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질문과 간단한 해석

2015-04-20 최진근 큐리언스 대표 jinkeun.choi@curiens.com

최진근의 패션 인문학 이야기 | 9 |



슈뢰딩거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



현상의 본질을 어떻게 찾아가는지를 한번쯤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사고와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예로 슈뢰딩거라는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가 <생명은 무엇인가>라는 책의 서문에서 시작한 질문인 “우리 몸은 원자에 비해 왜 이렇게 커야만 하는가?”라는 사고실험에 대해 알아본다.

생명의 과학적 해석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생물학이 아니라 오히려 물리학이었다. 슈뢰딩거는 책의 서문에서 ‘원자는 왜 그렇게 작은가’라는 기막힌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 질문은 상대적인 것이다.

원자가 작다고 하는 것은 그 원자들로 이루어진 우리 몸이 크기 때문에 작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슈뢰딩거는 그 질문을 “우리 몸은 원자에 비해 왜 이렇게 커야만 하는가?”'로 바꾼다.

슈뢰딩거는 컵의 물안에 잉크방울을 떨어뜨릴 때 잉크가 물 안에서 퍼지는 현상과 단순한 비율계산으로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한다.

물을 채운 컵 한쪽 구석에 잉크를 떨어뜨려 놓으면 잉크가 점점 맑은물 쪽으로 퍼져나가 마침내 골고루 분포하게 된다. 잉크 입자가 농도가 진한 쪽에서 옅은 쪽으로 움직여가는 것은 각 입자들이 완전히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중력 때문에 결국 아래로 가라앉겠지만 밀폐된 공간 속의 안개나 연기 입자도 비슷하게 움직인다. 물을 채운 그릇에 꽃가루 같은 아주 작은 미립자 100개를 한쪽 모서리에 놓아두면 꽃가루들은 물분자와 충돌하면서 불규칙하게 떠돌면서 퍼져나간다.

어느 순간 미립자들의 움직임을 연속적인 정지화면으로 본다고 가정하면 대다수 입자들은 농도가 짙은 곳에서 옅은 곳으로 움직여 가지만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입자들도 발견될 것이다. 평균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 이처럼 예외적으로 반대로 움직이는 입자의 빈도는 제곱근 법칙(루트N의 법칙)에 따른다. 100개의 입자라면 루트 100, 곧 10개 정도는 평균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인다.

이는 순전히 통계학적으로 그렇게 관찰됐다는 얘기다. 양자물리학의 법칙이라는 것도 다수의 원자운동에 관한 통계학적인 기술이며, 전체를 평균해서 얻을 수 있는 근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 분모인 원자수가 늘어날수록 안정

만일 100개의 원자로 이뤄진 생명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통계학적 평균(양자물리법칙)으로, 이 100개 중 10개 정도는 항상 일탈행위를 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 생명체는 늘 10% 오차율의 부정확성을 안게 되는 셈이고, 그것은 고도의 질서를 요구하는 생명활동에는 치명적인 정밀도다. 그런데 원자 100만개로 구성된 생명체가 있다면 일탈적으로 움직이는 원자는 루트100만, 곧 1000개 정도고, 따라서 오차율은 0.1%(1000개/100만개) 로 떨어진다.

만일 몇 억개, 또는 사람 몸처럼 수십조가 넘는 원자로 구성된 생명체라면 오차율은 극히 아주 작은 비율로 미미해진다. 즉 분모가 되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자의 수가 엄청나게 커질수록 오차율이 엄청나게 작아져서 생명체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관계를 발견한 것이다. 생명체가 원자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야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다.

슈뢰딩거는 “생명현상은 최종적으로는 물리학 또는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고실험 차원이었던 그의 예언을 입증한 것은 그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영감을 얻은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였다.

그들은 생명체 복제 메커니즘을 이중나선구조로 밝혀냈고 그 본체가 디옥시리보핵산(DNA)이라는 화학물질의 분자구조라는 것을 규명해냈다. 생명의 과학적 해석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생물학이 아니라 오히려 물리학이었다. 한 물리학자의 간단하고 명쾌한 상상력이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낸 것처럼 역사적인 업적도 시작은 간단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패션업계도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창의적인 사업모델과 상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인문학 콘텐츠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1953년 여름,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모델 앞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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