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 해빙(解氷) 무드… ‘유커 지갑 다시 열릴까’
2017-11-16이채연 기자 leecy@fi.co.kr
온∙오프채널 공히 중화권 소비자 매출 반등… ‘광군제’서 ‘한국산’ 선전

속 앓던 기업들, '중국 사업 속도 다시 내겠다'
불확실성 극복의 열쇠는 '찾아오게 만드는 콘텐츠와 서비스'


떠나갔던 유커(游客 중국인 관광객)는 다시 지갑을 열어 줄까.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가 만 16개월 만에 해빙 무드를 맞았다. 지난달 말 한·중 양국이 관계정상화 합의를 공식 발표한 직후 서울 명동거리는 다시 유커로 붐비기 시작했고 롯데백화점 본점을 필두로 중국인 여행객에 의한 매출이 반등하고 있다. 


한중 양국이 사드로 인한 갈등을 봉합, 관계정상화에 뜻을 모으자 광군제를 기점으로 한국 패션기업들의 중국사업실적이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동안 중단됐던 유통가의 중국 마케팅도 재개, 신세계는 이달 14일 왕홍을 초청, 백화점 본점 트리 점등식을 웨이보에 생중계했다. 점등식 장면을 구경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사진=신세계백화점>


롯데가 자체 집계한 중국인 소비자 매출은 이달 들어 전월 대비 일평균 약 20% 신장했다. 아직 사드 갈등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마이너스 폭을 상당히 줄였다는 분석이다. 이에 롯데는 한동안 중단했던 유커 대상 온·오프라인 프로모션 재개를 준비 중이다. 한번에 억대 매출을 일으키던 중국 대리상과 유커 쇼핑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을 정도였던 본점 여성복 브랜드들도 중국어 통역 아르바이트를 다시 채용하기로 하는 등 기대를 표하고 있다.

신세계 본점 역시 이달 1~10일까지 중국인에 의한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20% 이상 늘었다. 11일 있었던 중국 최대 쇼핑 이벤트 광군제(光棍節)를 낀 주말에는 37%까지 올랐다.


이 같은 분위기 반전은 온라인 채널에서 더욱 뚜렷하다. 한중 관계 정상화 효과를 가늠할 바로미터였던 이번 광군제에서 '한국산' 제품 판매액은 국가별 순위 5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는 3위였지만 사드 정국이 풀리지 않았다면 10위권 안에 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 기업 중 가장 큰 매출액을 기록한 이랜드는 티몰에 입점한 19개 자사 브랜드관을 통해 11일 하루 동안에만 76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대H몰의 역직구 사이트인 글로벌H몰의 경우도 이달 초부터 10일까지 광군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6% 신장했다.



온라인까지 번지기 시작한 반한 기류와 중국 유통 파트너의 소극적 자세에 한동안 속앓이를 해야만 했던 패션기업들은 모처럼 웃고 있다. 매출 회복을 체감하고 있는 기업들은 다시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인프라 구축, 마케팅 활동에 속도를 내겠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복 '난닝구'를 전개하고 있는 엔라인의 온라인사업총괄 유지운 차장은 "광군제 열흘 전부터 '티몰'에서의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면서 "올해는 사드 이전 성장률까진 힘들겠지만 전년 대비 플러스 신장해 130억 원 정도로 마감할 전망이고 내년에는 목표치대로 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엔라인은 중국 사업 볼륨화에 대비, 자체기획 콘텐츠 확대에 더욱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사입 비중이 높을수록 저마진, 재고부담에 힘겨울 수밖에 없고 가격경쟁 외엔 차별화 전략이 없다는 판단이다. 이미 지난 3년 여 동안 전담팀을 국내와 중국에서 동시 운영하면서 단가는 낮추고 품질은 높일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테스트해 왔고 이번 시즌 내놓은 핸드메이드 코트 18종과 같은 히트 아이템을 지속 개발해 내는 것이 목표다.


이달 11일 중국 상하이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광군제 행사. 이날 하루동안 알리바바 티몰은 1682억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사진=봉황망코리아>


'스타일난다', '난닝구'와 함께 티몰의 3대 한국 트렌디 패션 브랜드로 꼽히는 여성복 '임블리'도 이달 들어 코스메틱 '블리블리'를 포함한 티몰과 오프라인 면세점의 매출이 상승세를 탔다.


전개사인 부건에프엔씨 박준성 대표는 "성장가도를 달리다 사드문제로 제동이 걸린 화장품과 면세점 실적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면서 "대물량 세일즈를 통한 외형 성장이 아니라 성공한 소호몰을 만들어낸 콘텐츠 생산 역량을 사업화해 중국인, 중국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미래 전략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중국이 아시아 시장의 본 무대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외부 위협에 대응 가능한 사업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


'CHIC-영블러드' 참가를 통해 중국 사업의 물꼬를 튼 동광인터내셔날도 현재 진행 중인 상담의 우선 순위를 디자인 콘텐츠 수출에 두고 있다. 동광이 콘트롤타워가 되어 중국 파트너가 독자적으로 현지에서 수익구조를 만들고 볼륨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투자 대비 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랜드가 이달 11일 있었던 중국 최대 쇼핑축제 광군제에서 단 하루 동안 767억원의 매출(티몰 거래액)을 올려 한국 기업 중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랜드는 이번 광군제를 대비해 평소보다 물류인력을 20배 충원했다. 이랜드차이나 상하이 물류센터 <사진=이랜드>


정부의 입장에 맞춰 수세적 입장을 취했던 중국 마케팅 플랫폼의 손짓도 다시금 시작됐다. 그 중 우리 패션기업들이 주목할만한 곳이 '샤오홍슈(小紅書)'다. 샤오홍슈는 위챗의 뒤를 잇는 SNS형 커머스 플랫폼으로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중 최고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패션 아이템에 특화돼 MD 전문성이 높고 다른 직구 플랫폼에 비해 객단가가 높다는 점이 한국 패션기업들에게 매력적이다. 내년 1월 11일 파르나스몰에서 한국 패션기업과 미디어에 채널을 소개하는 대규모 사업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이렇게 사드 갈등 해소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낙관적 전망이 꼭 비즈니스 성과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한국과의 냉각기에 일본으로 눈을 돌리고, 대체제를 찾아 본 중국 소비자들의 관심을 되돌리려면 이전 보다 진일보한 쇼핑경험을 제공해야만 한다. 이전에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의 재고를 쌓아놓고 소비자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사드 갈등 같은 국면이 재발하면 덤핑 외에 답을 찾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피드와 가격, 온라인에 최적화된 마케팅 노하우로 중국 시장 공략에 성공한 '난닝구', '임블리'의 책임자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열쇠는 '찾아오게 만드는 콘텐츠와 서비스'라고 강조한다. 


준비된 리테일러의 저력은 광군제 이벤트로 어지간한 중견 브랜드의 1년 매출을 하루 만에 올린 이랜드의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랜드는 올 광군제를 위해 지난 1년간의 빅데이터와 고객 피드백을 분석했고, 이를 상품기획과 마케팅에 반영했다. 고객의 니즈와 수요를 미리 파악하고 내놓은 온라인 전용 상품은 당연히 적중률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또 주요 고객이자 잠재수요인 10대 취향에 맞춰 제작한 영상과 게임을 마케팅에 활용해 각인효과까지 얻었다.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고객 니즈에 따라 판촉 프로모션 타임 테이블을 짜고, 물류 담당 인원을 평소보다 20배 증원한 것도 일매출 767억을 만들어낸 '준비'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