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 코드] 그래니 룩
2015-11-01고학수 기자 marchberry@naver.com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어떤 스타일을 고수하든지 한 번쯤은, 대개는 막 교복을 벗고 패션의 자유를 누리는 시기 때쯤, 오래된 옷에 빠져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집안의 거대한 옷장 안에 몇 년간 묵어있는 어머니, 또는 그보다 앞선 할머니의 찬란했던 시절의 옷과 액세서리를 꺼내 이리저리 매치해 보거나, 아예 구제 시장에 진출하기도 하는 그런 시기 말이다.

이런 옷을 입고 길을 나서면 내가 마치 거대한 트렌드에 맞서는 전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SPA 패션이 거리를 점령하면서 ‘혹시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과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할 필요도 없으며, 아주 적은 예산으로도 패션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디 젊은 나이에 잘 어울리는 패션이기도 하다.

이러한 스타일링에 딱 떨어지는 단어가 올 가을 가장 트렌디한 단어로 등장했다. 바로 ‘그래니 룩(granny’s look)’이다. 마치 할머니의 옷장을 습격한 듯한 옷들로 스타일링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빈티지 패션, 구제 패션, 앤틱 패션, 레트로 무드 등으로 미묘하게 달리 표현되지만, 본질은 같다. 오래 전 유행했던 스타일의 옷을 다시 입는 것이다.

지난 2월 열린 ‘구찌’의 2015 F/W 컬렉션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첫 컬렉션이라 더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가 선보인 옷들은 딱 그렇게 오래된 옷장을 턴 듯 보였다. 솔직히 저런 옷을 몇 백 만원씩이나 주고 사 입나 싶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랜 기간 액세서리 파트에서 활동했던 디자이너답게 아주 매력적인 아이템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미우미우’의 컬렉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어쩜 그렇게 구제 옷 스타일링의 감성을 잘 표현해 냈는지, 처음에는 ‘아, 왜 그렇게 오래된 옷을 입으면 엄마가 싫어했는지’도 이해가 갈 듯 했다. ‘내가 하면 패션, 남이 하면 패션테러리스트’ 라는 변형된 말이 떠올랐다.

디자이너의 인터뷰나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 지금의 패션에 영향을 받게 되는지 유추할 수 있게 되는데, ‘미우치아 프라다’나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에도 종종 나타나는 이 복고적인 무드는 그들이 멋쟁이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영향 받았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디자이너들이 그래니 룩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면, 우리는 진짜 그래니 룩을 입을 수 있다.

가장 핵심은 패턴의 믹스 매치이다. 색과 톤을 맞춰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싶다면 ‘구찌’와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의 컬렉션을, 마구마구 튀고 싶다면 색, 패턴 모두 제각각인 ‘미우미우’ 컬렉션을 참고하면 된다.

장기 불황의 상황에 그래니 룩의 등장은 더욱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