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의 보이후드> 캐시미어를 사는 새로운 방법, ‘아르켓’
2017-12-13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패션은 가장 싼 것과 가장 비싼 것으로 나뉘고 있다. '유니클로'에서만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가치 소비가 때로는 의미가 없다. 이는 꽤 무서운 문제인데, 수백만 원은 아니지만 애매하게 비싼 가격 때문에 살 수 없었던 종류의 디자이너들은 설 땅이 점점 사라졌다.


지난 몇 년간 소위 '세컨드 레이블(second label, 세컨드 브랜드)'로 쉽게 만들고 쉽게 파는 스웨트 셔츠(sweat shirt)와 후드 파카(hood parka) 등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한국 패션 디자이너는 적어도 수십, 아니 수백 명은 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아주 영리한 스웨덴 브랜드가 눈에 들었다. '아르켓(Arket)'이다. 이 브랜드는 아직 한국에 정식으로 선보이지는 않았다. 브랜드를 처음 전개한 것도 올 3월로 꽤 최근이다. 혹시 아무런 정보 없이 웹사이트에 들어간다면, 너무 잘 만들어놨다는 사실 때문에 놀랄 것이다.


스웨덴 브랜드 '아르켓'


첫 눈에 들어온 하나, '검색'
부산하게 움직이는 작고 귀여운 그래픽, 한국적이지 않지만 사용자 취향으로 재치 있게 나눈 범주(category)는 직관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이들의 검색창(search window)은 단출하며 영리하다. 브랜드 이름이나 제품으로 검색하는 건 당연하고, '아르켓'이 다루는 커다란 네 가지 갈래(여성복·남성복·아동복·생활용품)부터 검정부터 흰색에 이르는 색상 분류, 줄무늬와 물방울무늬 같은 패턴 종류, 실크(silk)부터 종이(paper)에 이르는 소재 분류까지 있다.

각 분류에서 하나씩 골라 한 번씩만 누르면, 차례로 범주가 넓어지며 그에 해당하는 제품들이 나온다. 그 목록을 퍼즐 맞추듯이 진행하면 결국 원하는 상품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다. 반대로 하나씩 지워가며, 새로 검색할 때 이미 나왔던 '단어'가 사라지는 방식도 너무 디지털 혹은 기계적이지 않고, 마치 덜렁대는 나무 간판이 떨어지는 듯한 효과가 나온다. 이를테면 이곳은 사람 친화적이다.


성공한 전자상거래(e-commerce) 웹사이트 사례들을 보면 '검색' 기능은 아주 중요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검색에 의존하며,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제품을 쉽게 찾아주는 곳에서 쇼핑하길 좋아한다. 사실 이들보다 더 세밀한 취향으로 분류해주는 쇼핑몰은 한국에도 많다. '네이버(Naver.com)' 최저가 검색만 해도 '아르켓'보다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아르켓'의 강점은 확고한 브랜드 취향과 색을 바탕에 둔 재치에 있다. 검색의 절대량이 엄청나지 않아도, 쉽게 검색하여 어떠한 느낌의 제품과 옷을 매장에 들여놓은지 알 수 있다. 많은 제품을 욱여넣은게 아니라, 좋은 취향의 손님들이 와주셨으면 한다고 말하는 매장이다. 그런 매장 분위기에는 어느 정도 손님들이 맞추게 되는 법이다.


'아르켓' 검색 페이지. 사용자 취향으로 재치있게 나눈 범주(category)는 직관적이며 사람 친화적이다.


둘, 흥미를 유발하는 색다른 '정보'
새로운 종류의 브랜드를 설명하느라 서론이 길었다. 각설하고, '아르켓'의 캐시미어 스웨터는 '재활용(Recycled)' 소재를 쓴다. 이미 사용하고 남은 섬유 소재를 쓰는데, 갓 생산한 버진 캐시미어(virgin cashmere)와 같은 고급 품질이(라고 한)다.


98%에서 100%까지, 재활용한 캐시미어로 지은 스웨터를 여성용은 135파운드(약 20만원), 남성용은 150파운드(약 21만원)에 판다. 재활용 캐시미어 비니(recycled cashmere beanie)는 45파운드(약 6만5000원)이며 69파운드(약 10만원)짜리 재활용 캐시미어 스카프(recycled cashmere scarf)도 있다.


더 재밌는 점은 이 웹사이트에 구매한 상품들의 '정보'를 구매와 동시에 아주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135파운드짜리 캐시미어 스웨터를 예로 들면, PC 기준 웹사이트 왼쪽 정보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를 누른다. 그러면 베이징(Beijing) 지역의 소재 공급자와 생산 공장 정보가 지도와 함께 뜬다. 깨알 같은 각주도 있다.


 '공급자 정보는 주기적으로 게재하지만 불일치할 수 있습니다. 공급자 또는 투명성 정책과 관련하여 질문이 있는 경우, 고객 서비스에 문의하십시오(Supplier information is updated periodically but discrepancies can occur. Contact our customer service if you have any questions regarding a supplier or our transparency policy).'


이 얼마나 풍요로운 소비 만족도를 선사하는가? 아직 한국 직배송은 물론 미국과 일본에서도 판매하지 않는 '아르켓'은 벨기에와 오스트리아, 스웨덴과 영국 등 여전히 제한적인 곳에서만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런던, 브뤼셀, 뮌헨과 코펜하겐에 살거나 여행 중이라면 이들의 간결하고 정갈한 매장에 방문할 수 있다. 좁지 않은 규모에 모든 매장에 적용한 일관적인 인테리어와 외관 디자인은 대번 브랜드에 흥미를 끌어 올린다.


'아르켓' 재사용 캐시미어 점퍼. 소재 공급자와 생산지 등 상품의 정보가 상세하게 나온다.


셋, 에이치엔앰이 찾은 새로운 '가치'
2017년 3월에 문을 연 브랜드가 어떻게 이러한 체계적이고 저돌적인(겉으로 드러난 공격성이 아닌) 방식으로 브랜드를 전개하는가? 대답은 '아르켓'의 어바웃(About) 페이지에 있다. '아르켓'은 에이치엔앰(H&M) 그룹이 운영하는 산하 브랜드 중 하나로 에이치엔앰이 만든 여덟 번째 브랜드다.


가격대로만 보면 'H&M'과 '코스(Cos)'의 중간 지대에 머무는데, 그들의 브랜드 철학은 'H&M'이 비판받은 요소들(패스트 패션의 범람으로 인한 환경 문제와 비합리적인 생산 노동자 처우 등)의 대척점에 있다. 가령 'H&M'에 가면 우리는 매주 수많은 새로운 상품으로 진열대가 바뀌는 걸 본다.


하지만 '아르켓'은 이미 완성된 좋은 품질의 상품이 있다면, 자신들이 새롭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르켓' 매장에는 그들이 직접 만든 코트와 테일러드 재킷과 75파운드(약 10만원)짜리 '나이키(Nike)' 와플 레이서(Waffle Racer) 운동화가 함께 있다. 이것은 일종의 모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H&M'의 경쟁 브랜드 중 하나인 '유니클로'가 '지유(GU)'라는 이름으로 출시한(유니클로 가격의 70% 정도인) 저렴한 브랜드로 중국 시장과 신규 소비층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하는 것과는 확실한 반대로 보인다.


에이치엔앰의 8번째 브랜드 '아르켓'


넷, 이야기를 '발견'할 때

결론적으로 사람들의 소비는 점차 나뉘고 있다. 잡지들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고 호소해도, 이제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판단하는 기준에 기존 매체의 영향을 크게 두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 신뢰하는 영역을 구축한 브랜드의 매장이나 온라인 웹사이트, SNS에 거론된 평판과 콘텐츠 등으로 소비 가치를 판단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여러 의미를 시사한다. '발견'하는 종류의 취향은 예전보다 많이 쇠퇴하였다. 반대로 좋은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고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캐시미어 스웨터에서 '아르켓'에 이야기를 할애한 것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홍석우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모바일 매체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의 편집장 겸 에디터인 홍석우는 지난 10년간 다양한 매체 기고와 편집 활동을 이어왔고, 패션을 하나의 동시대 문화로 다루는 글과 기사를 다뤄왔다. 2017년 12월부터 <패션인사이트>의 필진에 합류, 그의 인사이트를 담은 다양한 패션 트렌드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