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1 김묘환 CMG 대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아침 출근길에 전해진 소식은 형님이 고생을 끝내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패션협회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만나 한없이 야윈 모습에 혹시나 하며 예전의 그 병마가 다시 도진 건 아닐까… 걱정하는 아우에게 다른 말씀은 없이 평소와는 다른 어투로 "어휴 이번에 죽다 살았다"하시며 치료 과정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말씀하셨는데, 이 부족한 후배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몸보신 한번 시켜드릴 테니 날 한번 잡으세요" 하곤 또 공수표만 남발하다가 오늘 이렇게 보내드립니다.
참 생각해보면 제가 알고 지낸 삼십 여 년 형님은 멋진 분으로 사셨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주변에서 말도 많았지만 다른 건 다 몰라도, 형님 참 대한민국 패션계에선 멋으론 갑이셨습니다. 틀림없이 주머니 빈 날이 많으셨을 텐데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철 넘치는 멋을 숨기지 못하셨었지요. 제가 사회에 갓 진출해서 패션계 언저리를 기웃거릴 때 형님은 한남동 언저리에 배론기획이란 모델 에이전시를 차려 지금은 상상 할 수도 없지만 당시만해도 행사나 디자이너들의 부속품 대접을 받던 모델이란 직업을 사회에 떳떳이 알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88기획을 거쳐 오늘의 모델라인이란 커다란 족적을 남기기까지 남들은 모르는 고충을 평생 안고 지내셨습니다.
볼품없는 떠꺼머리 총각이던 그 시절부터 저에게 틈만 나면 사나이의 멋에 대해, 의리에 대해 말하시고 명동 심지다방 시절의 협객 흉내 내던 시절이나 지금 고인이 되신 박항치, 배천범 선생 같은 분들과 충무로에서 어울리며 남자들의 패션을 이야기하던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 뒤에는 소주 한잔 못하던 연하디 연한 형님의 본성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형님에게 이러쿵저러쿵 말들도 많았지만 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꿈 많은 백조가 날개 짓을 아무리 해도 호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심정을 어찌 쉽게 폄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십 수 년 전, 정확하게 2000년 봄 형님의 모든 것이 담긴 모델라인을 기반으로 디지털 시대를 위한 변신을 꿈꾸며 투자를 진행하던 그때 정확하게 전 형님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형님이 안고 간 모든 문제의 원인이 패션 업계에서 떠넘긴 멍에라는 것을…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병마와 싸우던 병원 입원실에서 또 한번 한없이 외롭게 살아간 한 노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형님 여기서 나가면 그 놈의 패션은 잊어버리고 아예 담 쌓고 사시라고…." 악담을 퍼부었었지요. 어쩜 그리도 사람들은 야속하던지.
이제 형님 편하게 보내드리려니 옛날 생각이 자꾸 납니다. 꿈꾸던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으면 어뗐을까? 그랬다면 아프지 않게 잘 살고 있었을까? 회한이 넘치지만 그래도 보내드리렵니다. 그곳에서 꿈꾸신 대로 마음껏 펼치시고 날라보시라고….
편안히 가세요. 그리고 기억할 겁니다. 대한민국 패션의 갑은 형님이었다고….
김묘환 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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