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의 보이후드> 2017년 한국, 롱패딩 열풍의 지금과 미래
2017-12-15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그야말로 열풍이다. 롯데백화점에서 한정 수량 판매한 평창 올림픽 기념 '롱 패딩' 코트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줄 서기부터 인터넷 중고 웹사이트에서 웃돈까지 붙었다. 최근 수년간 겨울 장사 예측에 실패한 패션 회사들도 신이 났다.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롱패딩 제품을 연달아 출시하며 기록적인 매출을 올리고, 실제 매장 매출은 예년 대비 100% 넘은 성장이 부지기수다. 이 현상의 지금과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평창 롱패딩'의 마지막 출시 전날 밤 잠실역 롯데월드몰 입구 광장을 가득 메운 소비자들



'평창 롱 패딩'으로 이름이 굳어진 패딩 코트 기사가 처음 한국 뉴스를 휩쓸 때, 출장으로 일본에 있었다. 도쿄는 서울보다 10도쯤 높았지만, 두꺼운 겨울 외투는 이 거대한 패션 도시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 중 하나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며칠 동안 한국의 열풍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실제 도쿄 번화가에서 롱패딩 디자인의 어떠한 옷도 인기를 끌고 있지 않았다.


막 추워지기 시작한 한국에 도착하니 인천공항부터 풍경은 달라졌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하얗고 까만 롱패딩을 입고 길을 걸었다. 사실 11월 초순, 아직 겨울 외투를 입기 이른 시점에 필자도 처음 롱패딩을 하나 샀다. 요즘 유행하는 적당히 큰 치수의 오버사이즈(oversized)로 한국의 어느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의 롱패딩이다.


주머니가 많아서 실용적이고, 기장에 비해 가벼운 무게에 오리털이 들어간 패딩 코트는 심지어 가격도 적당했다(20만원대 중반). 그런데 11월 중순 '평창' 뉴스 이후, 특히 검정 롱 패딩 코트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었고 나 역시 일부가 되었다. 이 유행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처음 SNS에 화제가 된 사진은 어느 고교 점심시간이었다. 마치 교복처럼 모두 까만 롱패딩을 걸쳤다. 수년 전 '등골 브레이커'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모 아웃도어 브랜드 패딩 재킷이 떠올랐다. 유행은 돌고 돌아 더 길어졌다.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패딩 아우터
지금을 이야기하기 전, 지난 몇 년 겨울 유행을 한 번 돌아보자. 2010년대 초반 한국은 아웃도어 브랜드 전성기였다. 그 정도까지 필요 없는 날씨에도 사람들은 최고의 방한 기능을 넣었다는 산악용 재킷을 샀다. 산에서만 입는 것도 아니었다. 전문가용 제품들은 '어반 아웃도어 (urban outdoor)'라는 이름을 달고 도시에 침투했다.


배턴을 이어받아 유행한 옷은 소위 '럭셔리 브랜드'가 만든 프리미엄 거위털(goose down) 패딩 재킷이었다. 수많은 브랜드가 이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특히 빛을 발한 건 '캐나다 구스(Canada Goose)'와 '몽클레어(Moncler)'였다. 특히 '캐나다 구스'는 카피 논란부터 병행 수입 문제까지 다양한 논쟁을 일으켰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경영자가 바뀐 '몽클레어'의 전략은 더 세계적이었다. 으리으리한 플래그십 매장을 청담동에 열었고, 온갖 백화점에 입점해 고객에게 손짓했다. 팔꿈치 가장 자리에 달린 브랜드 로고는 겨울철 '부의 상징'이 되었다.


겨울 패딩 트렌드를 이끌었던 '캐나다구스'(왼쪽)와 '몽클레어'


다시 2017년 겨울 서울의 거리를 본다. '캐나다 구스'의 방한용 마운틴 파카와 '몽클레어'의 전형적인 짧은 패딩 디자인은 제법 많이 '사라졌다'.


자리를 메운 건 길게 종아리를 덮은 롱 패딩 코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구매 이유가 있다. '담요처럼 추위를 막아주니까', 'TV 예능 프로그램 속 연예인들이 걸친 축구팀 롱 패딩이 친숙해서', '한 번 사면 막 입기 좋아서', 심지어 '차액을 노리고 되팔기 위해' 사는 사람도 존재한다.


열풍의 첫 번째 이유는 근래 가장 큰 한파라는 올겨울, 어떤 외투보다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아웃도어와 스포츠웨어가 도시 생활에 들어온 이래, 두껍고 무거운 코트보다 가볍고 보온력이 뛰어난 거위·오리털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유니클로(UNIQLO)' 같은 브랜드는 방한용 제품이 아닌 코트 아래 겹쳐 입기 좋은 '울트라 라이트 다운'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며 패딩에 관한 인식을 낮췄다.


지금 한국에서 패딩 재킷은 한겨울의 옷이 아니다. 아웃도어와 럭셔리 브랜드로 이어진 패딩 열풍은 올해 드디어(?) '가격 민주화'까지 이뤄냈다. 처음에는 수백에서 수천 단위로 팔았던 옷에 '평창 롱 패딩'이라는 키워드도 각인되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는 프리미엄에 기절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 더해지니,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용성과 더불어 한국 특유의 '소속감' 문화도 비친다. 커다란 외투로 몸을 가리니, 바쁜 도시인들은 안에 무얼 입었나 고민할 시간이 줄어든다. 유니폼처럼 모두가 비슷한 디자인을 입고 다닌다는 데서,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심리적 안정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물론 이 유행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롱패딩, 아직 펼치지 않은 변화구는 많다
이미 수많은 매체와 기사가 이 열풍을 분석했으니, 다음 질문을 던져보자. 롱 패딩 열풍은 내년, 아니 내후년에도 이어질까?


누구도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대답은 '그렇다'이다. 올해 사람들은 이 기다란 패딩 코트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넘었다. 패션 회사들은 차별화를 추구할 것이다. 더 저렴하게, 여성스럽게, 실용적이게, 가볍게…. 아직 펼치지 않은 변화구는 많다. 색상 역시 검정과 흰색 일변도에서 다양해질 것이다. 더 많은 물량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광고 전쟁은 당연지사다.


디자인 컨설팅 회사 스와이프(Swipe)의 대표이사이자 유니섹스 패션 브랜드 '포퓰러 사이언스(Popular Science)'의 이근 디렉터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사람들의 겨울 복식 카테고리에 '롱 패딩'이 하나 추가되었다. 이제 롱 패딩을 유행 아이템이 아니라, 겨울에 살 수 있는 외투 중 하나로 인식할 것이다. 그래서 이 열풍은 향후 몇 년은 지속할 것으로 본다." 당신은 이 의견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 내년 겨울이 알려줄 것이다.



'디스커버리'(왼쪽)는 11월 한달 7만장이 넘는 롱패딩을 판매하며 대세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임을 증명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무신사에서 롱패딩을 선판매한 마케팅이 적중,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스트리트 캐주얼 '디스이즈네버댓'(오른쪽)은 롱패딩을 위시한 겨울 매출이 급상승하며 연매출 1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