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 코드] 라이선스
2015-10-12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마음을 움직이는 FASHION & SHOW!



고등학교 때 나이 지긋하신 독일어 선생님께서 계셨다. 어느 가을날 점퍼를 입고 오셨는데 가슴팍에 ‘YSL’ 로고가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왜 저 로고가 저 할아버지 선생님의 가슴에 얹어져 있을까? 저 브랜드는 립스틱이나 스카프 같은 여성적인 제품에 어울리는 로고가 아닌가.


이런 생각과 맞물려 항상 의아하게 생각했던 곳은 백화점 1층 매대였다. 그곳에서 팔던 손수건, 양산, 장갑, 양말 등에는 풍문으로 들었던 파리 패션 브랜드 로고가 찍혀 있었다. 어딘가 바다 건너 멀리서 날아온 고급스러운 패션의 냄새를 풍기긴 했지만 패션지에서 보던 그 브랜드가 맞나, 심지어 가짜는 아닐까 궁금했다. 패션에 관심 있던 여고생에게 있어 라이선스의 세계는 넓고도 깊었다.


이후에 그러한 제품들이 라이선스, 즉 허가받은 제품이라는 것을 알고는 약간의 배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브랜드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니 라이선스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화려한 컬렉션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어떠한 형태로든 브랜드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발렌시아가’ ‘발망’ ‘디올’ ‘웅가로’ ‘지방시’ ‘기 라로쉬’ ‘니나 리치’ ‘파코 라반’ ‘이브 생 로랑’ 등 현재 파리 컬렉션에 서며 인기가 높은 브랜드들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가 브랜드, 또는 한물간 브랜드라는 이미지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때가 있었다.


라프 시몬스를 영입해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브랜드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디올’만 해도 오트 쿠튀르 브랜드 최초로 라이선스를 도입했던 브랜드였다. 무슈 크리스챤 디올은 1940년대 후반 브랜드를 론칭하면서부터 자신의 이름을 향수, 모피, 스타킹, 넥타이, 스카프, 란제리 분야의 제조업자에게 팔았다. 이를 두고 오트 쿠튀르 조합은 프랑스 패션의 고급 이미지를 깎는다며 비판했지만, 디올은 라이선스 사업 덕분에 회사 재정을 튼튼히 할 수 있었고 이후 많은 고급 브랜드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라이선스의 남발로 쿠튀르나 레디 투 웨어 디자이너의 고급스럽고 독특한 이미지가 많이 훼손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크리스챤 디올’ ‘이브 생 로랑’ ‘피에르 발망’ 등은 다시 이미지를 끌어 올리기 위해 ‘디올’ ‘생 로랑’ ‘발망’으로 이름을 줄이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하면서 혁신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한때 프랑스 패션계를 주름잡던 브랜드가 재기에 성공한 경우보다 오히려 이름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더 많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의 역량, 즉 디자인의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