메이드'와 '올리비아로렌'을 종전 브랜드 별 직능본부 체제에서 브랜드 사업본부 체제로 개편한 것. 각 사업본부 산하에는 상품기획, 영업, 사업전략 부서가 배치됐다. '웰메이드' 사업본부는 이기호 전무가 총괄하고 상품기획부는 남명일 차장, 영업부는 이승용 부장, 사업전략부는 박병철 부장이 부서장을 맡았다.

올 한해 여러모로 불확실성에 시달린 패션기업들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책임소재가 분명한 수직적 관리시스템, 즉 ‘매출을 내면서 위기관리도 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 생각이 모아졌다. 다만 조직 내 역량과 채산성이 곧바로 비교되도록 해 사내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이 내년 말에는 얼마만큼의 실효성으로 평가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